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300만원 들인 영화… 베를린영화제서 박수갈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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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이돈구 감독 ‘가시꽃’

베를린영화제의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앞에 선 ‘가시꽃’의 주연배우 남연우
(왼쪽)와 이돈구 감독. 베를린=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베를린영화제의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앞에 선 ‘가시꽃’의 주연배우 남연우 (왼쪽)와 이돈구 감독. 베를린=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 야호!”

9일 오후(현지 시간) 베를린 국제영화제 주 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앞에서 한국 청년 둘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된 한국 영화 ‘가시꽃’의 이돈구 감독(29)과 주연 남연우(30)다. 2000여 명이 극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가시꽃’의 프리미어 시사회가 막 끝나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박찬욱,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이을 잔혹미학”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가시꽃’은 단돈 300만 원으로 찍었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약 50억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푼돈’을 들인 영화로 세계 각국에서 7000여 편이 지원해 400편 남짓만 초청받은 세계 3대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것이다.

“목욕탕 세신사(때밀이) 보조, 세탁물 배달, 주차 대행 등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100만 원이 모였어요. 나머지 200만 원은 (이 영화의) 김희성 프로듀서 여자친구에게서 빌렸죠.”

영화 촬영용 카메라는 임대할 엄두가 나지 않아 디지털렌즈교환식(DSLR) 카메라를 빌렸다. 촬영 장비 대여료로 80만 원을 지불하고 나니 끼니는 하루 두 끼 삼각 김밥으로 때워야 했다. 촬영팀은 결국 294만 원을 쓰고 6만 원이 남아 삼겹살 파티를 했다.

‘가시꽃’은 고교 시절 친구의 강요로 여학생을 성폭행한 청년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죗값을 치르는 이야기. 지난해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과 모로코 마라케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007년 대학(동아방송예술대 연기 전공)을 졸업하고 단편 4편을 찍었는데, 국내 어떤 영화제에도 초청받지 못했어요. 이번 영화는 포기하지 말라고 주신 선물 같아요.”(이 감독)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 전공) 나와 연기학원 강사로 근근이 생활비를 마련했어요. ‘용의자X’ 같은 상업영화에 출연했는데, 다 잘리고 2초 정도 나오더군요.”(남연우)

‘88만 원 세대’ 감독과 배우는 이번에 짜릿한 반전을 맛봤다. 영화제 주최 측은 항공편과 숙박을 제공하고 BMW 승용차로 공항에 마중 나왔다. 남연우는 “오늘 아침 잠에서 깨서 ‘여기가 어디지’라고 했다. 꿈만 같다”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그가 신경 좀 썼다는 레드카펫용 의상은 ‘겨울 상품 80% 할인’ 행사에서 산 5만9000원짜리 코트였다.

“어머니가 ‘견문 넓히고 오라’라며 배낭 여행비 100만 원을 주셨어요. 많이 배우고 돌아갈 겁니다.” 배우의 말에 감독이 단호한 어조로 응수했다. “(돈) 많이 남겨. 영화 만들어야지.”

베를린=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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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꽃#이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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