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1부/미래형 직업을 찾아서]<3>日 캐릭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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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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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캐릭터로 10년간 2조원 매출… ‘황금알’ 낳는 사람들

일본 도쿄 에비스 역 인근에 있는 캐릭터 회사 ‘자미’사의 사무실 모습. 사진 가운데에 있는 노란 말 모양의 완구가 이 회사가 디자인하는 ‘로디’ 캐릭터다. 일본에선 완구뿐 아니라 옷이나 가방, 휴대전화 액세서리, 심지어 식료품에서도 로디 캐릭터를 쉽게 볼 수 있다. 도쿄=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일본 도쿄 에비스 역 인근에 있는 캐릭터 회사 ‘자미’사의 사무실 모습. 사진 가운데에 있는 노란 말 모양의 완구가 이 회사가 디자인하는 ‘로디’ 캐릭터다. 일본에선 완구뿐 아니라 옷이나 가방, 휴대전화 액세서리, 심지어 식료품에서도 로디 캐릭터를 쉽게 볼 수 있다. 도쿄=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제가 입사한 1990년대 초에 캐릭터회사는 별로 인기 없는 직장이었어요. 캐릭터 상품이라곤 팬시문구 정도밖엔 없었던 시절이었죠. 지금요? 입사경쟁률이 100 대 1이 넘어요.”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간다 지역에 있는 캐릭터업체 ‘산엑스㈜’에서 만난 구로다 마사카주 씨(43)는 이 회사의 라이선스 담당자다. 산엑스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곰 캐릭터 ‘리락쿠마’를 만들어낸 일본 상위권 캐릭터업체. 리락쿠마는 주변에 무관심하고 만사를 귀찮아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한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산엑스가 최근 10년간 리락쿠마로 올린 매출만 1600억 엔(약 2조2000억 원)에 이른다. 이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산엑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한 일본 업체만 130여 곳이나 된다.

○ 캐릭터업체 입사는 하늘의 별 따기


구로다 씨는 고등학교 때 디자인 공부를 했고 대학도 4년제 전문대학인 도쿄 동양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할 당시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일자리는 대기업의 사보, 화보 일러스트레이터였지만 그는 과감히 캐릭터 회사를 택했다. 어린 시절 학교수업만 마치면 문구점에 들러 팬시학용품을 구경하는 게 취미였던 그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디자이너가 되려고 산엑스에 들어왔지만 정작 그에게 주어진 일은 달랐다. 12년간 상품기획 일을 한 뒤 이후엔 8년째 국내외 라이선스 계약을 맡고 있다. 그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애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캐릭터 회사에 들어온 게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캐릭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14억 달러. 의류 액세서리 완구 문구 식음료 등 갖가지 유형의 상품이 백화점과 문구점, 편의점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인기 캐릭터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음식점, 게임 등 간접적으로 파생되는 매출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 사이버 세계로 확장된 캐릭터산업


일본의 캐릭터산업은 최근 온라인 영역에까지 확장하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정보기술(IT) 기업 ‘사이버에이전트’가 대표적 사례다.

아오야마 분고 씨(36)는 사이버에이전트의 주요 서비스인 ‘아메바피그’의 아트디렉터로 50여 명의 디자이너를 지휘한다. 아메바피그는 도쿄 번화가 등을 3차원으로 재현한 공간에서 회원들이 자기만의 캐릭터인 ‘아바타’를 만들어 활동하며 다른 아바타를 만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사이버상의 또 다른 삶을 구현한 것으로 벌써 10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아오야마 씨와 동료들은 회원들이 아바타에 적용할 수 있는 옷 자동차 모자 가구 음식물 꽃 과일 등 사이버 아이템을 매달 500개씩 도안한다. 실물만큼, 아니 그보다 더 멋지게 만든 ‘상품 캐릭터’가 아메바피그의 주수입원이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교실에 다니며 캐릭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 그는 도쿄예술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졸업 후엔 게임회사 등에 다니다가 2010년에 이 회사의 정식 직원이 됐다. 아오야마 씨는 “‘유저’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게 너무 즐겁다”며 “내가 만든 캐릭터 아이템들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보존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캐릭터 회사에는 자유로운 생활방식과 창의성, 개성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 많다. 근무시간도 다른 직종보다 자유로운 편이다. 입사경쟁이 치열하지만 전공에 딱히 제한은 없다. 사이버에이전트의 디자이너 중에도 절반 정도는 미술 외 전공자들이다. 초봉은 일본의 일반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디자이너들에겐 능력에 따른 연봉제를 적용한 회사가 많다.

일본 ‘자미’사의 캐릭터디자이너 마에다 히데오 씨(38)의 삶의 모토는 ‘일도, 여가도, 인생도 즐기며 사는 것’이다. 자미사는 뚱뚱하고 다리 짧은 말을 형상화한 이탈리아의 캐릭터 ‘로디’를 수입한 뒤 일본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다시 상품을 디자인해 판매하고 있다. 로디는 일본에서 유아들의 지명도 5위권 안에 드는 인기 캐릭터다.

마에다 씨는 “내 감각을 믿고 항상 개성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며 “캐릭터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겐 ‘돈보다는 자신이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먼저 체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日 캐릭터산업 ‘고령화 위기’ 해법은 성인-해외시장 공략 ▼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캐릭터 산업의 위협 요인은 고령화다. 최대 소비층인 어린이가 줄면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15세 이하 인구 비중은 14%로 매우 낮은 편이다. 이런 점 때문에 2008년 133억 달러였던 일본의 캐릭터 시장 규모가 2010년 118억 달러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97억 달러로까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의 캐릭터 기업들은 해외 시장과 온라인 등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사이버 에이전트 같은 업체는 온라인상의 사이버 캐릭터 산업으로 많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신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성인을 위한 캐릭터 시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익숙한 세대들이 성장해서도 캐릭터 상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일본 20대 이상 성인층의 캐릭터 상품 소비 비중은 전체의 35%가 넘는다. 산엑스의 구로다 씨는 “고령화 추이만 보면 미래가 어두워 보이지만 이런 성인층의 캐릭터 소비를 감안하면 시장이 쉽게 위축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창의력-열정 있으면 OK”… 전공제한 따로 없어 ▼
■ ‘캐릭터 회사’ 취업하려면


1일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의 토이뮤지엄을 찾은 관광객들이 다양한 국산 캐릭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건립된 국산 캐릭터 홍보판매관이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1일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의 토이뮤지엄을 찾은 관광객들이 다양한 국산 캐릭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건립된 국산 캐릭터 홍보판매관이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캐릭터 산업엔 디자이너 말고도 다양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캐릭터 기획자, 애니메이션·게임·출판·유통·마케팅 전문가 등이 함께 일합니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갖춘 젊은이라면 얼마든지 이 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캐릭터·애니메이션업체인 아이코닉스의 김종세 머천다이징사업팀 상무는 캐릭터 산업에 필요한 인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코닉스는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등의 캐릭터를 기획 제작한 회사다. 세계 120여 개국에 진출한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약 4000억 원. 한 해 로열티 수입만 120억 원이 넘는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 80여 명 중 디자이너는 20명 정도. 나머지는 상품 기획 및 제작, 라이선스, 마케팅, 유통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학력과 경력도 다양하다. 지난해 아이코닉스에 입사한 10명 중 4명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입사했다. 대학, 전문대 출신도 디자인, 만화, 애니메이션 전공 외에 다양한 학과를 나왔다.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어 올해도 10명 정도의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캐릭터 산업의 총 매출규모는 2010년에 5조896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1% 증가했다. 이 분야의 종사자도 2009년 2만3406명에서 2010년 2만5102명으로 7.2% 늘어나는 등 매년 1500∼2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캐릭터 산업은 매출이 10억 원 늘어날 때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 수를 뜻하는 고용유발계수가 19.0명으로 전체산업 평균(12.4명)보다 높다. 지난해 3분기에만 캐릭터 산업 분야에서 전년 동기 대비 39.4% 증가한 358억 원의 국내 투자가 이뤄졌다.

최근엔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로보카 폴리, 캐니멀 등 새로운 국산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출판 완구 등 전통적 분야에서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 등으로 캐릭터의 쓰임새가 확대되면서 시장 저변도 넓어지고 있다.

업계의 대졸 초임은 월 200만 원 안팎으로 아직은 낮은 편. 하지만 급성장하는 분야인 만큼 처우가 개선되고 있으며 정규직 비중이 88.6%로 영화(57.9%), 음악(74.9%) 등 다른 문화 분야 일자리보다 안정적인 게 장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서희선 창작콘텐츠산업팀장은 “한국의 캐릭터 산업은 이제 막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는 단계”라며 “특히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외국에 나가 우리 캐릭터를 알릴 해외 마케팅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취업#복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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