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폭언에 1차 內傷, 동료 냉정한 조언에 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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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사들의 ‘내마음 보고서’

《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내 목이 메더군요. 힘들었던 경험으로 상처받은 우리 선생님들, 참 대견하고 견디느라 애썼습니다. 위로 받고 나니 홀가분합니다.”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스트레스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어떨까? 교사들에게도 재충전이 필요한 겨울방학. 전국 초중고교 교사 5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개최한 ‘2013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교사 편’에 참석한 교사들은 이곳에서 학생, 학부모로부터 받은 심리적 내상을 바로 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어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들은 저마다 말 못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이날 참석한 두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그들의 마음속에도 그림자는 있다. 단지 학생들 앞에선 감출 뿐. 교사 50여 명이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이 실시한 ‘2013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에 참석해 속으로만 삭이던 상처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의 상담을 통해 그들은 마음속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냈다. 마인드프리즘 제공
그들의 마음속에도 그림자는 있다. 단지 학생들 앞에선 감출 뿐. 교사 50여 명이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이 실시한 ‘2013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에 참석해 속으로만 삭이던 상처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의 상담을 통해 그들은 마음속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냈다. 마인드프리즘 제공
○ 입시철 이기적인 학생들에게 상처받아

교직생활 20년을 넘긴 서울지역 고등학교 교사 A 씨(45)는 지난해 고교 3학년 담임을 하며 “곧 학교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처음 먹게 됐다. 가난한 변두리 지역의 학교에서 지난해 교육열이 높은 이 학교로 전입한 A 교사. 성적에 매우 민감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인지라 학생과 학부모의 이기적이고 무리한 요구 때문에 괴로웠다고 한다.

지난해 초 A 교사는 담임을 맡은 반에서 미대 진학을 준비했던 여학생으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오후에 수업을 빼먹고 학원에 가서 미술 실기 수업을 해야 하니 출결 처리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요구였다. 조퇴를 눈감아 달라는 학생의 집요한 요구도 괴로웠지만 “강남에 있는 학교에서는 고교 3학년생이 오후 수업을 빼먹고 학원에 다니게 배려해주고 출결에서 불이익을 안 준다”는 말이 더 큰 상처였다.

몇 달 동안 이 학생과의 길고 긴 면담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전 없이 평행선만 달렸다. ‘강남 학교는 되는데 왜 우리 학교만 안 되나’ ‘선생은 왜 규칙을 지키라며 원칙만 말하나’란 비난이 이어졌다. 그동안 사고뭉치 남학생 반의 담임을 할 때 자주 통했던 “너 나 알지? 내가 항상 네 편이라는 거 너 믿지?”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2학기가 되자 교사로서의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시 전형 기간,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기 위해 보컬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A 교사에게 조퇴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오후가 되면 수업을 빠지고 학원에 갔다. 한 학부모는 병원 진단서를 낼 테니 질병으로 인한 결석 처리를 부탁했다. 심지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 화, 목요일 오전 10시에 학원을 가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출결관리와 담임교사와의 관계는 대학입시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오후 수업에 나오지 않으면서 그는 설 자리를 잃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A 교사는 그간 근무했던 학교들에서 해왔던 것처럼 진심을 다해서 학생과 이야기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고 한다. 언제나 학생들 편에 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진심이 통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교직생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다.

A 교사는 “대학입시 앞에서는 예의를 벗어던지고 너무나 적나라하게 이해관계를 드러내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보며 실망하고 자책도 하다가 곧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을 예감했다”고 고백했다.

○ “학부모 민원 안 생길까” 눈치보기 급급

경기도 소재 중학교 교사 B 씨(37)는 얼마 전 발신전화번호 표시제한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어느 학생의 학부모인지 밝히지 않은 채 느닷없이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자습을 얼마나 시키기에 애가 늦게 오냐,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등 지나친 폭언과 욕설은 B 교사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았다.

억압되고 관료적인 교사 집단 분위기로 B 교사는 우울증 증세도 보였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에 B 교사는 “교사이기보다 학교라는 조직의 부품으로 느껴졌다”고 전한다. 억압된 분위기 탓에 자신감은 떨어졌고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학부모의 민원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하게 됐다. 관리자한테 혼나는 건 아닌지 자기 검열도 하기 시작했다.

B 교사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교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로서의 의무감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화를 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참가 교사를 대상으로 심리를 분석한 결과 교사들은 ‘슈드 비 콤플렉스(Should Be Complex)’에 시달리고 있다고 나왔다. 언제나 남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야 하는 교사의 직업적 특징상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언제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상태다. 사회복지사, 교사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기대치가 높은 직업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콤플렉스다.

실제로 참가 교사들의 집단 스트레스 정도를 확인한 결과, 과도한 감정 억제와 자기희생으로 심리적, 신체적 주의를 요하는 ‘2단계 주의’ 스트레스 상태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직장인 평균 스트레스보다 높은 상태다.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는 “교사들은 학부모의 언어폭력에 1차 내상을 입고 동료 교사로부터 공감 대신 냉정한 조언을 듣는다. 이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 자존감 저하, 무력감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교사 개인의 잘못 때문이라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하고 동시에 교사들 사이에 서로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교사#학부모#스트레스#마인드프리즘#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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