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태균]비대해진 관료집단 개혁 없이 선진한국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이태균 자유기고가
이태균 자유기고가
박근혜 정부가 공직기강 확립과 공기업 개혁을 위해 본격적인 시동을 건 지 몇 개월이 되지 않는 마당에 이번 세월호 참사는 정부와 공직사회의 무능하고 안일한 긴급대응 태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정책방향에 대한 지시가 관료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아 국민과 여론으로부터 철밥통 관료들의 공복자세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공기업 개혁과 규제대책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진행되어야 할 마당에 이번 세월호 참사는 앞으로 공기업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훈을 주었다.

우선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정부 부처 산하기관이 왜 그렇게 많이 난립해 있으며 특히 기관장들이 전문가도 아닌 전관예우 차원에서 낙하산 인사가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안전을 책임져야 할 관계 기관 책임자도 실무적인 지식이 없는 행정관료 출신이 많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형 사고의 예방을 위한 철저한 사전관리는커녕 초기 대응과 구조작업, 사고 수습에 이르기까지 허둥대 유가족과 국민의 원성을 사게 된 배경에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적합한 책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이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희생자를 많이 낸 것은 제외하더라도, 사고 후 정부와 관계 기관 모두가 우왕좌왕했을 뿐 사전에 충분히 준비해 훈련된 매뉴얼 하나 제대로 수행한 곳이 없음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박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책임행정을 실행하지 못하는 공직자를 강하게 질타했지만 말만으로 공직기강과 공직자의 체질이 고쳐질 수는 없다. 정부 부처 장관과 청와대 보좌진을 보면 고시 출신 등 오랜 공직생활로 눈치 9단인 인사들이 많다. 이들이 구체적인 사항까지 직접 챙기는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국정운영 방식을 역으로 방패 삼아 대통령 뒤에서 지시만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시점이다. 솔선수범해 직무수행과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는 천연기념물처럼 귀한 것이 우리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개발시대인 1970, 80년대에는 국가발전에 우수한 관료집단의 공이 컸다. 그리고 관료집단이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관료 중심은 한계를 드러내고 오히려 관료들의 폐해가 확대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관료집단이 자신들끼리 나눠먹기식 담합의 룰로 낙하산 인사가 관행화되었거니와, 유관기관과의 유착 고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솔직히 지금은 관료집단이 국가 발전에 부담이 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이번에도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기본적인 궁금증조차 자진해서 해결하지 못해 대통령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움직이는 행태를 반복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나라는 새로이 개조되지 않고는 더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은커녕 사회 안정이 올 수 없다고 판단한다. 제일 먼저 관료시스템을 혁신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은 공복이라는 의식이 필수이며,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 편의와 행복 증진을 위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임을 자각해야 한다. 관료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피아’로 불리며 행정 시스템을 사유화(私有化)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과 공직자는 국민을 최우선해 존재해야지 관료집단 자신들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해운조합 이사장을 관료 출신들이 38년째 독식하고 있는 것도 공생관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검찰도 해운 비리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벌일 태세지만 수사만으론 효과는 제한적이다. 관료집단의 ‘마피아’ 청산을 위해서는 기존의 관료시스템을 완전히 혁신하는 것이 필수다. 관료들이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을 현행 사기업과 법무법인 등에서 공직 재직 시 유관 단체로 확대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도 필요하다.

이번 사고로 언론과 여론이 비등해 공직자 기강 확립과 관료집단 이기주의 타파에 대해 끄집어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야무야되는 것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번에는 확실한 공직기강 확립과 관료집단 시스템 개혁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이태균 자유기고가
#만기친람#수석비서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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