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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냉소로 고발한 뒤틀린 현실

입력 2014-04-15 03:00업데이트 2014-04-15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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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에 주목하는 두 전시 《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공장)’라고 불렀다. 자동차 공장처럼 대량 생산 방식을 응용한 시스템 아래서 그의 조수들은 부지런히 작품을 만들어냈다. 생존 작가 중 작품 값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씨의 경우 스튜디오 직원이 150여 명에 이른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국내 미술가 작업실에 가도 작가 지시에 따라 작업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작가 김홍석 씨의 ‘걸레질’. 작가가 색칠한 캔버스를 물감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일용직 노동자가 손걸레질로 닦아낸 행위의 결과물이다. 국제갤러리 제공작가 김홍석 씨의 ‘걸레질’. 작가가 색칠한 캔버스를 물감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일용직 노동자가 손걸레질로 닦아낸 행위의 결과물이다. 국제갤러리 제공
이렇듯 제작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노동이 투입되지만 최종 결과물에서 발생하는 지적 소유권, 돈과 명예는 오롯이 작가의 몫으로 인정하는 게 현대미술 시스템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김홍석 씨(50)의 ‘Blue Hours’전은 이 같은 익숙한 관행을 과녁으로 겨누고 있다. 망가진 캐비닛을 조각으로 제작한 작품의 제목은 ‘무제(112시간)’로, 작가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사포질에 투입한 총 노동시간을 반영한다. 자신의 아이디어에 타인의 노동이 결합한 작품이란 점을 강조하는 전시는 예술에 대한 냉소와 함께 작가와 노동자의 이해관계에서 파생된 문제를 사유하게 이끈다. 5월 11일까지. 02-735-8449

그의 전시가 예술 속에 숨은 윤리적 불편함을 은유했다면 한효석 씨(42)의 ‘자본론의 예언’전은 엽기적 이미지로 사회 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선 사람 얼굴을 고깃덩어리처럼 표현한 그림, 죽은 돼지를 실리콘 레진 조각으로 재현한 입체 작품이 선보였다. 워낙 비주얼이 충격적이라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들다. 5월 1일까지. 02-725-1020

○ 노동과 예술의 윤리

‘Blue Hours’전은 창작에서 유통까지 현대미술의 전 과정에 잠복한 불편한 진실을 거침없는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다. 지난해 플라토미술관의 ‘좋은 노동, 나쁜 미술’전에 이어 모순과 역설로 충만한 작업을 보여준다. 난해한 추상회화 같은 ‘걸레질’의 경우 작가가 물감을 칠하면 일당 받는 아주머니들이 물감이 덜 마른 상태에서 작가가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걸레질로 닦아낸 작업이다. 볼펜과 연필 등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이 종이를 빽빽이 채운 노동집약적 드로잉도 여럿 나왔다. 멀리서 보면 근사한 카펫 같은 작품은 일꾼들이 창문 틈새를 채우는 실리콘으로 꼼꼼하게 그려 넣은 것이다.

예술과 관련 없는 타인이 제작한 결과물은 작가의 명찰을 달고 평론과 판매의 대상이 된다. 고용된 사람들의 손으로 작품이 만들어지고 이를 용인하는 현실에 대해 작가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미술이다”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의 구조를 비판적 관점으로 성찰했는지, 명민하게 역이용한 것인지 수상한 농담 같은 작품들이 관객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 돼지와 사람의 윤리

죽은 돼지를 입체작품으로 만든 한효석 씨의 ‘자본론의 예언’과 회화 작품. 아트사이드 제공죽은 돼지를 입체작품으로 만든 한효석 씨의 ‘자본론의 예언’과 회화 작품. 아트사이드 제공
한 씨의 전시에선 공중에 매달린 돼지 입체 작품이 눈길을 끈다. ‘자본론의 예언: 그들에게 있어 자유란 죽음뿐이다’란 제목의 작품은 오직 ‘쓸모’를 기준으로 태어나 죽음을 맞는 생명들을 떠올리게 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기계적 시스템 아래 공산품처럼 사육당하는 돼지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인간들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 억눌려 살아간다는 점을 빗댄 작업이다.

두 작가는 제각기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고착화된 권력에 어깃장을 놓고자 도발적 논쟁적 작업을 선보였다. 주제나 작품 자체가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으나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물음을 되새기는 데 유효하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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