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우리보다 더 무서우니…” 위기의 한중일귀신 가상좌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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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성수기 귀신영화가 안 통한다

이불 속에서 튀어나오는 게 특기인 ‘주온’의 토시오.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이불 속에서 튀어나오는 게 특기인 ‘주온’의 토시오.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귀신이 무섭지가 않다. 국내 공포영화 시장의 침체가 5, 6년째 이어지면서 ‘공포의 마스코트’ 귀신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올여름 귀신이 나온 공포영화는 한국의 ‘소녀괴담’(7월 2일 개봉)과 일본 영화 ‘주온: 끝의 시작’(7월 16일 개봉), 중국에서 제작한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2’(7월 16일 개봉)와 ‘분신사바-저주의 시작’(9월 개봉 예정) 4편뿐이다. 지난달 개봉한 3편은 모두 미적지근한 성과를 내며 극장 상영을 접었다. 귀신 영화의 위기는 어디서 온 걸까. 한중일 귀신들과 가상 좌담을 가졌다.

―‘한국 공포의 8할은 귀신’이라는데 올여름엔 스크린 속 귀신의 활약이 부진했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세 분 귀신을 모셨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소녀귀신=‘
소녀괴담’에서 ‘마스크 귀신’으로 홍보됐는데 (마스크 벗으며) 제 미모에 놀라는 분이 많더군요. 귀신이 너무 청순하다나. 하도 공포의 위기래서 코미디, 로맨스적 요소를 섞어 이미지 변신했어요. 평단 반응은 안 좋았지만 적은 제작비(18억 원)로 48만 명 들었으니 손해 안 본 장사였죠.

▽토시오=
한국인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주온’ 시리즈의 주인공입니다. 엄마랑 같이 등장하는데 비디오로 데뷔해서 나중엔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거 아시죠. ‘링’의 사다코 누나와 함께 ‘J호러’의 대표주자라고 부르더군요. 이번 영화까지 시리즈가 10개나 되니까 ‘귀신보다 제작자의 집착이 더 무섭다’고들 해요. 그래도 10대들 덕에 41만 명 왔으니 ‘선방’했죠.

▽샤오아이=
‘가위’(1999년)의 리메이크작인 ‘분신사바2’의 샤오아이예요. ‘분신사바-저주의 시작’에도 나와요. 한국 성적(8만 명)은 제가 가장 부진하네요. 리메이크의 새로운 모습보다 원작의 하지원과 너무 닮아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원은 귀신이지만 저는 귀신인지 아닌지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곤란해요. 중국 정부가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중시해서 너무 귀신처럼 보이면 안 되거든요. 어쨌건 중국에선 잘나갔어요. ‘분신사바2’도 중국에선 개봉 첫 주 약 84억 원의 수입을 올렸죠.

―세 분 모두 ‘나는 별문제 없다’는 건데, 요즘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바닥을 치는 건 왜죠? ‘명량’은 1000만을 넘겼다는데, 100만 넘긴 공포영화 찾기가 어려워요.


▽토시오=
남 핑계대긴 싫지만 요즘 대형 배급사들은 큰 영화 밀어주느라 저희를 외면해요. 상영관 잡는 거 자체가 힘듭니다. 손님 안 드는 자정이나 조조영화 시간에만 끼워 넣는데, 누가 아침에 귀신 영화를 봅니까!

▽샤오아이=
‘분신사바-저주의 시작’은 원래 이달 14일 개봉 예정이었는데 9월 말로 옮겼어요. 틀어줄 상영관이 없대.

▽소녀귀신=
세상이 험해진 탓도 있죠. 실화가 배경인 스릴러의 범죄자가 우리보다 무서우니까. 제작자들도 반성해야 해요. 1990년대 말 ‘여고괴담’ 인기 이후 학원 공포물만 계속 만들어요. 제작비 때문이죠. 그런데 제대로 무섭게 하려면 돈 좀 써야지.

공포영화 대목인 여름이지만 귀신들의 힘은 예전만 못하다. 올여름 개봉한 유일한 국내 귀신 영화 ‘소녀괴담’의 소녀귀신(일명 마스크
 귀신).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공포영화 대목인 여름이지만 귀신들의 힘은 예전만 못하다. 올여름 개봉한 유일한 국내 귀신 영화 ‘소녀괴담’의 소녀귀신(일명 마스크 귀신).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그래도 지난해 개봉한 ‘컨저링’은 226만 명이나 봤습니다. 이건 동양귀신의 부진 아닌가요.

▽샤오아이=
걔들은 귀신이 아니라 악령이지! 우리랑 급이 달라. 우린 저마다 사연도 있고, 드라마가 있어요. 이게 굉장한 장점인데 우리가 아직 좋은 감독이나 제작자를 못 만나서 그런 것 같아. 설상가상으로 나는 정부 검열 문제도 있고….

국내에선 부진했으나 중국에선 흥행한 ‘분신사바2’의 샤오아이.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국내에선 부진했으나 중국에선 흥행한 ‘분신사바2’의 샤오아이. 고스트픽쳐스, NEW,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이제 귀신영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도 나와요.

▽토시오=
일본에는 귀신과 요괴를 다룬 고전 콘텐츠가 많은 데다 최근엔 실화 괴담 중심으로 B급 콘텐츠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저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다고요.

▽소녀귀신=
물론 우리에게도 변화가 필요하죠.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좀비들도 요즘엔 이미지 변신해서 성공했잖아요. 좀 탄탄한 이야기를 가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도움말: 김봉석 영화평론가, 김연경 영화사 하늘 홍보팀장, 이종호 공포영화 전문 작가)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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