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스낵이 된 문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염희진 문화부 기자
염희진 문화부 기자
4일 네이버 동영상 서비스인 TV캐스트를 통해 ‘신서유기’가 공개되기 전,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네이버가 아닌 다른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지, 텔레비전으로는 볼 수 없는지, 혹시 유료방송인지 등이 인터넷에 질문으로 올라 왔다. 하지만 막상 공개되자 나는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더 궁금해졌다.

‘신서유기’는 ‘1박2일’ 멤버들이 다시 모여 중국 여행을 떠나는 단순한 설정에서 출발했다. 네이버를 통해 ‘독점 선(先)공개’된 예고편은 파격적이었다.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촬영된 예고편에는 멤버들과 제작진의 술자리가 그대로 담겼다. 테이블 위엔 특정 상표의 소주병이 뒹굴었다. 공개된 본편은 기존 방송이 줄 수 없는 차별화된 재미를 노린 듯하다. 특히 다양한 특정 브랜드가 웃음의 소재로 쓰이는데 여기서 대중이 느끼는 쾌감이 꽤 큰 것 같았다. 40도 가까운 더위에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내복(히트텍) 입기를 벌칙으로 삼고, 담배와 치킨 브랜드 이름 대기가 게임으로 나온다.

나영석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이번에는 제작 기간이 짧아 협찬받을 시간이 없었지만 다음 프로젝트에는 대기업 중소기업 (광고를) 다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치킨 이름 대기 게임에서 언급된 ○○치킨이 다음 편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치킨을 가지고 요즘 뜨는 광고 중 하나인 ‘브랜디드 콘텐츠(광고인 듯 아닌 듯한 광고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가능성도 있다.

‘신서유기’가 공개한 10여 분짜리 영상 5편의 재생 수는 일주일 만에 1000만 건을 넘어섰다. 예고편까지 합친 건수(1500만 건)는 최근 네이버 TV캐스트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무한도전 가요제’의 재생 수(1175만 건)를 넘어섰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결정적인 히트작이 없어 웹드라마에 대한 협찬을 주저하던 광고주의 관심이 이번 ‘신서유기’ 성공을 계기로 웹예능에 쏠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기존 방송의 문법을 비트는 재기발랄한 웹 전용 콘텐츠가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욕설과 비방이 넘치고 노골적인 광고를 담은 콘텐츠가 쏟아질 수 있다. 그런데 ‘신서유기’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보고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갖는 콘텐츠에 최소한의 여과장치가 없다는 건 아쉽다. CJ E&M은 ‘신서유기’에 대해 ‘전 연령대 시청 가능’이라고 스스로 등급을 매겼지만 네이버는 방송사업자가 아니어서 방송법상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웹툰의 성공을 잇는 웹소설, 웹드라마 등이 등장하며 짧은 시간에 즐기는 문화콘텐츠를 뜻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제 대중문화는 출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 두뇌를 자극하기보다 감성을 건드려야 하고 재미에 충실하지 않으면 ‘핵노잼(정말 재미없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으로 외면당한다. 어느 날 맛있는 스낵처럼 포장돼 인터넷에 등장한 ‘신서유기’가 백해무익한 패스트푸드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염희진 문화부 기자 salthj@donga.com
#신서유기#나영석#패스트푸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