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포들, 이젠 어엿한 사업파트너…中 관영방송도 집중조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1일 17시 09분


중국 관영방송인 CCTV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9월 3일)을 맞아 조선족의 이주 역사와 항일투쟁을 담은 초대형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18일부터 회당 30분씩 12회에 걸쳐 방송되는 이 다큐는 제1회 ‘눈물 젖은 두만강’을 시작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청주아리랑’ ‘개척자의 발자취’ ‘짚신과 군화의 전쟁’ ‘형장의 이슬’ 등의 소제목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족들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 땅을 개척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독립운동에 나서 해방을 쟁취하는 과정을 소개할 것이라고 CCTV는 설명했다.

13억 인구에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항일 전쟁 승리기념일을 맞아 특정 민족의 역사를 관영방송으로 집중 조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중국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초 CCTV는 회당 20분씩으로 줄여서 5부작으로 방송하려다가 조선족 이주사를 온전히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막판에 다시 내용을 늘리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선족은 19세기 중반 한반도의 자연재난과 가난, 일제 식민지 시절의 억압 통치와 독립 운동, 전쟁과 분단 등의 역사를 거치면서 중국 땅에 정착한 한(韓)민족과 자손들이다.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의 한인 밀집지역 왕징(望京)에서 김치 가게를 운영하는 이영진 씨(56)도 그 중 한 명이다.

강원도 양양이 고향인 그의 부친은 1930년대 말 일본 경찰과 다툰 뒤 지린(吉林) 성으로 건너왔다. 해방과 분단 과정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중국에 눌러 앉았다. 양양에도 부인과 자녀가 있었으나 중국에서 다시 가정을 꾸려 이 씨 등 4남 4녀를 두었다.

조선족 연구 최고 권위자인 황유복 중국 중앙민족대 교수에 따르면 조선족 이주사는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맨 처음에는 1800년대 중반 한반도의 자연재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만주 등으로 들어간 ‘자유 이민’에서 시작됐고,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본격화된 독립 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망명 이민’으로 변했으며, 일제가 토지 개혁 등으로 땅을 잃은 사람들을 만주 등으로 이주하게 해서 나타난 ‘관리 이민’으로 이어졌다.

이 씨 가족처럼 해방과 분단 과정에서 조선족이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황 교수는 “1945년 8월 만주의 조선인은 200만 명 이상이었으나 1953년에는 113만 명으로 줄었다”며 “100만 명 이상이 한반도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해방 전까지 만주 등 주로 동북 3성에 살았던 한반도 출신의 주민들 중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중국 국적을 가진 55개 소수 민족 중의 하나인 조선족이 됐다.

2013년 한국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 내 조선족은 222만여명에 이른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 규모로 13번째로 크다. 조선족은 중국 내 소수민족 인구 수에서는 10위권 밖이지만 교육열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인구통계에 따르면 한(漢)족을 포함한 56개 민족 중 15세 이상 인구의 평균 문맹률이 2.8%로 1.8%인 타타르족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조선족은 길림성내에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주와 장백(長白) 조선족 자치현의 두 개 민족자치구역을 갖고 있다. 이들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 등 동북 지역 각지의 조선족 거주지에 모여 살면서 높은 민족적 자부심과 민족의식을 갖고 한국어와 한글, 한국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면서 민족 공동체를 잘 유지해왔다.

조선족은 1978년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 채택 이후 연해(沿海) 지역 중심으로 전개되는 산업화와 현대화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 동북 지역의 전통적인 거주지와 과거 농업 중심의 생산 활동 영역을 벗어나 중국 전역 및 한국, 제 3국으로 진출하면서 분화하고 있다. 이같이 분화하는 다양한 조선족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융화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민족적 자산으로 키우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조선족 동포’들은 대륙을 여는 큰 자산이자 우군(友軍)이었다. 수교 20여년 만에 중국이 한국의 제1교역국으로 부상하는 데는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이 컸다.

중국이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고 자동자 가전 휴대전화 등의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중국 내수 시장을 개척하는데 있어 조선족 동포들과의 협력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도 과거처럼 통역과 가이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업 협력 파트너로도 격상되고 있다.

중국 각 지역에는 조선족기업인들이 주축인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 옥타) 지회가 23곳이 있다. 또 지방 정부별로 조선족기업가협회 소속 지회도 있다. 지난달 24일~26일 베이징에서는 베이징 칭다오(靑島) 등 화북지역 5개 옥타 지회 공동으로 ‘차세대 통합 무역스쿨’ 행사가 열렸다. 차세대 기업인 꿈나무를 양성하기 위한 이번 행사에 조선족 ‘새내기 사회인’ 100여 명이 참가했다.

김길송 월드옥타 베이징 지회장은 “조선족 기업인들은 중국인과 중국 시장에 익숙하다”며 “성공한 자영업자나 기업인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또 “한국 기업이 처음 중국으로 진출할 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당한 사업 파트너로서 동포 기업인을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황유복 교수는 “한국에는 아직 미국 등 다른 지역의 동포와 조선족 동포를 차별하는 의식이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이는 조선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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