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욘사마’ 틀에 갇혀버린 배우 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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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1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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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스타 배용준이 최근 특이한 건으로 화제에 올랐다. 수원지법 제2행정부(부장판사 김경란)가 22일 배용준이 2005년 귀속 종합소득세 23억2756만원 가운데 20억9588만원을 취소하라며 경기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한 건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2005년도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했다고 해서 납세 의무가 그대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며 "피고인 세무서는 원고의 신고 내용에 오류가 있는지 조사해 과세표준과 세액을 경정할 권한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의 연예활동에 관한 비용은 대부분 소속사나 제작사가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원고가 공제한 74억 원을 전부 필요경비로 지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신용카드 사용액과 스타일리스트에게 지급한 비용만 필요경비로 공제한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사실 딱히 이슈화되기는 어려운 건이었다. 특히 배용준 측은 "세금 20억 원은 이미 다 납부했다"면서 "그해 세금 부과된 것에 대해 세무서와 소속사의 법률적 해석이 달라 그 부분에 이의를 제기한 것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도의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 건은 22일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중 하나로 등극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배용준 같은 거부가 세금을 깎으려했다는 점 자체가 거슬렸다. 거기다 배용준과 일본과의 관계가 겹쳤다. 경제 불황기 특유의 부유층 견제 분위기에 한국 대중의 미묘한 대일(對日)감정이 얹어지니 빅뱅이 일어났다.

배용준이 일본 도호쿠 지진 당시 거액을 기부한 점을 들며 '일본에는 10억 원씩이나 퍼줬으면서 한국에선 세금 깎으려고 난리를 쳤다'는 식 비난이 포털사이트 댓글 란과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가득 채웠다.

물론 세금부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국민의 당연한 권리고, 부자라고 내라면 군말 없이 무조건 다 내는 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아니다. 더군다나 배용준은 일본에만 기부를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국내에서도 소아암어린이와 여성 복지를 위해 2억 원, 태안 원유유출사고 당시에도 3억2000만 원을 기부한 일이 있다. 또한 일본 외 해외에도 꾸준히 기부활동을 펼쳤다.

2005년 동서남아시아 지진 및 해일피해를 돕기 위해 3억 원을, 네팔 어린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안경브랜드와 함께 캠페인을 펼쳐 수익금 1억5000만 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배용준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비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중의 가혹한 반응을 일정 부분 이해해야 할 필요도 있다. 현 시점 한국 대중에게 배용준은 일본서 성공을 거둬 큰돈을 번 연예인 정도 이미지가 아니다. 아예 일본밖에 보이는 게 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겨울연가' 이후 배용준의 전체 행보가 그런 이미지를 구축시켰다.

그래서 대중도 배용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곧바로 일본과의 관계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 숨겨졌던 반일(反日)감정을 자극하는 기폭제로서 계속 작용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겨울연가' 신드롬 이후 배용준은 그를 통해 획득한 자산과 상징자본을 토대로 연예기획사 BOF엔터테인먼트를 세웠다. 곧 이를 합병한 키이스트를 론칭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이스트는 일약 업계 4대 기획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 키이스트의 전략이 기묘하다. 가장 큰 기대주인 SS501 출신 김현중은 꾸준히 일본시장 진출을 위한 캐릭터로 키워지고 있다. KBS2 '꽃보다 남자'에서 이어 MBC '장난스런 키스'까지 2편 연속으로 일본만화 원작 드라마에 출연해 일본 미디어의 이목을 끌기 쉬운 입지를 굳히고 있다.

나아가 키이스트가 JYP엔터테인먼트, CJ미디어와 함께 제작한 KBS2 드라마 '드림하이'도 사실상 일본 진출을 위해 기획한 맞춤형 콘텐트처럼 여겨지고 있다. 2009년 즈음이면 어느 정도 가시화됐던 일본 내 한국 아이돌 붐에 편승해 기획됐다는 인상이 짙다.

실제로 '드림하이'는 국내에선 평균시청률 15.7%(AGB닐슨)에 그친 '중박'이었지만, 지난 1월27일부터 일본 케이블채널 DATV에서 방영돼 큰 호응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7월말 일본 지상파 방영 편성도 잡혔다. 그런데 그 DATV도 알고 보면 키이스트가 개국을 주도한 한류전문채널이다.

어찌 됐건 지상파 일정이 잡힌 데 따라 '드림하이'는 예상되는 호응을 바탕으로 9월 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리나에서 '드림하이 프리미엄 이벤트 2011'을 개최하게 됐다. 배용준, 박진영을 비롯해 김수현, 수지, 택연, 우영 등 '드림하이' 출연진이 다수 참석할 예정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배용준은 일본서 막 불붙은 아이돌 기획에도 뛰어들 계획을 밝혔다. 스포츠동아 6월 16일자 기사 '배용준, 아이돌 키운다'를 보면 키이스트 음반사업 박성진 본부장은 15일 신문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아직 3인조, 5인조 등 팀 구성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현재 신인 개발팀에서 오디션을 보는 등 꾸준히 신인 발굴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본격적인 음반 제작에 나서면서 배용준은 요즘 음악 공부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또 키이스트는 5월 초 음반사업을 시작하며 한국 및 일본, 중국 등 해외시장까지 겨냥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일본 음반 시장 진출을 위해서 자회사인 DA(Digital Adventure)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콘텐츠 전문 채널 DATV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케이 팝 열풍을 확고히 해나가겠다는 목표도 세웠다는 것이다. 기사에서도 DATV가 이미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른바 '배용준표 아이돌'의 주요 활동 무대 또한 일본으로 잡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배용준은 현 시점 모든 사업영역이 일본과 연결돼 있으며, 앞으로의 신사업 역시 많건 적건 일본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아이콘이 됐다.

이러니 한국 대중이 배용준 하면 곧바로 일본을 떠올리며 그 이름 석 자에서 무조건 일본만 바라보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배용준이라는 이름을 듣고 그가 출연한 콘텐츠 속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는 공항에 몰려든 일본 아줌마 팬들에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결국 배용준은 한국 대중이 일본에 갖는 갖가지 감정들, 증오와 분노, 콤플렉스, 라이벌 의식, 막연한 동경과 그런 동경을 갖는데 따르는 죄의식을 한 몸에 안는 인물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배용준의 선택이 딱히 틀렸다고는 말 못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탓에 배용준은 일약 대한민국의 대일 문화전략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까지 성장했다.

한일 문화교류 측면에서 조선통신사 이래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도 평가된다. 이런 인물이라면 일본대중문화시장에 커리어와 사업 영역 전체를 걸고 전념한다 해도 굳이 비판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그게 배용준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쯤이면 배용준에게 조금 다른 시각을 부여해볼 필요도 있다. '운명'이란 꽤나 낭만적인 발상을 부르는 단어지만, 배용준의 경우 그런 운명의 피해자라는 시각도 충분히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겨울연가'의 성공이 부른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혀 예상치 못한 곳까지 끌려간 경우, 그 성공의 주박에서 풀려나지 못한 경우로도 볼 수 있다. 차례로 살펴보자.

배용준의 2004년 이후 행보에 대한 평가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가 떨어져가던 시점 '겨울연가'의 일본 대히트로 새롭게 커리어가 부활했다는 평가다. 특히 일본에선 이 같은 평가가 정설로 알려져 있어 전성기 시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한국에선 인기 없다며?" 같은 우스개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크게 거리가 있다. 배용준은 슬럼프가 대단히 짧은 배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역대 최고시청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KBS2 '첫사랑'이 종영된 뒤 1998년부터 2000년까지가 슬럼프였다.


1998년에 출연한 KBS2 '맨발의 청춘'과 1999년 출연한 MBC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가 연속으로 시청률 확보에 실패했을 때다. 그 여파 탓인지 2000년에는 콘텐츠 출연이 없었다.

그러다 2001년 출연한 MBC '호텔리어'가 평균시청률 21.3%(AGB닐슨)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자 배용준은 이 같은 실패의 주박에서 곧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호텔리어'까지만 해도 그 전해 KBS2 '가을동화'로 큰 인기를 모은 송혜교에 공이 돌아가긴 했다.

그러나 이듬해 겨울 등장한 KBS2 '겨울연가'까지 평균시청률 23.1%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자 비로소 '배용준 부활'이 제대로 평가됐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3년 가을 첫 주연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마저 334만5268명을 동원해 그해 한국영화 통산흥행 4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거뒀다.

배용준은 재기에 완벽히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래 한국영화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까지 여겨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4월, NHK가 위성방송 BS2에 이어 지상파방송에서 '겨울연가' 방영을 시작하면서 신드롬이 시작됐다.

결국 배용준은 '겨울연가' 일본 신드롬 당시 인기가 떨어진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완벽히 부활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상태였다는 얘기다. 어떤 의미에선 그를 스타덤에 올린 KBS2 '젊은이의 양지'에서 '첫사랑'으로 이어지던 시절보다 더 폭 넓은 성공을 거둔 최전성기였다고도 볼 수 있다.

왜 이 같은 사실관계가 중요한 것일까. 바로 배우로서 배용준의 역량과 기민한 판단력을 알 수 있는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1998~2000년 사이 배용준의 일시적 슬럼프는 그 원인이 분명했다. 무리하게 이미지 변신을 꾀한 것이 화근이 됐다. 애초 배용준이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처음 주목받았던 건 그야말로 '밝은 부잣집 귀공자'의 면면을 정확히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재벌가 자제로 자랐지만 영화감독의 꿈을 접지 않는 하석주 역을 맡아 극중 탄광촌 출신으로 사회적 야망에 이글거리는 상대역 박인범(이종원 분)과 크게 대비되며 인기를 얻었다. '부드러운 남자'를 선호하던 당시 여성층의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의 양지' 이후 배용준은 계속해서 터프한 역할, 부잣집 도련님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 계층 역할들을 고집했다. '첫사랑'은 그렇게 해서 성공했지만 비슷한 이미지를 고수한 '맨발의 청춘'은 평균시청률 10% 안팎의 실패작이 됐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선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뒤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야망남을 연기했다. 이 캐릭터는 '젊은이의 양지'에서 이종원이 연기한 박인범에 가까운 배역이었는데 또 다시 실패에 이르렀다.

연속되는 실패에서 배용준이 내린 결론은 과거 이미지로의 회귀였다. 그러나 일정 부분 변환을 거친 회귀를 택했다.

부활을 알린 '호텔리어'에서 배용준은 한국의 호텔합병을 위해 미국서 귀국한 M&A 전문가 신동혁 역을 맡았다. 충분히 세련된 엘리트로서, 극중 서진영(송윤아 분)과 사랑에 빠지며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의 역할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어 출연한 '겨울연가'에선 '화이트' 스키장 대표로서, 상류층이자 '젊은이의 양지' 시절로 돌아간 듯한 밝은 분위기를 다시금 뽐냈다.

더 흥미로운 건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선택이었다. 조선시대 배경의 이 영화에서 배용준은 사대부가문의 자제로서 시와 서화, 무술에 능통하지만 바람둥이 기질이 강한 조원 역을 맡았다. 일단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상류층이라는 배용준 기존 이미지에 부합하면서도 도련님 풍 이미지엔 변환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험이 성공했다.

이처럼 배용준은 자기 커리어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과감히 수정해나갈 정도로 뛰어난 판단력을 지닌 배우였다. 뜨자마자 이미지 변신에 들어갈 정도로 도전적이면서도, 그런 노선에 아집을 지니진 않았다.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할 줄 알았고, 그 덕에 실패작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마저도 지금은 '저주받은 걸작'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편 연기력까지도 크게 향상되고 있었다. 무리하게나마 다양한 역할을 맡아본 경험이 결국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의 연기가 크게 평가받아 청용영화상 신인남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자기 이미지를 고수할 줄도, 파괴할 줄도 아는 능란한 연기자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그러나 '겨울연가 신드롬'이란 운명을 만나고 난 뒤론 모든 것이 바뀌었다. BOF엔터테인먼트와 키이스트 등 사업 영역 이외 배우로서의 입지에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그 직전까지 그가 보였던 모든 가능성이 '일본'이라는 무대 하나로 좁혀져 압사된 것이다.

배용준은 갑자기 근육 키우기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잘 팔리는 사진집을 출간하기 위해서였다. 근육질로 다듬어진 몸매는 일본 아줌마 팬들을 매료시켰고 역시 일본 아줌마 팬들에 어필할 만한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 영화 '외출'에 출연했다.

2005년 개봉한 '외출'은 국내에선 불과 80만9191명을 동원하는 대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일본에선 성공을 거두며 일본 내 역대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다시 썼다.

이후 그는 김종학 프로덕션과 야심차게 MBC 사극 '태왕사신기'를 준비했다. 세트장 제작에만 130여억 원, 총제작비는 430여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욘사마 효과'를 기대하며 밀어붙여졌지만, 정작 기대했던 일본에서 평균시청률 6.6%를 기록하는 참패를 맛봤다. '겨울연가'가 기록한 14.4%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호텔리어'의 일본 리메이크판 카메오와 자신이 제작한 '드림하이'의 카메오 격 출연을 제외하면, 그게 배용준 콘텐츠의 마지막이었다. '태왕사신기' 직후 와인 관련 드라마 '신의 물방울' 출연이 거론됐고 키이스트 차원에서 드라마 판권계약까지 체결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제작에 이르진 못했다.

애초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한 '신의 물방울' 기획 자체도 다분히 일본시장 어필용이라는 인상이 짙긴 했다. '겨울연가' 뒤론 모든 것이 다 일본, 일본, 일본뿐이었던 것이다.

'태왕사신기'로부터 벌써 4년이 흐른 지금, 배용준은 배우보다 사업가 이미지가 더 강하다. 지금도 별다른 콘텐츠 출연 계획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잘 아는 영화와 TV 드라마 영역을 넘어 전혀 아는 바 없는 아이돌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일본서 될 듯한 장사엔 다 끼어드는 것이다.

어쩌면 배용준은 더 이상의 콘텐츠 출연이 오히려 자신에 더 불리하리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영원히 '겨울연가'의 대성공으로만, '준상'으로만 기억되는 편이 성패가 의심스런 콘텐츠 도전보다 이미지 차원, 일본 내 입지 차원에서 더 유리하리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 진의야 물론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있다. 도전적이면서도 현명하고, 단순하면서도 능란했던 배우 배용준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역사에 남을만한 일본에서의 대성공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와버렸다.

앞서 얘기한 소송 건을 다시 생각해보자. 배용준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본시장에 목을 맨 한국연예인들은 지금 넘쳐날 정도로 많다. 특히 아이돌 한류가 터지면서 그런 이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배용준처럼 별 것도 아닌 소송 건을 놓고 일본에서의 행보까지 끌어당겨 두들겨 맞지는 않는다. 아무리 탐탁지 않은 행동을 보였을지라도 연예인으로서 대중에 주는 즐거움 측면이 크기에 웬만한 거부감쯤은 상쇄돼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배용준에겐 그런 게 없다. 연예인으로서 주는 즐거움도 없으면서 완전하게 사업가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하나의 표상처럼만 보인다. 그리고 대중이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표상은 쉽게 표적으로 돌변하곤 한다.

지난 7일 SBS '강심장'에선 키이스트 소속 김현중이 출연해 배용준과의 일화들을 들려주고 그와 전화통화까지 시도했다. 배용준이 전화를 받자 '강심장' 게스트 석은 난리가 났다. 같은 연예인이면서도 그는 전혀 다른 존재,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배용준은 이제 막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됐다. 여전히 '오빠' 소릴 듣는 장동건과 동갑이고 이병헌, 차승원보다는 오히려 두 살이 어리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표상'으로서 박제된 운명에 대해 배용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후회가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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