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여론조사… 본보 이현수 기자, 조사원 체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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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반만에 2030 응답자 첫 연결, 끊을까봐 조마조마… 말이 빨라졌다

동아일보 이현수 기자가 1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원 체험을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동아일보 이현수 기자가 1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원 체험을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른 살인데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15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R&R)’에서 여론조사원 체험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2030세대와 연결된 첫 통화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지면서 응답자의 목소리에서는 귀찮음이 잔뜩 묻어난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설문을 읽는 기자의 말도 점점 빨라진다.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정당은 어느 당이라고….”(기자)

“그런데 언제까지 해야 해요?”(응답자)

결국 경기 김포시의 만 30세 여성은 바쁘다며 전화를 끊고 말았다. 전체 설문이 완료되지 못했으니 ‘미션 실패’다.

2030과의 전쟁

야속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여론조사 기계음이 들려오거나 친절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면 전화를 뚝 끊어버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20, 30대 한 명의 응답이 여론조사 전체의 신뢰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론조사원 ‘초짜’인 기자의 두 시간은 처참했다. 두 시간 동안 시도한 100여 통의 전화 중 성공한 통화가 딱 한 통이었으니 성공률이 1%도 안 됐다. “안녕하세요. 조사원 이현수입니다”란 인사말이 끝나기 전에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도 어림잡아 80번은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옆자리에서 여론조사를 진행한 고수들은 전화를 끊으려는 사람도 어르고, 달래서 착착 응답을 받아냈다. 일반적으로 여론조사 평균 응답률은 8∼15% 정도 된다.

전화 여론조사는 인구 구성에 맞춰 사전에 정해진 △성별 △지역 △연령별 표본 쿼터를 채워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20, 30대 쿼터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마(魔)의 연령대’라 할 만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응답자 수를 채우지 못하면 연령대별 가중치를 주고 보정하기도 한다. 한 조사원은 푸념하듯 말한다. “비 좀 내리라고 기도한 적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 다들 집에 가서 전화 받으라고요.”

오차를 줄여라

조사원들은 칸막이가 쳐진 책상에서 전화를 건다. 펜도 전화번호부도 필요 없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전화 받기’라는 항목을 누르면 자동으로 연결된다. 집 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식으로 조사원은 컴퓨터 시스템이 임의 추출해주는 전화번호를 할당 받는다.

전화조사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직접 눌렀지만 이젠 그럴 시간이 없다. 번호를 잘못 누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하루에 조사해야 하는 양을 채울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여론조사 업계의 모든 관심은 ‘오차 줄이기’에 있다. ‘소수 표본을 조사해 일반 대중의 여론을 파악’하는 여론조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오차와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에서 가장 많이 접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용어에 대해 물었다.

먼저, ‘신뢰도 95% 오차범위 ±3.1%포인트’. 예를 들어 한 조사에서 홍길동 의원에 대한 지지도가 42%로 나왔다고 가정했을 때 홍 의원에 대한 지지도를 100번 조사하면 그중 95번은 ‘38.9∼45.1%’ 범위 내의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표본이 늘어날수록 이 범위가 줄어들면서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응답률 10%’는 100명에게 전화를 걸어 10명의 답을 얻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100명의 답을 받기 위해 1000명과 전화를 시도했다는 뜻이다. 이동열 R&R 사회조사분석본부 팀장은 “응답률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조사는 아니지만, ARS 조사처럼 응답률이 너무 낮은 경우 대표성을 띠기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표본 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확률 오차가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사원의 실수 같은 ‘비표본 오차’도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한 장치도 마련돼 있었다. 기자가 수행한 조사는 물론이고 모든 전화 조사원들의 통화와 기록은 이중으로 감시된다. 편향된 질문, 특정 답을 유도할 경우 ‘잘못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원격으로 화면에 뜨고 제재가 가해진다. 사후 재검증 절차도 이뤄진다. 이 팀장은 “조사원이 검사한 표본 10개 중 3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검증에 들어간다. 오류가 발생하면 바로 전수검사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조사는 조사일 뿐 맹신은 금물

오후 5시 반, 여론조사원들은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부족한 20, 30대 표본을 채우기 위해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저녁시간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짧은 체험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푼 것 같다. 오차를 줄이기 위한 조사기관의 부단한 노력도 확인했다. 대신 여론조사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전화를 받는 이들은 50대 이상의 노령층이 대부분인 탓에 20, 30대 한두 명의 대답이 과도한 대표성을 갖게 될 경우 민심이 왜곡될 수 있다.

기자가 접촉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모두 “여론조사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수 기자 soof@donga.com
#여론설문조사#2030#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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