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김민준 ‘서브남주’ 논란이 이상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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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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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민준의 이른바 '서브남주 논란'이 지난 주말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발단은 인터넷매체 'OSEN'의 22일자 기사 ''서브 남주' 윤계상-김민준, '독고진 안 부럽다''였다.

기사는 전반적으로 KBS2 드라마 '로맨스 타운'에서 메인급 정겨운과 비교해 김민준의 존재감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지만, 다음과 같은 단락이 문제가 됐다.

"주인공을 더 빛나게 하는 도구, 혹은 할 일 없이 서 있는 허수아비로 전락하기 십상인 것이 바로 서브 주인공들의 운명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연기력에 검증이 더 필요한 배우들이 서브 역할에 캐스팅되는 경향이 짙다. 메인급을 꿈꾸지만 냉정하게 놓고 봤을 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매력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배우들이라 생각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김민준은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서브남주란 말은 뭐냐?..허수아비? 메인급을 꿈꾸는?.. 서브 주인공들의 운명? 이봐 난 비록 발 연기를 하지만 카메오든 뭐든 대사 한마디 눈빛 한순간 그저 김민준이다. 어디서 누굴 평가해 텅빈 머리로?!"라고 반발했다.

그는 이어 "연기자 혹은 고명하신 배우님들이 자기 배역에 제약을 두고 난 조연이니까 조연만큼 연기하고 난 주인공이니까 조연 적당히 해 그런답니까. 이런 식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을 조롱합니까. 뭣 같지도 않은 수식어를 붙이고"라고 크게 반발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OSEN은 24일 '트위터 욕설 김민준, 영화 자존심은 어디 갔나?'라는 기사를 내보내 김민준의 반발을 비판하면서, 22일자 기사와 정반대 논조로 "매번 다른 캐릭터를 맡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그의 연기력은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이어 '김민준 씨. 원톱 주연을 무시해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조롱성 칼럼을 내보내기까지 했다. 이 칼럼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며 일은 더욱 커졌다.

물론 김민준도 시시각각 트위터를 통해 OSEN 측 대응을 비판했다. 이에 네티즌 반응도 서서히 OSEN 측에 비판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자 급기야 26일 '김민준 씨. 원톱 주연을 무시해 죄송합니다' 칼럼이 OSEN 및 각 포털사이트에서 내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김민준과 OSEN 간 치고받는 대립은 허탈하게 끝났다.

● 주연과 조연을 가르기 시작한 건 20세기 이후의 일

이번 사건의 전체적인 흐름은 미디어오늘이 잘 정리했다. 미디어오늘 24일자 기사 '"김민준 '서브남주'" 소동…언론사 대응 논란'은 "사실 이번 사건은 김민준 측의 적절치 않은 대응만 문제 삼았다면 여론은 충분히 OSEN의 손을 들어줄 만한 사안이었다"며 "하지만 OSEN은 '연기력 운운'하는 다분히 보복성으로 보이는 기사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외에는 다른 평가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애초 문제의 시발점이 된 '서브주연'이란 단어와 그 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브주연'은 신조어다. 누리꾼들이 최근에 만들어낸 단어로 보이며, 주연급과 조연급 사이 비중의 역할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런 역할에 대한 단어는 이미 존재한다. '주조연'이라는 단어다.

업계 내에서 쓰이는 기준은 대개 주연, 주조연, 조연, 조단역, 단역, 이미지단역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주조연, 조단역, 이미지단역 등의 단어는 일반대중에 익숙지 않아 '서브주연'과 같은 신조어가 대신 쓰이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극중 역할을 분류하게 된 걸까. 크게 놓고 봤을 때, 단역이라는 역할은 이전부터도 그런 식으로 정리되고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주연과 조연의 경우는 다르다. 그렇게 따로 부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이유는 명백하다. 역할 비중이 적고 대사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 캐릭터가 얘기의 중심이 아니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연과 조연으로 호칭이 따로 불리고, 그런 호칭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건 대략 20세기 초중반이 그 시작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 장르의 대중화가 불씨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그 대중화 과정 중에서도 '영화상(賞)'의 탄생이 그 기점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한 포털사이트의 지식백과에도 '조연' 항목에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하나하나의 희곡이나 각본에서 어떤 인물이 조연인가를 판별하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예로 들면, '햄릿'에서는 덴마크왕자 햄릿이 주역이고 덴마크궁정의 병사들이 단역임은 자명하지만, 덴마크왕 클로디어스의 역은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햄릿의 복수 행위의 대상이며 주역과 대립하는 원수역이므로, 연극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분명히 주역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연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또 오필리아는 중요도에 있어서는 클로디어스보다 뒤떨어지나, 햄릿의 사랑의 대상이며, 주역의 상대역이므로, 조연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중략) 극중의 인물이 아니라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 쪽에서 조연을 가려내는 방법이 있다. 즉 각종 연극·영화상 등의 선고(選考)에 있어, 조연상(助演賞)의 대상이 되는 배우가 맡은 역이 바로 조연이라 생각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연극을 대상으로 하는 토니상에 조연남우상·조연여우상 부문이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허무개그 같은 얘기긴 하지만, 결국 주·조연의 분류는 '상(賞)'에서 그 역할을 갈라놓은 것이 계기가 됐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김민준 '서브남주' 논란의 원인이 된 드라마 로맨스타운. KBS 사진제공.
김민준 '서브남주' 논란의 원인이 된 드라마 로맨스타운. KBS 사진제공.

● 주연과 조연을 따로 분류한 건 산업적 목적에 의한 것

그렇다면 영화상 등은 왜 주연과 조연을 갈라놓았을까. 일단 단어의 의미부터 파악해보자. 주연과 조연이란 단어는 의외로 역할 비중을 가리키는 의미를 담고 있진 않다. 영어로는 Leading Actor와 Supporting Actor로 표현된다. '이끄는 배우'와 '지원하는 배우'다. 이를 일본에서 주연(主演)과 조연(助演)으로 번역했다. '주인이 되는 배우'와 '도와주는 배우'다. 한국은 이 일본식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역할 규정은 위 지식백과 내용을 참고해봤을 때 그 어느 것이건 제대로 들어맞는 부분이 없다. 같은 '햄릿'을 놓고 봤을 때, 대체 누가 극을 이끌고 누가 그를 지원하며, 누가 극의 주인이고 누가 그 주인을 돕느냐는 말이다.

'햄릿'뿐 아니라 그 어느 콘텐츠에 적용해 봐도 마찬가지다. 이에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은, 애초 주연과 조연이란 단어는 급조된 인상이 짙다는 점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그야말로 '대충' 갖다 붙인 역할 개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급조해서라도 주연과 조연을 갈라놓게 된 걸까. 그 원흉(?)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미국 최대영화상이자 현존하는 세계 각종 대중문화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아카데미상이다.

아카데미상은 1929년 첫 시상식을 열어 지난 2월 제83회 시상식을 마쳤다. 미국의 연극 부문 최고권위상인 토니상이 1947년 처음 열렸고, 국제영화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베니스영화제도 1932년에야 창설됐으니, 그야말로 최고(最古)라는 얘길 들을 만하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은 3년 뒤 탄생한 베니스영화제, 17년 뒤 탄생한 칸영화제 등과 꽤나 다른 면이 있었다. 아카데미상은 영화에 대한 예술적 평가보다 철저히 영화계의 산업적 부흥을 목적으로 시상되는 경향이 짙었다는 점이다.

한창 미국대중의 영화 소비욕이 떨어졌던 대공황기에 창설됐다는 점부터가 그런 목적을 짐작케 한다. 영화와 영화인들에 상을 뿌리는 거창한 쇼를 열어 영화 장르에 대한 대중의 이목을 다시 끌어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작품상 등의 시상에 있어 상당부분 상업적 가능성과 성과를 치하하는 경향이 짙어졌고, 배우들에 대한 시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드러났다. 초기만 해도 클라크 게이블, 캐서린 햅번, 매리 픽포드, 베티 데이스, 라이오넬 배리모어 등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보이는 스타급 배우들, 그야말로 '콘텐츠 판매를 이끄는' 배우들에 주로 시상했다.

그러나 대공황 시대를 지나 산업이 점차 거대해지자 스타들에 대한 포상만으로는 부족하게 됐다. 영화산업은 스타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돼있고, 스타의 체인식 교체논리가 적용되는 산업이다. 그런데 비중이 큰 역할을 맡는 스타들에만 시상하는 구조로는 아직 그만한 역할을 맡기지 못하는 신예, 즉 미래스타의 론칭을 돕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9회째, 1937년부터 제정된 게 바로 남녀 조연상이었다. 기록상으로는 조연을 규정하고 그에 상까지 부여한 건 아카데미상이 세계역사상 최초다. 아직 스타성은 없는 신예, 또는 될성부른 면은 있지만 기회를 놓친 베테랑들에 상을 수여함으로써 대중의 이목을 끌어 '팔아먹을 수 있는' 배우로 등극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결국 주연과 조연의 구분은 애초 철저히 산업적 목적에서 비롯된 산업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는 세계3대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은 칸, 베니스, 베를린영화제에 아직까지 조연상 부문이 제정돼있지 않은 점으로도 쉽게 입증된다.

지난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크리스토프 월츠도 칸영화제에선 단 하나 뿐인 '남자 배우상'을 타갔다. 이는 세계3대 국제영화제가 아카데미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술본위 성격에 맞춰 시상하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적 목적을 배제하고 나면, 사실상 배우에 주연과 조연을 나눠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16분만 출연해도 콘텐츠를 '판' 사람이면 주연


아카데미상 얘기를 더 해보자. 아카데미상은 미국영화산업이 계속 부흥의 길을 걸을수록 주연과 조연 구분을 놓고 더욱 노골적으로 산업적 판단을 가했다. 비중 차원은 더 이상 논의거리조차 안 됐다.

조연상은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신예를 론칭시키는 역할과 함께, 기회를 놓친 노장들에 시상함으로써 '쇼'로서의 훈훈한 감동을 주는 장치로 응용됐다. 그렇다면 주연상은? 주연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콘텐츠를 '판' 장본인에 맞추는 것이 관례가 됐다. 말하자면 '산업적 역군'이 주연이 되는 것이다.

1992년 '양들의 침묵'이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휩쓸었을 당시가 한 예다. 남우주연상은 한니발 렉터 역으로 괴연을 펼쳤던 안소니 홉킨스에 돌아갔다. 그런데 홉킨스는 영화의 전체 118분 분량 중 불과 16분에만 모습을 보였다.

객관적 분량 면에선 어떤 의미로건 주연으로 해석되기 힘들었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은 극중 분량 차원과 무관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한편 이 같은 분류에 미디어의 의문이 일자 아카데미상 측은 '실질적으로 극을 이끌어간 것은 안소니 홉킨스'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야말로 Leading Actor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기준이라면 과거 극을 이끌었으나 조연으로 분류돼 조연상을 수상했던 마이클 케인(한나와 자매들), 티모시 허튼(보통사람들) 등의 경우와 들어맞질 않았다.

이에 대해 무비라인 등 미국 유수 영화전문지들은 결국 콘텐트를 '판 사람'이 홉킨스였다는 점에 아카데미 위원회가 주목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와 자매들'은 케인과 거의 비중이 같았던 우디 앨런이 '판' 콘텐트였으며 '보통사람들'의 경우 아카데미상 수상효과에 더해 처음 감독 역할을 맡아 화제를 모은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판' 콘텐트라는 배경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이 '극을 이끈' 배우더라도 분류가 달라진 것이다.

이 같은 개념은 1973년 경우에서도 명확히 확인되고 있다. '대부'가 작품상을 수상한 해다. 남우주연상 역시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은 말론 브랜도가 타갔다. 같은 영화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런데 극중 파치노의 분량은 브랜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지어 브랜도가 맡았던 비토 콜레오네가 극중 사망하고 난 뒤 40여분 가량을 파치노 혼자 이끌고 있었다. 애초 플롯 자체도 마이클 콜레오네 삶의 행적을 바탕으로 비토 콜레오네 역할이 심어져있어 실질적으로 극을 이끌어간 것은 파치노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었다.

그런데도 브랜도=주연, 파치노=조연 결론이 나온 것은, '대부'라는 콘텐트를 '판 사람'이 바로 브랜도라는 점을 인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파치노는 단 한 편의 주연작, 그것도 흥행에 실패한 주연작 만을 가진 신예였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이처럼 철저히 산업적 목적을 위해, 산업적 역할을 평가하기 위해 자기노선을 정립해나간 아카데미상은, 점차 권위와 기능을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여타 예술분야 상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47년 창설된 연극부문 토니상은 처음부터 당연한 듯이 조연상을 제정하고 시작했다. Supporting Actor를 Featured Actor라고만 바꿔 불렀을 뿐이다. 1948년 창설된 TV부문 에미상도 배우부문을 신설하고부턴 거의 동시에 주·조연을 나눠 시상했다.

한편 1960년대 이후 미국영화산업이 전 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해외 역시 아카데미상과 같은 극예술부문 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곳곳에서 영화상을 시작으로 각종 극예술부문 상들이 탄생했고, 그 과정에서 아카데미상의 구조를 벤치마킹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해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처음부터 주연상과 조연상 부문을 나눠 상을 제정했다. 물론 그 과정에는 한국도 끼어있었다. 그러면서 배우에 주연과 조연을 나눠 생각하는 사고가 대중문화산업과 이를 즐기는 대중 전체에 퍼졌다.

심지어 주연과 조연에 대해 아카데미상이 규정하는 방식마저 알게 모르게 해외에까지 전염됐다. 예컨대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이민정과 최다니엘의 비중은 거의 같다. 굳이 시간까지 따져보면 최다니엘 분량이 조금 더 많다.

그런데도 업계에서나 대중적으로나 이민정은 주연으로 분류되고 최다니엘은 조연으로 분류된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이민정이 '판' 콘텐트라는 인식들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1995년작 '영원한 제국'에서는 '대부'와 비슷한 전개가 벌어졌다. 극중 안성기가 맡은 정조 역의 비중은 조재현이 맡았던 이인몽 역에 비해 분량 면에서 압도적으로 적었다. 플롯 자체도 이인몽이 끌고 가는 형식이어서 Leading이라는 의미에서도 안성기는 주연으로 분류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안성기는 '영원한 제국' 홍보와 비평과정에서 늘 주연으로 분류됐고 실제로 몇몇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불과 단 한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봤던 조재현에 비하자면 안성기 쪽이 '판' 콘텐트라는 점에 대중과 평단, 업계의 인식이 부지불식 자리 잡았던 것이다.


● 산업적 역할기준과 예술본위적 원론의 차이


이제 다시 김민준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김민준은 "연기자 혹은 고명하신 배우님들이 자기 배역에 제약을 두고 난 조연이니까 조연만큼 연기하고 난 주인공이니까 조연 적당히 해 그런답니까. 이런 식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을 조롱합니까. 뭣 같지도 않은 수식어를 붙이고"라며 OSEN 기사를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주연이건 조연이건 주조연이건 간에 그런 식으로 역할을 구분하는 건 정확히 산업적 목적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예술가로서 배우 본인이 신경 쓸 건 못된다.

그러나 OSEN 기사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연기력에 검증이 더 필요한 배우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매력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배우들"이 주조연급, 조연급으로 분류된다는 점은 그리 틀린 해석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산업적 역할이 아직 덜 기대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꽤 주관적이었던 "주인공을 더 빛나게 하는 도구" "메인급을 꿈꾸지만" 등의 표현도 산업적 역할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에 못할 소리도 아니다.

그러니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자세를 언급하며 '서브주연'이라는 호칭에 반발한다는 건 경우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업적 기준에 예술가적 정신으로 반박하면 사실상 거의 무의미한, 아귀가 맞지 않는 반론이 된다.

지극히 세속적인 기능형 기준에 지극히 고명한 원론을 들이대는 격이다. 거의 공자님 경소리에 가깝다. 또한 조연이니 주조연이니 하는 역할 기준이 아무리 예술가로서 배우 본 역할에 어긋난다 해도, 그런 기준 자체를 무시할 것도 못된다.

어찌됐건 극예술 자체가 산업화돼있는 현실, 그 중에서도 산업화 핵심에 속하는 영상극예술 장르에서 활동하면서 산업적 역할을 가늠하는 기준을 폄하한다는 건 그 효과도 폄하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산업구조 하에서 기능하고 있는지조차 망각한 태도다.

물론 '산업적 역할 따윈 난 관심도 없고, 난 그저 배우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산업적 목적을 위해 배우 본연의 정신에 위배되는 오류를 받아들일 순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명배우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등이라고, 한국의 경우 송강호, 변희봉 등이라고 이런 오류를 몰랐을 리 없다. 다들 "카메오든 뭐든 대사 한마디 눈빛 한순간 그저"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송강호, 변희봉인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영화상 시상식장에 나와 자신을 '조연'으로 규정한 조연상을 받아갔다.

산업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이 무너지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신예들이 설 자리도 좁아진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민준과 잭 니콜슨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나고 있다.

● 산업적 역할에 맞춰 비중도 늘어나는 TV드라마

끝으로, '서브주연' 즉 주조연이란 특이한 역할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자. 영화 장르가 주연, 조연, 주 조연 따위 기준을 산업적 역할에 따른 사후 평가에 맡겨버리고 있다면, TV드라마 장르에선 실제로 산업적 역할 추이에 따라 극중 비중을 올려버리는 일이 가능하다. 한국 TV드라마는 사전제작이 아니라 동시제작 형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중이 크게 설정된 캐릭터들의 에피소드에 시청자반응이 떨어지면 비중이 적더라도 시청자반응이 좋은 캐릭터들 비중을 늘려버리는 방식을 택하곤 한다. 그러니 TV드라마에 국한해서는 주연, 조연, 주조연이라는 식 산업적 역할기준이 종국에 가서는 실제 극중 분량과 거의 일치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원활한 중심이동이 가능해지도록 TV드라마는 턱없이 비중이 적은 조연급보다는 주연만은 못하지만 딱히 조연이라 보기도 힘든 주조연이란 설정을 즐겨 동원하는 것이다.

김민준은 '로맨스 타운'에서 바로 그런 역할을 맡았다. 전형적인 주조연 설정이었다. '커플 대 커플' 구도를 들이민 뒤 반응 좋은 커플을 선택한다는 식 발상이 엿보였다. 그러나 총20부작 중 16부까지 방영된 현 시점에서 김민준이 맡은 김영희 역의 비중은 딱히 늘어나질 않았다.

적어도 메인급인 강건구(정겨운 분) 비중을 능가한 상황은 아니다. 제작진 측에서 시청자반응을 보고 딱히 비중을 역전시켜야겠다는 판단을 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김민준이 팔리고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김민준이 팔리고 있다'는 점을 유일하게 주장한 미디어 기사가 바로 OSEN의 ''서브 남주' 윤계상-김민준, '독고진 안 부럽다''였다. 김민준은 바로 그 기사에 반발한 것이다. 세상일은 참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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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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