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진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검증 리포트]서울공대생이 5시간 출퇴근하며 아버지 친구회사서 납땜-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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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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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인사검증팀은 권재진 법무부 장관 후보자(58·사진)가 고위공직자로서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검증하기 위해 20여 일간 취재했다.

특히 권 후보자의 두 아들이 산업기능요원, 상근예비역으로 병역을 마친 과정이 정상적이었는지를 다각도로 검증했다. 그 결과를 ‘인사검증 리포트’로 만들어 소개한다. 권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8일 열린다.

《 권재진 법무부 장관 후보자(58)의 핵심 검증 대상은 두 아들의 병역 문제다. 장남(30)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고 차남(29)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했다. 모두 현역 복무를 하지 않은 것. 문제는 이들이 현역 복무를 면제받은 과정이 미심쩍다는 사실이다. 》
●의혹1. 장남 공익근무하려고 위장 전입?

권 후보자의 장남은 1999년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에 입학한 뒤 2000년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소집(4급·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당시 병역법은 한쪽 눈 시력이 ―9 디옵터 이하면 보충역 대상이었고 권 씨의 시력은 ―9.5 디옵터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아파트에 부모와 같이 살던 권 씨는 2002년 2월 8일 당숙이 사는 관악구 봉천동으로 어머니 최모 씨(54)와 함께 주소를 옮겼다. 권 씨는 5월 27일 서울대 공익근무요원(일반행정 보조)으로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편한 근무지'로 선호도가 높은 서울대에서 근무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인사청문회 준비팀 관계자는 "학교와 집이 너무 멀었고 서울대에서 공익근무도 하고 싶어 이사한 것"이라며 "실제로 봉천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위장전입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권 후보자가 뒤늦게 주소를 옮긴 사실을 알고 장남에게 대치동으로 다시 주소를 옮기라고 했고 입영연기를 통해 공익근무 발령 자체가 취소됐다"고 덧붙였다. 권 씨는 실제로 봉천동으로 주소를 옮긴 석 달여 만인 5월 3일 전에 살던 어머니 최 씨와 함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주소를 다시 옮겼다. 권 씨가 주소를 다시 대치동으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라는 판정이 난 이유는 공익근무요원 신청 당시엔 봉천동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 씨의 당숙은 지난달 21일 검증팀과의 통화에서 "조카는 우리와 같이 살았고, 형수(권 후보자의 부인)는 일주일에 한두 번 다녀갔다"고 말했다. 권 후보자의 부인은 결국 아들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셈이다.

당시 병무청은 권 씨와 어머니 최 씨의 위장전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공익근무요원 소집규정에 따르면 소집대상인원이 많으면 현지 실태조사를 통해 위장전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병무청은 "당시 관악구는 소집 대상이 많지 않아 규정에 따라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혹2. 권 후보자 친구가 특별채용?

서울대 공익근무요원 근무를 포기한 권 씨는 2002년 9월 23일부터 2004년 12월 22일까지 경기 포천시 군내면의 국제나이론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다. 병역특례를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산업기능요원은 전문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제도로 현역은 업무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보충역은 채용만 되면 자격증 없이도 근무가 가능했다. 산업기능요원은 현역, 보충역과 같은 기간을 근무한다.

검증팀은 이 회사가 권 후보자와 경북중고교 동창인 최모 씨(58)가 운영하고 있는 사실을 지난달 19일 확인했다. 고3 때 단짝으로 지낸 권 후보자와 최 씨는 이후에도 교류를 계속하는 등 절친한 사이다. 국제나이론은 양말을 만드는 기계를 생산하는 곳으로 권 씨는 2년 여간 생산라인에 투입돼 납땜, 포장 등의 일을 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 회사는 대부분 공고졸업자나 전문대 휴학생을 채용한 뒤 군에 입대할 때가 되면 산업기능요원으로 전환해 채용해 왔다.

검증팀은 권 씨가 아버지 친구 밑에서 제대로 근무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서울대에 다니는 친구의 아들을 불러 생산현장에서 중노동을 시켰을 가능성은 작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일을 시킬 계획이었으면 50㎞가 넘는 포천 공장으로 친구의 아들을 보내라고 권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가 2003~2005년 자신의 숙부가 운영하는 교육소프트웨어개발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면서 실제로는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사례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본 것. 병무청은 뒤늦게 싸이의 근무실태에 대한 조사 끝에 35개월의 복무 기간 중 4개월만 복무한 것으로 인정한 뒤 현역으로 입영해 복무하도록 조치했다.

검증팀은 지난달 19일 최 사장을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권 후보자에게) 아들을 사회생활도 미리 경험해보라는 뜻에서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해 보라고 제안했고 (권 후보자도) 이에 동의했다"며 "친구 아들이라고 특혜를 주지는 않았다. 국회에서 증언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또 "권 씨가 당시 사우회(社友會) 총무도 맡는 등 직원들 사이에서 신망도 두터웠다"고 말했다. K사 관계자도 "무단결근을 하거나 태만하게 근무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검증팀은 권 씨의 출근일지와 휴가사용 내용 등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국제나이론 측은 "공장 문을 닫으면서 모든 문서를 폐기했다"고 했다.

국제나이론은 2000년에는 현역 1명과 보충역 1명, 2001년엔 현역 1명만 산업기능요원으로 선발했지만 권 씨가 입사한 2002년에는 보충역만 4명을 뽑았다. 2003년에는 다시 보충역 1명만 뽑았다. 권 씨가 입사한 2002년에만 보충역 정원을 늘린 것이다. 최 씨는 "보충역은 정부가 정원을 할당하지 않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씨가 권 후보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장남 권 씨를 채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혹3. 서울 놔두고 굳이 포천까지?

IT업체 등 회사들이 많은 서울 강남구에서도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 회사가 많았지만 권 씨는 왕복 5시간 이상이 걸리는 포천까지 매일 출퇴근했다고 했다. 서울대를 다니던 권 씨가 굳이 포천까지 가서, 그것도 생산직으로 근무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권 씨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으로 간 뒤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9시까지 출근했다고 주장했다. 검증팀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빠른 길 찾기' 검색으로 출근거리와 시간을 측정해 봤다. 자동차로는 약 54㎞, 1시간 20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고,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30분(약 58㎞)이 걸렸다. 권 씨가 통근버스와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점을 감안하면 매일 출퇴근에만 5시간 안팎을 쓴 셈이다.

권 후보자 측은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2003년 9월 경기 의정부시 신곡동에 원룸을 얻어 지냈다"고 밝혔다. 국회 인사청문요청서에도 이 같이 주소를 옮긴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옮긴 곳에서도 포천 공장까지는 왕복 2시간 반 거리다.

지난달 21일 검증팀은 권 씨가 살았던 원룸을 찾아가 당시 건물주인 배모 씨와 통화했다. 그는 "(권 씨의) 어머니가 월세, 공과금을 매달 20만 원씩 계좌로 부쳐줬지만 실제로 살았는지는 모른다. 임대계약서는 건물을 팔면서 모두 폐기했다"고 말했다.

과연 권 씨는 성실히 근무하며 산업기능 복무를 마친 것일까. 검증팀은 권 씨와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을 찾아 나섰다. 직원 수가 100명이 넘던 국제나이론은 2006년 경영난에 부닥쳐 구조조정을 한 뒤 2008년에는 결국 공장을 폐쇄했다. 동료 직원 찾기가 벽에 부닥친 것이었다.

병무청은 2000~2004년 국제나이론에서 근무한 산업기능요원 9명의 명단을 민주당 신학용 의원실에 제출했다. 그러나 성씨와 근무 전 다녔던 학교만 공개하고 이름, 나이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제나이론 측도 직원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검증팀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병무청이 제출한 명단에 나타난 성씨와 학교를 토대로 추적을 시작했다. 명단에 나온 경민대 졸업생 69명 가운데 상당수를 접촉했지만 권 씨와 함께 근무한 당사자는 아니었다.

국제나이론에서 근무한 산업기능요원 중에는 광운전자공고 중퇴생으로 성이 양 씨인 사람도 있었다. 1993~2002년 광운전자공고 중퇴생 가운데 양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총 10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증팀은 이 가운데 1980년 이후에 출생한 6명 중 5명을 접촉했지만 4명은 산업기능요원이 아닌 공익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1명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것을 확인했지만 권 씨와 근무지가 달랐다. 나머지 1명은 소재 파악이 안 돼 만나지 못했다.

검증팀은 근무를 태만히 했다고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언이나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법무부는 "산업기능요원 동료들로부터 근무를 성실히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검증팀이 연락처를 요청하자 공개를 거부했다.

●의혹4. 장남 김앤장 취업 특혜?

권 씨는 올해 1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수습변리사로 채용됐다. 변리사는 합격 후 1년간 법무·특허법인에서 실무수습을 거쳐야 단독 개업을 할 수 있다. 법인들은 수습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 일할 사람을 위주로 채용하기 때문에 권 씨는 사실상 정식으로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한변리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시험에 최종 합격한 사람은 모두 244명. 이 가운데 김앤장에 채용된 사람은 권 씨를 포함해 모두 4명(서울대 3명, 포항공대 1명)에 불과했다.

변리사업계 관계자는 "김앤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만큼 대학의 특정학과 출신이거나 최상위권 성적자, 외국어 능통자 등 스펙이 뛰어난 사람만 채용한다"며 "변론실력도 중요하지만 집안 배경이 좋은 사람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권 씨는 김앤장에 들어간 지 두 달도 안돼 돌연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김앤장 관계자는 지난달 20일 검증팀 기자와 만나 "권 씨가 갑자기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다"며 "법적으로 문제를 따져봐야겠지만 미국에서 돌아오면 다시 실무수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갓 입사한 새내기 변리사가 수습을 중단했는데도 김앤장은 그를 사직처리 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상 휴직상태로 인정해 언제든 권 씨가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한 셈이다.

●의혹5. 차남 상근예비역 어떻게?

권 후보자의 차남도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1년 8월 징병검사에서 평발과 근시로 3급 판정을 받았다. 병무청은 같은 해 11월 상근예비역으로 입대하라고 통보했다. 상근예비역이란 현역 가운데 일부를 추첨으로 선발해 지역예비군 동대에서 근무토록 하는 제도다. 옛 '방위'와 비슷해 복무기간에 집에서 출퇴근한다. 권 씨는 대치2동 예비군동대에서 2002년 12월 10일부터 2005년 1월 2일까지 근무했다. 형과 동생이 비슷한 시기에 병역을 이행하면서 형은 54㎞나 떨어진 곳에서, 동생은 집 근처에서 마친 셈이다.

병무청 규정에 따르면 △상근예비역 1순위는 수형자나 소년원생 등이고 △2순위는 중졸에 신체등급 3급 △3순위는 고교 중퇴에 3급 △4순위는 고졸에 3급 △5순위는 중졸에 2급이다. 재수생이었던 권 씨는 4순위로 선발됐다. 권 후보자 측은 "대치동에는 1~3순위가 많지 않았고 같은 순위 내에서는 생일이 빠른 지원자를 우선 선발하는데 권 씨는 생일이 4월로 빠른 편이었다"며 "특혜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동생 권 씨는 지난달 24일 검증팀과의 통화에서 "추첨으로 선발됐다. 병역 회피는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동생 권 씨는 형의 산업기능요원 복무에 대해서는 "눈이 아주 나빠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뒤 의정부 쪽 산업체에서 일한 것은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른다"고 말했다.

●의혹6. 권 후보자 변호사법 위반?

권 후보자는 2009년 9월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취임한 뒤 3개월 동안 변호사 휴업 신고를 하지 않아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 후보자는 2009년 7월 2일 서울고검장에서 물러난 뒤 같은 달 14일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9월 1일 민정수석비서관이 됐지만 변호사 휴업 신고는 11월 30일에야 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나 변호사가 휴업을 하지 않는 한 공무원을 겸직할 수 없다.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제명 또는 3년 이하의 정직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변협 관계자는 "형식적으로는 변호사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알고서도 방치했는지, 단순 실수였는지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을 수임해 수임료 등을 받았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단순 실수라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사청문회 준비팀 관계자는 "변호사회비가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휴업신고를 안 한 사실을 알았다. 단순 실수"라며 "민정수석 시절 변호사 영리 활동을 한 것은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 인사검증팀>

▽사회부 박진우 조숭호 김재홍 유성열 박훈상 김성규 손효주 전지성

▽정치부
조수진 황장석

▽경제부 황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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