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씨 “위령비 하나 없는 현실… 너무 안타까워”

강홍구기자 입력 2015-12-03 03:00수정 2015-12-03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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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원폭전시관’ 2016년 1월 개관 지원… 한국 귀화 일본인 다카하시씨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 한국원폭전시관에서 다카하시 고준 씨(오른쪽)가 한국인 원폭 피해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를 소개하고 있다. 그 왼쪽은 다카하시 씨의 아내 최숙희 씨와 원정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노원구의 한 전시관 한쪽에는 ‘원폭의 기와’가 전시돼 있다. 일반 명함 정도 크기인 이 기와 조각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 현 원폭 투하 직후 모토야스(元安) 강에서 발견된 역사의 유산이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원폭의 기와 뒤로는 ‘고향영안(故鄕靈安·영령이 고향에 와서 편안하게 잠들라는 의미)’이라는 붓글씨가 담긴 액자가 눈에 띈다.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와 평화의 종도 마련돼 있다. 내년 1월 일반인 대상 정식 개관을 앞둔 이곳은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마련한 국내 최초의 원폭 관련 전시 시설인 ‘한국원폭전시관’이다.

국내 원폭 피해자 1세대로 구성된 한국원폭협은 올 8월 협회 사무실 바로 옆 99m²(약 30평) 남짓한 공간에 원폭 피해의 참상을 알리는 전시관을 꾸몄다. 개관 이후 일반인 공개까지 다섯 달여의 시간이 걸린 건 자료 보완과 전시관 홍보를 위해서다. 9월 초 ‘일본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본 피해자가 한국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일본 정부가 의료비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잠시 여론의 조명을 받았던 국내 원폭 피해자는 전시관 개관으로 더 많은 관심이 쏠리길 바라고 있다.

원폭협이 전시관을 마련한 데에는 국제봉사단체인 태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일본인 다카하시 고준(高橋公純·74) 씨의 도움이 컸다. 원폭 피해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다카하시 씨가 국내 원폭 피해자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과거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친동생이 큰 역할을 했다. 1970년 손진두 씨(2014년 사망)가 피폭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에 밀항을 한 것을 계기로 일본 사회는 물론이고 자신도 한국의 원폭 피해 실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관심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다카하시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김구 선생 등의 저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인 아내 최숙희 씨(67)도 만나게 됐다. 1989년부터 원폭협 경남 합천지부를 지원한 그는 2004년 한국에 귀화했고 2006년에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관에 평화탑을 세웠다. 이번 전시관 개관에도 그는 전시관 공간을 제공하고 추모비, 평화의 종 제작 등에 1억5000여만 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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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씨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돕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본에는 전국에 350개가 넘는 원폭피해자보호단체가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마땅한 위령비 하나 없을 정도로 처우가 열악하다”며 “원폭 피해 70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에 무엇이든 도우려 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 “미래 평화의 주역인 어린이가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섭고 또 전쟁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알기 바란다”며 “어린이의 마음에 반전평화를 심어주는 전시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카하시 씨의 바람대로 한국원폭협은 내년 전시관 개관 이후 노원구 내 94개 초중고교 학생을 차례대로 초대하는 등 보다 많은 학생이 원폭 피해의 참상을 체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전시관에는 위령비 외에도 열선으로 전신 화상을 입은 남성, 피하 출혈로 얼굴에 반점이 생긴 병사, 시신 단체 화장(火葬) 등 기존에 협회가 보유하고 있었거나 히로시마, 나가사키 현 측에서 받은 다양한 사진 자료가 전시돼 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원폭전시관#한국원폭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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