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하기 시작한 일본… 한일은 복합골절 상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심규선 대기자가 본 오늘의 일본

15일 오후 일본 도쿄의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일본 국회의원(오른쪽)과 한국 언론의 간담회. 양국 미디어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일한협력위원회 제공
15일 오후 일본 도쿄의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일본 국회의원(오른쪽)과 한국 언론의 간담회. 양국 미디어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일한협력위원회 제공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라고 한다. 비정상적이라는 지금이 사실은 정상이며, 한군데를 고쳐서는 치유가 불가능한 ‘복합골절’상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단견이다. 혹시 한국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과 일본 국민이 변한 것은 아닐까,

궁금증의 일부를 풀 기회가 있었다. 일한협력위원회(회장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초청으로 한국 언론사 간부 10명이 지난주 2박 3일간 도쿄를 방문했다. 아베 총리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소 다로, 노다 요시히코 등 전직 총리,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국회의원 9명, 오노 히로히토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등 신문과 방송사의 고위 간부 13명,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등 지식인 7명, 사메시마 후미오 일한문화교류기금 회장 등 일한경제협회 간부 12명을 차례로 만났다. 한국 언론이 일본의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의 고위직을 이처럼 한꺼번에 만난 것은 이례적이다.

다음은 간담회와 면담에서 오고 간 내용의 일부다(솔직한 얘기를 듣기 위해 특정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하고 취재했다).

한일 갈등, 일시적인가 구조적인가

구조적인 변화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약간 친한적인 사설이라도 쓰면 “신문을 끊겠다”는 항의 전화가 온다고 한다. 예전에 없던 현상이다. 혐한(嫌韓)을 부추기는 책이나 잡지가 많이 팔리는 것도 원하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출판사나 잡지사가 혐한 특집의 유혹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도 ‘세월호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이를 ‘형태를 바꾼 혐한’이라고 보는 이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기본이 덜된 나라’라는 일본 국민의 우월감이 보도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국이 자주 사과를 요구하고 일본의 과거청산 노력을 과소평가한다는 불만도 다시 나왔다. 그 때문에 “한일관계가 나빠도 상관없으니 내버려 두라”고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는 대체로 중국의 급격한 대두에 따른 일본의 국위 저하와 초조함, 장기간의 경제침체에서 오는 자신감의 결여를 꼽았다. 일종의 부정적 반작용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신문이나 방송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단편적인 정보를 접하고 이를 근거로 발언력을 높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정보의 편식성도 지적됐다.

일본 정치인의 스케일이 작아져 이웃나라와 아시아 전체, 인류 보편적 문제에 관심이 적어진 게 문제라는 말도 있었다. 일본의 우경화는 그런 경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해명이 많았다.

한중 급속한 접근과 한일 정상회담

한국의 중국 접근은 요즘 일본의 최대 관심사다. 일본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보편적인 인권, 법의 지배라는 공통가치를 갖고 있고 중국은 그렇지 않은데 왜 한국이 급격하게 ‘중국 시프트’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도 인사말에서 이 점을 강조하며 우회적으로 중국을 견제했다.

일본은 4강이 아니라는 논리는 더 확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국 등 강대국에 끼여 있는 중견국가라는 주장이다. 일본과 한국은 국익이 일치하며 손을 잡아야 국력의 시너지가 커진다는 논리다.

한일 갈등은 감정적, 중일 갈등은 구조적이라 중일 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중일 갈등은 풀려는 사람이 많은데 한일 갈등은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일 정상회담의 필요성은 많은 사람이 언급했다. 참석자들은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도 그랬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일관되게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최근 일본 측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한국의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측도 빠른 시일 내 양자회담이 열릴 것으로는 기대하고 있지 않다. 참석자들은 다자 간 정상회담이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의 복원을 언급했다. 경제나 안보 관련 국장급이나 각료급 회의를 정기적으로 열자는 제안도 있었다.

언론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해법

양국 언론이 좋은 것은 놔두고, 나쁜 것만 보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보가 부족한 일반 국민이 언론의 반한, 반일 프레임에 그대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는 우려였다.

한 전문가는 일본 언론은 ‘혐한 프레임’, 한국 언론은 ‘반일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언론에는 일본 측 주장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립하는 국가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미디어는 국가와 정치로부터 떨어져 현안을 상대화(객관화)해야 하고, 상대화 대상에는 자기 나라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힘들더라도 저널리즘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풀뿌리 교류를 더 넓히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교류는 정치 리더십이 잘못되면 소용이 없다는 반론도 나왔다. 경제는 아직은 괜찮다고 했다. “양국 경제가 괜찮으니까 (그걸 믿고) 정치가 싸운다”고 한 어느 경제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건전한 위기의식’이 없으면 양국 관계가 정말로 파탄날 수 있다는 경고도 있었다.

역사관과 안보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감성과 이성의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의견 차이가 너무 크거나 해결이 곤란한 문제는 서로 자극하지 말고 ‘컨트롤(관리)’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 측도 ‘신의 한 수’를 내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번 방일에서 확인한 것은 한일 갈등은 중국의 대두라는 국제질서의 변화도 한몫 거들고 있고, 양자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현안으로 부상했으며, 양자 또는 한국 쪽 해법만으로는 풀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한국도 일본 쪽 행동 변화만 기다리거나 일본의 변화에 눈돌리지 말고 능동적으로 해결책을 고민할 때다. 물론 한국이 지금의 상태를 감수하겠다고 결정하면 그건 별도의 문제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한일관계#아베 신조#중국#언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