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일간 미루더니… 160분만에 117개 법안 ‘벼락치기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정기국회 마지막날]
평균 1분 30초마다 “땅땅땅”

“투표하겠습니다. 다 하셨습니까. 투표를 마치겠습니다.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다음은….”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종료일인 9일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 선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꼬리를 물 듯 말을 이어가더니 의사봉을 두드렸다. 법안 처리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안건의 절반을 넘어서자 한 건에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회기 내내 처리가 미뤄졌던 법안들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법안 제안 설명에 나선 의원들도, 표결 버튼을 누르는 의원들도 여야 가릴 것 없었다. 오후 5시경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이 제안 설명을 생략한 채 법안명만 죽 읽고 들어가자 의석 곳곳에서 “찬성이야” “잘했어”라는 낯 뜨거운 말들이 나왔다.

국회는 이날 여야 간 쟁점이 없는 법안 114건 등 총 117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2시간 40여 분이 경과했으니 한 건당 평균 1분 30초가 할애된 셈이다. 8월 11일 이후 93일간 여야가 각종 정쟁에 휩싸여 법안 처리를 미루다가 정기국회 막바지부터 허겁지겁 처리에 나선 결과였다.

개회부터 지각이었다. 당초 오후 2시로 예정된 본회의가 의사일정 조율로 오후 3시로 미뤄지더니 여야 의원총회가 길어지며 오후 4시 23분에야 열렸다. 19대 국회 원구성 협상이 지연되면서 27일 지각 개원했던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151일 연속(5월 2일∼9월 30일) 법안처리 ‘0’건이라는 불명예를 남기기도 했다.

여당 지도부와 황교안 국무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본회의 동안에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결심해 달라”며 설득했다. 원내지도부는 본회의장을 돌며 소속 의원들에게 “안건이 모두 처리된 뒤에도 좌석을 지켜 달라”고 단속했다. 이에 정 의장은 처리 안건을 3건 남긴 채 정회하고 여야 간 합의를 타진했지만 무산됐다.

노동개혁 관련법 등을 처리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소집을 요구한 12월 임시국회는 10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한 달간 열린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당분간 ‘개점휴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쟁점 법안에 대한 논의는 불투명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노동개혁 5법 중 기간제·파견근로자법에 대해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뿌리산업에 대해 파견을 무제한 확장한다”며 “논의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쟁점 법안 처리 불발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이날 심야 논평을 내고 “정기국회 마지막 날 하루만이라도 정치적 논란을 내려놓아 달라는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저버린 행위로 국회 스스로가 입법 기능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활성화법안 처리가 불발된 데 대해서는 “국회가 끝까지 절박성을 외면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국회가 국민에게 희망은커녕 절망만 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홍수영 gaea@donga.com·홍정수·차길호 기자
#정기국회#법안#벼락치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