[충격-안도 공존하는 쿠바/부형권 특파원 현장 르포 3信]“멈추지말고 계속 걸어라” 통제
카스트로, 우상화 반대… 바로 화장… 분향소엔 시신 대신 영정 안치
부형권 특파원
28일 오전 9시경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공식 분향소가 마련된 수도 아바나의 호세마르티혁명광장 인근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군중의 물결에 깜짝 놀랐다. 25일 타계한 카스트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조문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새벽 3시부터 줄을 섰다” “어젯밤부터 와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28, 29일 이틀간 조문 기간에 아바나 시민의 절반인 100만 명은 올 것”이란 얘기가 들렸다.
쿠바 국민들의 자유로운 조문 분위기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까지 카스트로의 분향소를 공개하는 ‘열린 모습’은 쿠바가 강조해온 개혁·개방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카스트로 분향소 현장을 관리하는 쿠바 정부 관계자들의 경직된 모습과 조문객 관리에서는 뿌리 깊은 사회주의 분위기를 적잖이 느낄 수 있었다.
개혁·개방을 강조하지만 쿠바는 여전히 정치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돼 있다. 비정부기구인 쿠바인권·국가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만 총 9125명의 정치범이 구금됐다. 2010년과 비교했을 때 4배 이상 늘어났다. 뉴욕타임스(NYT)는 “쿠바 정치범들이 예전처럼 장기 수감되지는 않지만 수 시간에서 수일까지 구금되는 경우는 많다”며 “인권단체들은 쿠바 정부가 단순히 정치범에 대한 전략만 바꿨을 뿐이라고 비판한다”고 보도했다. 외견상으론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지만 오랜 사회주의 전통은 사회 곳곳에 짙게 배어 있었다.
긴 조문 행렬에 쿠바 국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기자 바로 앞에 서 있던 50대 남자는 “멕시코에서 왔다. 카스트로에 대해 좋은 평가도 많고, 그만큼 비판도 많은 걸 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역사적 인물이고, (그를 애도하는) 이곳도 역사의 현장 아니냐”고 말했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는 일부 미국과 유럽 관광객들이 ‘카스트로 조문’을 쿠바 여행 일정에 포함해 달라고 요청해 급하게 변경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문객들은 5시간 이상 기다리며 카스트로 분향소에 도달했지만 행사장 관계자들은 잠시 멈춰 서서 추모의 뜻을 표시할 몇 초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앞사람과의 간격이 조금만 벌어져도 경직된 표정으로 주의를 주며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가라”고 지시했다. 군복 차림에 배낭을 멘 카스트로 사진과 그 아래 진열된 수많은 훈장들, 그 옆에 도열한 의장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초뿐이었다.
‘카스트로의 혁명 동지’처럼 느껴지는 고령의 조문객들에게도 조문 시간은 예외 없이 적용됐다. 훈장을 단 제복 차림의 한 예비역 노인은 가슴팍을 움켜잡은 채 눈시울을 붉혔지만 5초 뒤 자리를 떠야 했다. 전직 교사인 오르단시아 산그렐 씨(70·여)는 “카스트로는 누구에겐 할아버지 같고, 누구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다. 가족이 떠났으니 슬프다”며 짧은 작별인사를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옛 사회주의국가 독재자들은 사망하면 시신이 유리관에 밀랍 인형처럼 안치돼 조문객을 맞이했다. ‘유리관 속 시신’은 죽지 않고 잠들어 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카스트로 시신은 곧바로 화장됐다. 아바나 현지 관계자들은 “카스트로는 우상화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그는 늘 육체나 물질보다 정신과 사상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쿠바 TV들은 그의 타계를 “피델의 육체가 우릴 떠났다”거나 “그가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다소 시적인 표현으로 보도했다. 기자에겐 “피델의 사상과 정신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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