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지뢰 증거 들이대며 “나는 全軍 지휘했던 사람”

우경임기자 입력 2015-08-26 03:00수정 2016-01-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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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치에서 대화로/협상 막전막후]치열했던 ‘무박 4일 24차례 협상’
“(지난 도발을) 다 따지면 언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잘못을 들춰서 따지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잘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합시다.”(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젊은 사람의 일생이 걸린 문제입니다.”(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22일 오후 6시 반 판문점 평화의 집. 김 실장이 ‘목함지뢰’ 도발을 언급하며 사과가 우선이라는 뜻을 전하자 황병서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김 실장은 목함지뢰가 폭발한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에 쓸려 온 게 아니다. 누군가 와서 묻은 것이다”라며 황병서를 압박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이야기하자 김 실장은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순간 회담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회담을 지켜본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속된 말로 과거는 묻지 말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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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4일 43시간 마라톤 협상. 김 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황병서와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가 마주 앉은 ‘2+2 전체회의’ 4회, 김 실장과 황병서가 비공개로 만난 ‘일대일 회담’ 10회, 실무자가 문구 조정 등을 협의하는 ‘실무 회담’ 10회 등 모두 24회나 열릴 정도로 끈질긴 협상이었다.

남북은 서로의 의견 차만 확인한 채 23일 오전 4시 15분 정회했다. 23일 오후 3시 반부터 시작된 2차 접촉에서는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문구를 두고 막판까지 대립이 계속됐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 중단, 대북 제재인 5·24조치 해제 등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끈질기게 요구했다. 황병서와 김양건은 모두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초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황병서가 “김 실장 선생이 크게 결단을 하시면 된다”고 남측에 물러서기를 요구하자 김 실장은 “황 총정치국장께서 크게 양보하시는 건 어떠냐”고 맞받아쳤다. 고성도 없고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팽팽한 신경전은 회의장을 짓눌렀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지루한 협상을 이어갔다. 숙박이나 샤워 시설이 없어 3일 동안 샤워도 못 하고 간신히 세수만 했다. 북측 대표단은 평화의 집 인근에서 배달해 온 한식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북한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컵라면을 먹는 모습도 목격됐다. 24일 저녁 메뉴는 우리가 준비한 매운탕이었다. 다만 협상 중에는 남북이 식사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황병서가 ‘귀측’ ‘김관진 실장’이라는 공식 호칭 대신에 ‘김 선생’ ‘김 실장 선생’으로 부르는 등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김 실장과 황병서가 비공개 회담을 하는 동안 김양건과 홍 장관도 자연스럽게 따로 만나 남북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홍 장관은 25일 “오랜 시간 같이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상대방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남북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4일 오후 11시 남북은 주요 쟁점에 대한 견해차를 좁혔다. 25일 0시 55분 마침내 6개 문항이 타결됐다. 북한은 이날 오전 2시 정각에, 우리 정부는 오전 2시 3분 마라톤 협상 결과물인 남북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북한의 발표가 3분 빨랐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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