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종빈]이제 개헌을 논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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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혹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청과 호남에서도 야권의 무원칙한 전략공천과 벼락치기 후보단일화에 대한 악화된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대통령과 여당은 국정운영의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되었고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졌다.

최근 여러 차례 선거에서 유권자가 보여준 절묘한 여야에 대한 심판은 이번 재·보선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었다. 다시 말해서 민심은 끊임없이 국정운영 교착을 유발한 야권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 타협, 상생의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를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의 법적, 제도적 여건으로는 극단적인 대립의 정치를 해소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대통령선거의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인한 극단적 갈등의 정치를 풀어낼 개헌을 시작하라는 주문이다.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후 국민투표를 통해 유권자 과반수 투표와 과반수 찬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헌법 개정은 여야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 다수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매우 어려운 절차다. 그만큼 오랜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다수 구성원의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개헌 논의는 오래전 시작되었는데 1990년 3당 합당과 1997년 대선의 DJP연합 과정에서 집권 세력의 내각제 개헌 시도가 있었다. 이후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개헌 논의가 있었는데,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의 두 차례에 걸친 개헌 제안은 정치개혁에 대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사 수렴 절차의 생략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개헌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 또한 계속되었다. 김형오, 강창희 전 의장은 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5월에는 이 위원회에서 분권형 대통령제와 양원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개헌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현 정의화 국회의장은 개헌 논의가 복잡하고 민감하지만 차차기(次次期)부터 적용한다는 조건으로 논란을 차단하고 통일 대비 헌법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올 초 동아일보의 조사에서 국회의원의 80.6%가 개헌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55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와 단원제 유지라는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처럼 개헌 논의의 주체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블랙홀’을 주장하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는데 이는 옳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초 개헌을 주도해 실패한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 비록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집권 후 4년 중임제 개헌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국회의 조력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만 개헌 논의가 정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대통령이 열린 자세로 한발 물러서야 여당 또한 자유롭게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

우리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승자독식의 권력구조로 인한 벼랑 끝 갈등과 끝없이 치고받는 대립의 정치다. 모든 정치세력이 대선에만 올인해 승리한 세력은 독점적, 배타적 권력을 행사하고 패배한 쪽은 발목 잡기에만 매몰돼 서로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 당시 대통령 단임제의 국민적 열망을 담아낸 ‘87년 헌법 체제’가 수명을 다해 정치권의 갈등과 대립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합의의 정치라는 국민적 이상과는 달리 현실 정치에서는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몸부림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후진적 대립의 정치를 타파하고 선진적 합의의 정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이 절실하다. 여러 정치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갖고 함께 책임지며 대화와 타협을 보다 쉽게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제안된 주요한 권력구조 대안은 4년 중임 대통령제,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등이다. 권력구조의 미시적인 내용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어떤 형태라도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헌의 타이밍을 잡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새정치민주연합#헌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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