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짧아도 다 있다? ‘72초 드라마’ 찍는 7가지 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일 1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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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끄는 거 이제 그만해.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72초뿐이야.”

형식은 내용을 결정한다.

손안의 TV 모바일은 드라마 문법을 고쳐 쓰고 있다.

콘텐츠 제작 회사 ㈜칠십이초의 ‘72초 드라마’는 모바일 시청자를 겨냥한 콘텐츠다.

올 5월10일 네이버 TV캐스트에 ‘72초TV’를 개설하고 72초짜리(실제로는 102~164초) 에피소드 8편을 내보냈다. 7월2일 현재 재생 수는 약 300만회.

7월 중순에는 시즌1의 주인공이 그대로 나오는 시즌2가 방송된다. 다른 주인공을 내세운 시즌3은 대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질질 끌지 않고’ 72초 만에 기승전결을 마무리 짓는 방법은 뭘까.

㈜칠십이초의 성지환 대표(38)에게 초압축 드라마 찍는 법을 물었다.》

① 드라마 작가가 쓰지 않는다

72초든 60분이든 드라마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1분 남짓한 시간에 복잡한 캐릭터와 플롯을 소화하기는 무리. 그래서 72초 드라마는 일상을 다룬다.

시즌1의 주인공은 ‘흔남(흔한 남자)’. 평범한 30대 미혼남이 중국집 가고, 미장원 가고, 한밤중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뜬금없이 “자니?” 라는 문자를 날린 뒤 답장을 기다리며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이야기다. 에피소드 7, 8회에서 주인공이 예쁜 여자를 만나 썸 타는 얘기가 나오자 즉각 “초심을 잃었다” “웬 판타지냐”는 성토 글이 올라왔다.

일상을 다루는 드라마 대본은 누가 쓸까. 시즌1은 라디오작가 3명, 시즌2는 ㈜칠십이초 내부 연출자 2명이 썼다. 시즌3은 시즌1의 영어 번역을 맡은 ‘초짜’ 작가가 대본을 맡았다.

“일반적인 드라마는 캐릭터와 상황을 설정한 후 이야기를 전개하죠. 72초 드라마는 누구나 겪을법한 평범한 사연을 다루기 때문에 (드라마 작법을 아는 전문 작가보다) 실제 경험담 위주로 생생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필요합니다.”

② 랩 같은 내레이션의 리듬감은 영업비밀


72초 드라마의 묘미는 속도감. 편당 컷이 120개가 넘을 정도로 장면 전환이 빠르다. 대사는 없거나 있더라도 짧다. 내용은 내레이터가 전달하는데 랩처럼 들린다. 에피소드 3에서 나오는 아래의 내레이션은 10초 만에 끝난다.

“내가 소개팅에서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는 입고 있던 옷이 별로였고, 차를 소리 내면서 마셨고, 재밌게 말을 못했고, 결정적으로 차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유행하는 옷을 샀고, 차를 우아하게 마셨고, 개인기를 준비했고,….”

“음향 감독인 임태형 씨가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바람 새는 소리가 없이 전달력이 좋고 연기도 되는 사람이죠. 문장의 처음과 다음 문장 끝이 물리는 듯한 리듬감은 어떻게 편집한거냐고요?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③ 짧아도 돈 들건 다 든다


짧아도 드라마는 드라마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 뒤엔 엔딩 크레딧이 줄줄이 올라간다. 출연진이 26명, 스태프는 책임 프로듀서부터 예술감독 연출 촬영 조명 미술 음악 음향까지 35명이다(겹치기 포함).

회사 직원이나 신인 배우를 캐스팅해 출연료 부담이 적은데도 성 대표가 밝힌 제작비는 회당 1000만원 미만. 60분짜리 미니시리즈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3억~4억 원(분당 500만~670만 원)인데, 이보다 많이 든다고 한다.

“짧아도 스태프는 똑같이 필요하거든요. 제작비를 줄이려고 에피소드 8편을 몰아서 찍습니다. 회당 이틀씩 15~20일 만에 완성하죠.”

④ PPL 못 하는 이유? 100% 사전 제작


시즌1이 인기를 끌자 PPL 제의가 몰려들었다고. 드라마를 보면 커피메이커, 술, 오디오, 의상, 커피숍, 스마트폰 등등 PPL 할만한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시즌2에도 PPL은 없다. TV 드라마의 경우 방송이 시작된 후 시청률이 높으면 PPL 요청이 쇄도한다. 72초 드라마는 100% 사전 제작이어서 PPL이 어렵다.

“시즌2의 대본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여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헤치지 않는 자연스러운 PPL이 어려웠어요. 시즌3에선 고려해 보려고요.”

⑤ 편성과 배급 전략이 있어야


시즌1은 매주 수, 목 오전 11시27분 네이버에 공개했다. 시즌2의 편성과 채널은 미정이다. 넷플릭스처럼 에피소드 8편을 한꺼번에 공개할지, 하루 1편씩 할지, 주3회가 좋을지, 어떤 편성이 시청자를 끌어 모을지 고민 중이다.

약은 약사에게. 배급은 배급사에게.
시즌1의 배급은 대표적인 MCN 회사인 트레져 헌터가 맡았다. 시즌2는 네오 터치포인트가 배급한다.

“저희는 콘텐츠 제작 업체예요. 서로의 역량에 집중!”

⑥ 국내 시장만으론 어렵다


시즌1의 경우 영어와 중국어 버전으로 제작 중이다. 일본어와 인도네시아어 버전 제작도 구상 중이다. 왜 인도네시아냐고? 인구 2억5000만 명이 넘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니까.

72초 드라마의 주요 수입은 콘텐츠 사용료와 광고수익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만 의존해서는 돈을 벌기가 어렵다고 한다.

“BJ 같은 1인 제작자의 영상 콘텐츠와 달리 72초 드라마는 제작비가 높습니다. 국내 시장만 바라봐서는 한계가 있어요. 해외로 시장을 넓혀야지요.”

⑦ 독자 반응보다 중요한 기준, “72초답게”

쪽 대본에 의존하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관행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요구사항을 드라마 흐름에 반영할 수 있어서다.

인터넷에서 BJ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실시간 댓글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72초 드라마는 100% 사전 제작이다. 댓글? 보긴 하지만 크게 영향 받진 않는다고.

“시청자 반응보다 중요한 건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재밌다’고 동의할 수 있느냐 입니다. 늘 자문해요. ‘72초스러운가’ 라고요. 브랜드 이미지가 있듯 ‘72초다움’은 우리 드라마의 시그너처 입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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