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현진] 스타일 인 셀럽<22>‘시어머니 따라잡기?’…미들턴의 스타일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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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14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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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2위 윌리엄 왕손이 여자친구 케이트 미들턴 씨와 약혼 소식을 발표하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 로이터.
지난달 16일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2위 윌리엄 왕손이 여자친구 케이트 미들턴 씨와 약혼 소식을 발표하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 로이터.

최근 2주간(11월10~24일) 미국 구글의 인물 검색 순위 1위는 케이트 미들턴이었다. 영국 윌리엄 왕손의 약혼녀인 그가 내년 4월29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는 환호(영국 왕실에서 전해진 오랜만의 경사에) 또는 탄식(윌리엄을 뺏긴다는 슬픔에) 했다.

미들턴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최근 몇 주간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존재가 된 그는 '단독 주연'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윌리엄의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 때문이다. 케이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이애나와 비교된다. 미들턴의 연관 검색어 1위는 남편인 윌리엄이 아니라 시어머니인 다이애나일 것이라는 농담도 나온다.

눈으로 확인하기 좋은 패션 스타일은 더욱 자주 비교된다. 약혼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들턴이 입은 '이싸 런던'의 파란색 원피스 또한 '다이애나 후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미들턴의 날씬한 허리와 긴 다리를 부각시킨 이 드레스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영국 현지 언론은 굳이 과거 다이애나가 비슷한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찾아내 케이트 패션과 비교 분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케이트에게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9월 스코트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같은 강의를 듣다 윌리엄과 연인 관계로 발전한 미들턴은 '왕손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후부터 줄곧 이미 고인이 된 예비 시어머니와 비교돼야 했다.

영국의 모든 패션 매체와 블로거들은 매일같이 평상복은 물론 스포츠 웨어, 이브닝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두 여인의 패션 '싱크로율'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는 상태다.

▶ 수줍은 다이애나, 대담한 케이트

미들턴은 창의적인 디자인의 모자를 즐겨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영국 왕립군사아카데미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가한 모습. 로이터.
미들턴은 창의적인 디자인의 모자를 즐겨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영국 왕립군사아카데미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가한 모습. 로이터.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애정은 그가 수상쩍은 자동차 사고로 숨진 지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별나게 이어져오고 있다. 영국민의 상당수는 다이애나를 버리고 결혼 전부터 사귀던 연인 카밀라 파커볼스와 결혼한 찰스 왕세자를 미워하고 있으며, 그 반발심에 다이애나를 쏙 빼닮은 윌리엄이 아버지 대신 다음 왕위를 물려받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64%, SKY TV는 55%의 영국인들이 차기 왕으로 찰스보다 윌리엄을 선호한다고 보도했다.

윌리엄에 대한 호감도가 다이애나처럼 크고 날씬하고 얼굴도 예쁜 미들턴에 대한 기대감에 더해져 미들턴은 영국민들에게 '다이애나의 재림'으로까지 여겨지는 듯 하다.

스타일 면에서 끊임없이 비교되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다이애나비와 미들턴의 공통점은 그리 많지 않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최근 두 사람의 평소 모습을 비교하는 기사에서 "수줍음이 많아 '샤이-D(Shy-D)'라는 별명까지 붙은 다이애나에 비해 케이트는 훨씬 더 자신만만하고 자존심도 센 여인"이라고 평가했다. 찰스 왕세자와의 연애 초반, 다이애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왕세자비가 된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던 반면 케이트는 지인들에게 "윌리엄이 나와 사귀게 돼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약혼식 전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파파라치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한 다이애나와 달리 케이트는 파파라치의 존재를 일견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텔레그래프는 한 왕실 전문 기자의 말을 인용해 "케이트 만큼 카메라를 즐기는 유명 인사는 본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성품이나 취향이 다른 것은 나이 차이 때문일 수 있다. 다이애나비는 불과 19세의 나이로 13세 연상의 찰스 황태자와 결혼한 반면, 케이트는 28살 동갑내기 윌리엄 왕자와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이런 차이로 케이트가 대중에 좀 더 의연하게 비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 배경도 있다. 우편으로 완구 및 파티 용품을 판매하는 업체, '파티 피시스'의 창업자인 사업가 아버지와 항공사 스튜디어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트는 부유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다. 하지만 귀족가문 출신인 다이애나는 아들을 원하는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또 7세에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케이트 패션 센스, 아직 '검증' 안돼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케이트가 '포스트 다이애나'로 까지 불려지는 것은 역시 패션 때문이다.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으로 영국 패션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다이애나처럼 케이트도 패션에 관심이 많다. 클래식하고 우아한 옷을 선호하는 취향까지도 꼭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왕가의 남자'들을 뜻하지 않게 '시스루(see-through) 룩'으로 매료시켰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약혼식을 다섯 달 앞둔 1980년 어느 날, 당시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다이애나는 치마 안쪽에 햇빛이 살짝 비치면서 각선미가 드러난 상태로 파파라치의 피사체가 됐다.

찰스 황태자는 이를 보고 지인에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트 역시 2002년 대학 재학 시절 모델로 참여한 한 자선 패션쇼에서 속에 입은 브래지어와 쇼트 팬츠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등장, 윌리엄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때 케이트를 본 윌리엄은 옆에 앉은 친구에게 "저 여자, 참 섹시한데(She's so hot)"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뭘 입어도 화제가 됐던 다이애나에 맞춰진 기대치 때문인지 케이트의 패션 감각에 대해서는 패션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영국의 의류 브랜드 '지그소(Jigsaw)'의 액세서리 바이어로 일한 경력 덕분인지 최근 공개된 사진들 속에서는 진화된 패션 감각을 뽐내는 그지만, 윌리엄과의 교제 초기에는 "시골 출신 컨트리 걸(country girl) 답게 '폴로' 스타일의 캐주얼 아니면 사냥복 같은 옷만 입고 다닌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평소 패션이 나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많다.

다이애나의 드레스 디자이너, 엘리자베스 엠마누엘의 어시스턴트 출신인 패션 디자이너 레이시마 아일람은 영국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케이트는 실수할 것이 두려워 너무 안정 지향적으로 입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왕이 되기도 전에 여왕처럼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이탈리아의 원로 디자이너 발렌티노 역시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왕가의 안주인이 되려면 지루한 패션은 물론 아무렇게나 내려뜨린 긴 머리부터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톱숍' 같은 중저가 브랜드를 디자이너 브랜드와 매치해 입는 '믹스 앤 매치' 감각과 공식석상에서 만큼은 영국 브랜드를 애용하는 '센스' 만큼은 이미 시어머니 수준을 능가했다는 평이다.

결혼 발표 때 입었던 399파운드(약 73만원)짜리 파란 원피스는 브라질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다니엘라 이싸 헬라엘의 작품이고, 이브닝드레스로는 역시 영국 브랜드인 '버버리' 제품을 즐겨 입는다. 가방도 영국 브랜드 '멀버리' 제품을 선호한다.

영국 현지 패션 매체들은 전위적인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의 제품들을 TPO에 맞게 멋지게 스타일링하는 감각 또한 왕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왕족 여성들 못지않다는 칭찬을 쏟아놓고 있다.

▶ 영국의 패션 아이콘, 이 정도는 입어줘야….

이브닝드레스에서 캐주얼까지. 고상하고 페미닌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 미들턴의 취향은 시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비의 그것과 닮았다. 사진출처 데일리 메일.
이브닝드레스에서 캐주얼까지. 고상하고 페미닌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 미들턴의 취향은 시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비의 그것과 닮았다. 사진출처 데일리 메일.

앞으로 그가 어떤 스타일의,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케이트는 다른 '평민' 여성들에게 환상과 꿈을 심어줄 수 있을 만큼 동화 같고 로맨틱한 옷을 '입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패션 칼럼니스트 리즈 존스는 "현재는 그가 '이싸 런던'의 옷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앞으로는 존 갈리아노나 스텔라 맥카트니 같은 거물급 디자이너의 의상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포멀한 드레스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알렉산더 맥퀸을 입을 것을 추천한 그는 또 "이름만으로도 가슴 벅찬 이 브랜드들이 케이트를 '이웃집 소녀'에서 공주로 격상시켜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패션잡지 보그 영국판은 이에 덧붙여 앨리스 템퍼, 줄리앙 맥도날드, 윌리엄 템페스트 등 상대적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평상복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다이애나가 입은 의상의 상당수를 제작한 전속 디자이너 캐서린 워커처럼 케이트에게도 그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만들어 줄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영국 언론과 패션 전문가들이 미들턴의 '다이애나 만들기'에 발벗고 나서고 국민들이 이에 적극 호응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다이애나에 대한 막연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케이트 신드롬'이 370억 파운드 규모의 영국 패션 산업을 다시 한번 부흥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존 갈리아노나 알렉산더 맥퀸과 같은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도 다이애나가 왕세자비가 되고, 그로인해 영국의 패션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 패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데일리 메일은 "주부 이미지가 강하고 정치적 인기도가 낮은 사만사 캐머런(데이비드 캐머런 현 영국 총리의 부인)을 대체해 케이트가 영국 패션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비밀 병기(secret weapon)'가 돼 주길 기대 한다"고 보도했다.

케이트가 윌리엄에게서 받은 약혼 선물이라며 공개한 12캐럿짜리 블루 사파이어 반지는 다이애나가 1981년 찰스 왕세자와의 약혼을 발표하면서 꼈던 바로 그 반지다. 결혼식 당일 케이트는 역시 다이애나가 결혼식 때 썼던 다이아몬드+진주 티아라를 머리에 얹을 예정이다.

다이애나 후광 덕분에 영국 국민들에게 이미 호감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케이트는 스타일은 물론 대외 활동에 있어 '시어머니 따라잡기'에만 성공해도 대중의 인기를 보장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반지가 결과적으로 '저주의 반지'가 될지 '축복의 반지'가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케이트가 왕실 내에서 어머니처럼 외로워지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한 윌리엄의 다짐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따르되, 불행만은 닮지 않아야할 케이트의 미래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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