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속도 높여 일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걸어 들어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출발이 늦은 만큼 국정철학을 공유해 속도를 높여 일하자”고 당부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부처 예산을 따로 줄 게 아니라 협력을 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면 예산이 그 협의체로 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부처 중심에서 TF팀 중심으로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바꾸겠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주재한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새 정부에서는 모든 부처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부처 간 칸막이 철폐를 통해 일관성과 효율성을 다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비공개회의에서는 “부처 이기주의를 없애고 TF팀이나 협의기구를 만들어 (각 부처가) 너와 나의 일을 구분하지 말라”며 “TF팀에서 예산을 집행해야 협업 체제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또 “협업 체제는 정부 부처뿐 아니라 민간과 국민도 참여할 수 있는 광의의 협의체로 만들어야 한다”며 “한 부처가 잘한 것만 평가하면 공무원들은 기존 틀을 뛰어넘을 수 없는 만큼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정부 부처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달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칸막이 철폐에 이어 아예 TF팀에서 예산을 직접 집행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정부 운영과 평가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는 창조경제만 하더라도 관련 부처 협의체가 꾸려지면 추진부터 성과까지 모든 책임을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뿐 아니라 협의체 전체가 져야 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2시간 넘게 주재하며 7000자 분량의 각종 지시를 쏟아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지연으로 ‘잃어버린 21일’을 만회하려는 듯 속도전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출발이 늦은 만큼 국정운영의 방향과 목적을 분명히 알고 보다 효율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며 “씨앗을 잘 골라 뿌려야 1년 농사가 잘되듯이 지금 국정 5년의 씨앗을 뿌린다는 각오로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수석비서관들에게 “장차관을 최대한 지원하라”는 주문을 여섯 차례 이상 반복했다.
▼ ‘잃어버린 21일’ 만회하려는 듯… 7000자 분량 지시 쏟아내 ▼
○ 민원 피드백 강조
박 대통령이 이날 새로 제시한 것 중 하나는 ‘민원카드’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가) 민원카드를 작성해서 한 사람의 문제가 끝까지 해결될 수 있도록 하라”며 “한 가지 민원이 해결되면 동일한 문제가 있는 10만 가구의 민원이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임식 당일 ‘희망 복주머니’ 행사 때 접수한 365개 민원은 대통령이 된 이후 국민과의 첫 약속”이라며 “(민원 처리 결과를) 한 번 회신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해 국민들이 ‘내 삶이 이렇게 바뀌었구나’라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공약 따로, 장관의 어젠다 따로’가 아니다. 공약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는 것이 장관의 책임”이라며 “백방으로 열심히 했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5년 후에 국민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유념하라”고 말했다.
○ 창의적 직종 발굴 지시
박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미국은 직종이 3만 개, 일본은 2만5000개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현재 1만 개 정도”라며 “선진국에 우리와 다른 창의적 직업군이 있을 것이다. 체계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발굴해 보고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일자리 정보를 통합하고 연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만들기만 하면 무엇 하느냐. 이것을 국민들한테 널리 알려서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이 자꾸 국내에서만 경쟁하면 레드오션이 될 수밖에 없다”며 “현지 외교 접촉 통로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지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구축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하거나 금융거래 자체가 막혀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국민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분들에 대한 구제는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한다는 시각에서 공동체적 관점으로 접근해 달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기본적 인프라로 ‘저작권 보호’를 강조한 뒤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남의 저작물을 가져가는 것도 부도덕한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저작권을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최근 잇따르는 안전사고와 관련해서는 “안전수칙만 지키면 많은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며 “안전수칙을 안 지키면 벌칙도 따른다는 것을 반드시 주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정홍보 미흡 지적
박 대통령은 정책 혼선에 대해 질책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 입장이 무엇인지 사전에 잘 의논해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멘트를 해야 한다”며 “국민이 모르거나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정책은 없는 정책이나 마찬가지다. 정책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 정책 혼선은 △담배가격 인상을 둘러싼 부처 간 이견 △4대 중증질환 보장 후퇴 논란 △기초연금 도입안에 대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 등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과다노출 경범죄 처벌의 경우처럼 실제로는 처벌을 완화하는 것인데도 마치 새로운 처벌 조항이 생긴 것처럼 오해를 많이 하는 일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처음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도 ‘정확한 대국민 홍보’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부 정책을 둘러싼 논란들을 ‘홍보 미흡’에서 빚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창조경제 등의 개념이 (국민)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구체적 언어로 풀어서 전달할 방법을 찾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날 쏟아낸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21일 시작되는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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