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한류를 이끄는 학자들]1∼3세대로 나눠본 해외의 한국학 학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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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대한 지식이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개항 이후 조선에서 활동한 미국과 유럽의 선교사와 여행가, 외교관 등에 의해서다. 이들은 언어 문화 역사 등에 관한 글로 한국을 알렸다. 그러나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왜곡한 정보에 의존하거나 서구중심적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한국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1897년 해외 최초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해외에서 한국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된 것은 1945년 이후 미국의 주도로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관심이 높아지면서부터다. 》
○ 1세대-해외 한국학의 개척자

해외 한국학자 1세대는 한국학을 배울 기관도 스승도 없는 척박한 학문적 토양에서 한국학을 개척했다. 이들은 중국학 일본학 러시아학 등을 연구하다 한국학으로 눈을 돌렸다.

러시아의 미하일 박 모스크바대 공훈교수(1918∼2009)와 중국의 박창욱 연변대 교수(84)는 연해주와 만주에서 태어난 한인 2세다. 미하일 박 교수는 50년에 걸쳐 ‘삼국사기’를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모스크바대에 한국사 강좌를 처음 개설하는 등 러시아 한국학의 토대를 닦았다. 박창욱 교수는 중국 조선족 역사 연구의 개척자로 만주와 간도 역사 연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일본의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1935∼1989) 가나가와대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조선사학자이자 사회경제사학자로 1978년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인정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미국인으론 에드워드 와그너 하버드대 교수(1924∼2001), 제임스 팔레 워싱턴대 명예교수(1934∼2006), 게리 레드야드 컬럼비아대 명예교수(80)가 있다. 이들은 1945년 이후 한국에서 미군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한국학자가 됐다. 와그너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지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초대 소장이 됐다. 팔레 교수는 예일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한 뒤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 조선사를 집중 연구했다. 레드야드 교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중국학을 전공하다 한국사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 2세대-해외 한국학의 기둥을 세우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69)는 해외 한국학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1.5세대로 분류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6·25전쟁에 관한 수정주의 이론으로 논쟁을 지핀 주인공이다.

해외 한국학 2세대는 한국학이 아시아학 내에서도 변방에 머물던 1970, 80년대에 1세대 한국학자들의 제자로 해외 한국학의 기둥을 세웠다. 이들 중에는 커밍스 교수와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67),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67)처럼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체류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다.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온 존 덩컨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한국학연구소장(67) 등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3세대-한국학 한류의 기회를 쥐다

해외 한국학자 3세대의 주류는 1980년대 해외 유학을 갔다가 현지 대학교수로 자리 잡은 한국인이나 한인 교포 2세 출신이며 연령은 주로 40대 후반∼50대 초반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51), 김선주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50), 마이클 신(신동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46), 연재훈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교수(51) 등이다.

‘한국학의 기원과 계보’(2003) 논문을 쓴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사회학)는 “해외 한국학자 3세대에서 아직 뚜렷한 업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고 한류라는 큰 기회를 갖게 된 만큼 연구 분야를 다양화하고 활발한 연구 성과를 낼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한형직 인턴기자 서울대 사회학과 3년   
오정현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3년   
강미은 인턴기자 연세대 사회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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