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안 국회 통과]‘최루탄 테러’ 속에 통과된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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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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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직권상정… 170명중 151명 찬성4년 5개월만에 통과… 내년 1월 1일 발효

이런 모습 없어질 날은 언제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최루탄을 꺼내 터뜨린 뒤 의장석을 향해 최루탄 가루를 뿌리고 있다. 의장석에 있던 정의화 국회 부의장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이런 모습 없어질 날은 언제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최루탄을 꺼내 터뜨린 뒤 의장석을 향해 최루탄 가루를 뿌리고 있다. 의장석에 있던 정의화 국회 부의장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2011년 11월 22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정부 간에 공식 합의된 지 4년 5개월 만에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처리돼 한국 경제에 새로운 지평을 연 날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국회가 헌정 사상 초유의 최루탄 테러를 당한 날로 남게 됐다.

이날 오후 4시 8분. 비준안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리를 잡고, 박희태 국회의장에게서 사회권을 넘겨받은 정의화 부의장이 의장석에 앉아 개회를 준비하던 순간이었다. 정 부의장을 의장석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멱살을 잡았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의장석 앞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 부의장은 수건으로 코를 막으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의원은 바닥에 흩어진 백색 가루를 모아 정 부의장을 향해 뿌리기도 했다. 정 부의장은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의장석을 내려왔다. 여야 의원들은 기침과 함께 눈물, 콧물을 흘리며 본회의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경위들이 끌어내자 김 의원은 온몸을 뒤틀면서 “FTA는 안돼!”라고 외쳤다. 김 의원은 격리 조치됐지만 잠시 후 본회의장에 다시 들어왔다. 그는 기자들에게 “폭탄이 있었다면 한나라당 일당독재 국회를 폭파해버리고 싶었다”며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좌관들에게 “(내가) 감옥에 갈지 모르지만 일을 열심히 해 달라”고 ‘당부’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나라당이 비준안을 단독으로 상정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문학진 의원이 해머로 회의장 문을 부순 사건에 이어 한미 FTA가 두 번이나 국회 폭력의 빌미가 돼 국회의 권위는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입었다.

끌려나가는 김선동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며 최루탄을 터뜨린 뒤 국회 경위들에 의해 본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끌려나가는 김선동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며 최루탄을 터뜨린 뒤 국회 경위들에 의해 본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한 의원들은 김 의원이 ‘범행’ 전 가방을 들고 의장석 주변을 서성거렸다고 한다. 김 의원이 어떤 경로로 최루탄을 본회의장에 가져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장비가 아닌 사제(私製) 최루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장비용 최루탄의 겉면은 검은색인데, 김 의원의 최루탄은 노란색이라는 설명이다. 민노당 관계자는 “내 생각에는 과거 시위 때 경찰에게서 빼앗아 전리품처럼 갖고 있던 것을 쓴 거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본회의가 끝난 후 “김 의원은 170명가량의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이 있는 자리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테러를 가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발 방침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 예고된 단독처리

이날 한나라당의 비준안 단독처리는 예고된 것이었다. 오전 11시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합의처리를 위한 마지막 협상을 벌였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황 원내대표는 단독처리 가능성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후 한나라당 지도부는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다고 한다.

○ 이 대통령, 직접 국민 설득 예정


이날 ‘최루탄 테러’ 외에도 본회의 개회 전 야당 당직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본청 4층의 유리창을 깼다. 이 때문에 본회의가 끝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떠난 회의장 곳곳에는 상흔이 남았다.

민주당 등 야당은 전면적인 ‘무효투쟁’과 함께 향후 국회 일정을 중단하기로 했다. 새해 예산안 심사가 차질을 빚는 등 정국 경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본회의 직후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한 FTA의 무효를 선언하고 무효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모든 국회 일정 중단 선언과 함께 박 의장과 정 부의장 등에 대한 즉각 사퇴를 촉구하는 동시에 민노당 의원들과 함께 본회의장에서 항의농성에 돌입했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한미 FTA가 공식 발효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FTA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연다. 또 이 대통령은 이르면 이날 기자간담회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직접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 김 의원 형사처벌 가능성

검찰은 국회의장이나 한나라당이 김 의원을 공무집행방해, 국회회의장 모욕죄(형법 138조)로 검찰에 고발할 경우 기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죄목은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소동을 벌인 경우 적용되는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검찰 관계자는 “2008년 외통위 회의장 문과 명패를 부순 문학진, 민노당 강기갑 이정희 의원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됐지만 재판부가 1, 2심에서 국회 기물 파손 혐의(공용물건 손상)를 적용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정식 회의가 아니어서 공무집행방해란 포괄적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라며 “김 의원 건은 회의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 일각에선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 또는 협박한 경우에 적용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7년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를 거론하는 의견도 있다. 최루탄을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할 경우 터뜨린 행위 자체를 폭행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66년 9월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 사건에 관한 대정부질의가 진행 중이던 국회 본회의에서 정일권 국무총리 등이 앉아 있는 국무위원석에 인분(人糞) 등의 오물을 던진 무소속 김두한 의원은 사건 후 의원직을 잃었다. 이어 국회의장 모욕,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선동 의원은 4·27 전남 순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호남 최초의 민노당 국회의원이 됐다. 고려대 물리학과 3학년 때인 1988년 광주학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서울의 주한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이다 구속돼 제적된 전력이 있다.

외통위 소속인 김 의원은 지난달 25일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물리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최루탄 사태를 예고한 것이 됐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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