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사, 일제가 ‘이등박문’ 기리려 지어… 이름도 따와

  • 동아일보

[지자체 규제에 가로막힌 서비스산업]신라호텔 자리 ‘박문사’는 어떤 사찰

지금은 사라진 박문사의 옛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지금은 사라진 박문사의 옛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이번 한옥 호텔 심의에서는 이전 심의들에서는 별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던 박문사가 문제가 됐다.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위해 지은 절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이등박문’에서 절 이름을 따왔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합한 뒤 1919년 이곳에 고종이 쌓았던 장충단을 없애고 공원을 만들었다. 1932년에는 장충단 공원 동쪽에 초대 통감을 지내는 등 한일병합을 주도한 이토를 기리는 일본 조동종(曹洞宗) 계열의 사찰인 박문사를 세웠다.

사찰 위치는 서울 중구 동호로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와 거의 일치한다. 신라면세점 등 한옥 호텔 건립 추진 지역도 박문사 터이다.

그렇다면 최초 신라호텔이 들어설 때 ‘문화재 훼손’ 논란이 없었던 이유가 뭘까. 이는 신라호텔 영빈관이 정부가 만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 당시 “외국 귀빈이 묵을 숙소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건설이 시작됐다. 영빈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후 1967년 완공됐지만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에 1973년 민간 기업인 삼성에 불하됐다. 여기에 민족적 감정이 좋지 않은 이토와 관련된 사적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이미 건물도 사라진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때문에 호텔을 짓지 못하게 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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