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가창력 신앙’이 낳은 립싱크 금지법 발상

  • Array
  • 입력 2011년 5월 25일 11시 40분


코멘트
립싱크라는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 망신을 샀던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축가 공연 모습. 중국에선 이 파문을 계기로 립싱크 금지법이 발의됐다.
립싱크라는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 망신을 샀던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축가 공연 모습. 중국에선 이 파문을 계기로 립싱크 금지법이 발의됐다.
지난 13일 가수들이 공연할 때 립싱크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다는 이른바 '립싱크 금지법'이라 불리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가수의 노래와 연주를 듣기 위한 것인데 그런 관객을 대상으로 정교한 립싱크나 핸드싱크를 하는 것은 결국 공연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음악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어 "공연에서 립싱크와 핸드싱크(즉 미리 녹음된 연주를 실제 연주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다만 부득이한 사유로 가수가 립싱크나 핸드싱크를 해야 할 경우 관객에 그 사실을 사전에 알려야하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하고 있다.

●'립싱크 금지법'은 전형적인 반시장적 발상

워낙 충격적인 법안인 만큼 각종 미디어에서도 이에 대해 갖가지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실 '립싱크 금지법'은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일단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위헌소지가 짙다. 공연장에서 립싱크를 하건 아예 홀로그램을 띄워서 무대에조차 안 오르고 공연을 하건 공연형식은 모두 공연주체의 자유다.

물론 해당 공연이 '100% 올 라이브'라고 속였다면 허위광고로서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수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외설적이거나 폭력적, 반사회적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 무대 위에서 공연주체가 무슨 일을 하건 무방하다.

하물며 이에 벌금을 물린다거나 1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한다는 발상에선 가히 파시즘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또한 법 집행에 있어 점차 법의 접촉 면적이 넓어지는 상황을 제어하려는 분위기에도 정면으로 부딪힌다. 시계를 수십 년 전으로 돌려놓는 발상이다.

더 중요한 건 이 법안이 지극히 반시장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로 분류되는 자유선진당 의원에게서 이미 산업적으로 고도화, 체계화 된 대중 문화산업을 놓고 이 같은 법안이 발의됐다는 점 자체가 의아할 정도다.

공연이건 뭐건 모든 종류의 문화예술 상품은 시장에서 판가름 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모든 판단은 자연스럽게 시장의 몫으로 넘길 필요가 있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요구는 그 어떤 식으로건 재단하고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가수의 노래와 연주를 듣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공연에서 아이돌그룹의 댄스만 제대로 즐길 수 있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는 관객도 있을 수 있고, 노래공연이야 TV에서 이미 다 봤으니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TV에서 볼 수 없었던 중간 꽁트나 MC를 제대로 해줘야 만족감이 인다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연을 즐길 대중의 권리를 왜 정부가 막아 세우려 하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한국 댄스음악계에선 기계적으로 목소리를 변조하는 오토튠이 유행이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 장르에서 전방위적으로 이 같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렉트로니카는 이제 장르가 아니라 작법의 일종이 됐다. 가수의 목소리를 살리기 위해 여타 악기들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가수의 목소리는 이제 전체 사운드를 구성하는 하나의 도구로서만 사용된다.

댄스가수는 점차 댄스를 통해 사운드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퍼포먼스 아티스트에 가까워지고 있다. 음악은 계속 이런 식으로 변화하고, 음악 퍼포먼스의 형태와 기능도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나훈아-남진 시절 편협한 시각만으로 대중음악계에 메스를 가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대중문화상품의 시장 소비 형태는 철저히 공급자와 수요자 간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명수 의원은 중국에서 2009년 8월 제정된 '립싱크 금지법'을 발의의 이유로 들기도 했지만, 그런 건 그야말로 '중국이나 하는 일'일 뿐이다.

중국의 '립싱크 금지법'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 축가가 립싱크라는 점이 들통 나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는 자평 하에 거의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제정된 경향이 짙다. 이를 보고 따라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무의미하며, 위험한 일이다.

●대중의 '요구' 아닌 '가치'에 호소하는 법안

상식적으로 판단하자면, 이명수 의원 역시 이 법안이 실질적으로 통과되리라는 가정 하에서 내놓았다 보긴 힘들다. 언급했듯 위헌소지도 있거니와, 현 시점 대중 음악시장 환경과 아예 동떨어진 발상이기에 그렇다.

이미 한국 정도로 대중음악산업 위상이 드높은 국가, 아시아 대중음악 종주국에서 이 같은 법안이 발의됐다는 점 자체가 해외 토픽이 됐다.

그럼에도 이 같은 법안이 발의됐다는 건, 이른바 '튀는 법안'을 통한 일종의 인기몰이 형 발의였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확실히 '립싱크 금지법'은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각 포털사이트 댓글이나 몇몇 대중문화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여다봐도 긍정적인 반응이 부정적인 반응보다는 더 많다. 그만큼 대중은 '노래 못하는 가수'들을 경멸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립싱크 금지법'도 오랜 기간 숙성된 대중의 요구를 담아낸 법안이 맞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실현가능성이 있건 없건 간에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일단 현재 음원 차트를 보자. 가온차트 기준으로 봤을 때 음원판매 톱10 내에서 MBC '나는 가수다' 출연진을 제외한 여타 가수들은 거의 전부가 아이돌이다. '슈퍼스타K2' 열풍이 크게 일었던 지난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슈퍼스타K2' 출연진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이돌이 차트 상위를 휩쓸었다. 사실상 가창력 있는 가수들로 시장이 재편됐다기보다, 그저 가창력 있는 가수들을 중심으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의 영향이라는 인상이 짙다.

그러니 결국 지금의 '가창력 신앙' 분위기는 철저히 TV가 만들어낸, 일종의 방송 트렌드가 아니냐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대중이 가창력 있는 가수들로 눈길을 돌린 게 아니라 TV가 제시한 새로운 유행에 맞춰 선택이 이어져버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TV가 더 이상 가창력 있는 가수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열기도 순식간에 가실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 그러면 다시 시장은 아이돌 천하로 움직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현재 '립싱크 금지법'에 동의하는 대중 분위기는 많은 의미에서 실제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정작 '요구'는 아이돌에 편중돼있으면서 '가치'만 가창력 있는 가수들에 두고 있어 '립싱크 금지법'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결국 '립싱크 금지법'은 대중의 실질적 '요구'에 부응했다기보다 대중의 '가치'에 부응했다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

●한국인의 특이한 예술관이 '가치'와 '요구'의 반목 야기

어째서 이 같은 '가치'와 '요구'의 반목이 생긴 걸까. 가장 먼저, 한국인의 '특이한' 문화예술관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세계 문화예술계는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을 바탕으로 진행돼갔다. 전통적 '기술'에 의존하는 사고를 버렸다.

"예술은 폭발이다"를 외친 미술가 오카모토 타로 등 이를 주장한 이들이 워낙 많았고, 기술의 발달도 한몫했다. 사진이 등장한 뒤부턴 실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기술'로서의 미술이 빛을 바랬고, 최고 컨디션의 음색을 담아내는 레코드플레이어가 등장한 뒤부턴 역시 '기술'로서의 가수 가창력도 점차 의미를 잃었다.

대신 '기술'이 아닌 '영감'으로서의 예술관이 자리 잡게 됐다. 비틀스 멤버들 중 실제로 가창력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비틀스는 결국 20세기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평가받았다. '영감'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제인 버킨 역시 전통적 의미에선 음치에 가까웠지만 1960~70년대 프랑스 샹송계의 여신이 될 수 있었다. 역시 '기술'은 없지만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다. 문화예술인을 일종의 장인(匠人)으로 여기는 옛 풍토가 도무지 지워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들에 일반인들과 다른 특수한 능력, '기술'을 요구한다. 그래야 해당직업인으로서 '인정'이 되고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기술'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와 무관하게 스타가 돼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면 납득할 수가 없게 된다. 올바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되질 않는다. 그렇게 음악인들에 대한 '가치'가 잡힌 것이다. 직업관, 사회관, 인성관 등이 한 자리에 모인 '가치'다.

문제는 대중음악시장이 점차 다양화되고 고도화되면서 '가치'와 '요구'가 서로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시장은 빠르게 댄스음악 중심으로 재편돼갔다.

본래 가무(歌舞)를 즐기는 민족이기도 했다니, '춤출 수 있는 음악'은 어쩌면 민족적 특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같은 열기를 바탕으로 댄스음악은 더욱 전문화되고, 진일보를 거듭했다.

사실상 한국 음악장르 중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게 댄스음악이 됐고, 근래 제2차 아이돌 한류 과정에서도 이 같은 점이 입증되기도 됐다. 본래 민족적 특성에도 부합될뿐더러 퀄리티까지 높으니 자연 시장은 댄스음악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댄스음악이 고도화되고 시장을 꽉 쥐면 쥘수록, 본래 지니고 있는 '가치'와는 계속 충돌을 일으키게 됐다. 특히나 미디어 빅뱅 시대를 맞아 가수들의 외모와 퍼포먼스 등을 포괄한 비주얼 측면이 더 없이 강조되기 시작하자 더더욱 이 같은 갈등은 심해졌다.

가창력, 즉 '기술' 중심으로 잡힌 '가치'로서는 자신들이 왜 기계적으로 변조된 목소리, '기술'이 없는 가수들에 열광하는지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중학생만 돼도 똑같이 소화할 수 있는 소녀시대의 '지'를 광적으로 소비하면서도 정작 가치 면에서는 폄하해버리고, 소위 '가창력 있는 가수'들을 가치 면에서 지지하면서도 이들의 음원 하나 다운받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버린 것이다.

●'가치'와 '요구'가 반복되는 한 '립싱크 금지법'은 또 등장할 것

이런 과정에서 계속 모순을 일으키던 대중의 '가치'를 충족시켜준 게 바로 '슈퍼스타K'를 위시로 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었다는 것이다. 대중이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때그때 등장하는 TV 예능프로그램의 가창력 있는 가수들 음원을 소비하면서 대중은 아이돌음악을 소비하고 있는 자신들 가치와 요구의 충돌을 완화시켜나갔다.

그 연장선상에서 등장한 게 바로 '립싱크 금지법'이다. '립싱크 금지법'은 대중음악에 대한 대중적 '가치'의 총집결판에 가깝다.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공연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중은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아이돌가수의 공연을 보러가는 이들은 어차피 열혈 아이돌 팬덤에 불과하다. 아니, 일반대중은 아예 '공연' 자체를 잘 보러가질 않는다. 그러니 일반대중의 이해득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어차피 대중이 즐기는 아이돌 음악은 MP3로 다운받고, TV에서 보면 된다. 나머지는 '가치'를 충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창력 있는 가수들의 공연에 딱히 갈 것도 아니지만, 어찌됐건 그런 가수들만 공연하는 게 더 '정의로운' 결과, '납득이 가는' 결과라 믿는다.

'립싱크 금지법' 자체야 어차피 실현가능성 없는 법안이니 그렇게 사라져가겠지만, 이 같은 법안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는 계속 충족 받는다. TV는 여전히 '가창력 신앙'을 퍼뜨리고 음원 차트는 TV 출연진과 아이돌 가수들로 양분되면서, 오브라디 오브라다, 그렇게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급했듯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 권리와 시장주의에 대한 이해를 넘어 개개인의 '가치'가 폭력적으로 주장된다는 점에 있어서 특히 문제가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어떤 방식으로건 대중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강요하고 종용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대중의 가치와 요구 모두를 반영하는 대중문화산업의 속성상 대중을 '계도'한다는 발상이 과연 옳은 걸까? 오히려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를 상품화시킨 뒤 소비시키는 게 대중문화산업의 정확한 역할과 기능이 아닐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처럼 대중음악에 대한 한국 대중의 '가치'와 '요구' 대립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한, '립싱크 금지법'과 같은 형태의 발상들도 똑같이 지속되리라는 점이다.

실현가능성이 있건 없건, 실제 시장에 도움이 되건 안 되건 간에, '요구'와 괴리된 대중의 '가치'를 충족시켜 또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도들은 끝없이 연발될 것이다. 그게 법안이 됐건, 언론사 기사가 됐건, TV프로그램이 됐건, 이를 반영하는 도구만 달라질 뿐이다.

그게 과연 긍정적인 상황이 맞는지에 대해선, 대중의 판단에 맡길 따름이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