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소방관 “소방장비 인터넷서 자비 구매…왜냐구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9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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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이어 8명이 숨진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와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 잇단 참사로 대한민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진 가운데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 목숨을 지켜줘야 할 소방공무원들이 자비로 장비를 직접 구해 쓸 만큼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됐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현직 소방관 A씨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제 주위 소방관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장비 구매를 직접 하는 것을 본 적도 있고 열악한 지방 소도시에 근무하는 친구들이 그렇게(장비를 자비로) 구매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직 소방관 중에 장비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1년에 최소한 장갑 두벌은 필요하지만 2~3년에 한 번, 열악한 곳은 5년에 한 번 정도 장갑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는 장비가 잘 지급되는 편인데도 방화복 한두 벌에 장갑 한 짝 정도를 몇 년에 걸쳐서 준다"며 "장갑 같은 경우는 화재가 자주 나면 6개월, 7개월이면 거의 다 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창피한 얘기지만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가끔 남의 것을 가져가는 분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장비 지급이 잘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소방은 지자체에 속해 있어 각 지자체의 예산에 크게 좌우된다"며 "지자체들이 많이 힘들다 보니 크게 표가 안 나는 안전이나 재난 쪽에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소방차의 경우 전국 평균 5대 중 1대가 이미 폐차시켜야 하는 차를 사용하고 있다"며 "지방의 경우 차량이 작은 경우가 많아 심할 경우 2~3분이면 물을 다 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A씨는 "수당을 몇 년째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한 소방관들이 모두 인사조치 당해 힘들어한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장비를 더 달라고 요구나 건의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겠냐"고 덧붙였다.

앞서 인터넷에서는 현직 소방공무원들이 구조 활동 시 사용하는 물품을 자비로 산다는 글이 큰 화제가 됐다.
자신을 현직 소방공무원이라고 밝힌 '갈매기의 꿈'이라는 네티즌은 며칠 전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 관련 게시물에 댓글 형태로 쓴 글에서 "이런 말 여기서 해본들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활동화가 다 떨어져서 신발 지급을 요청하니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방수화가 아닌 평소 구급 활동 때 신는 신발이라 매우 빨리 닳는데 2년이 다 돼도 지급이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역시 자신을 현직 소방관이라고 소개한 '아장프로보카퇴르'라는 네티즌도 "화재진압 장갑 6개월 쓰면 너덜너덜해지는데 현재 3년째 지급이 안 되고 있다"면서 "저는 아마존(인터넷 종합 쇼핑몰)에서 영국 제품으로 1년에 2개씩 사비로 구입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은 이날 현직 소방공무원에 이어 CBS라디오에 출연,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김 의원은 "소방자동차 평균 노후화율은 21.1%이고, 개인 장비 부족 비율은 자치단체나 장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적게는 7%에서 많게는 19%까지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어 장비 내구연한 초과비율은 "방화복은 21.7%, 안전화는 20.8%, 헬멧은 24.2% 정도로 평균 대략 20%정도"라고 전했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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