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 권재현<트랜스크리틱>베르테르의 슬픔이 진짜 슬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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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1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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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하는 롯데(최주리)와 그 약혼자 알베르트(이상현)를 멀리서 지켜보며 사랑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송창의).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아름다운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하는 롯데(최주리)와 그 약혼자 알베르트(이상현)를 멀리서 지켜보며 사랑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송창의).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연출 김민정)은 아름답습니다. 먼저 음악(정민선 작곡)이 아름답습니다.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서른세 곡은 익숙한 뮤지컬 멜로디와 거리가 멉니다. 전통적 뮤지컬 곡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닮았다면 이 작품의 곡들은 독일 가곡(리트)에 가깝습니다. 화려하거나 극적이기 보다는 서정적이고 내밀합니다.

처음엔 서른세 곡이 모두 단조로 작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모든 노래가 비감하거나 처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에게 확인한 결과 장조와 단조가 반반 섞였다고 합니다. 다만 밝고 따뜻한 장면에 등장하는 '발하임의 축제'나 '반가운 내 사랑'과 같은 곡을 단조로 작곡하고 슬프고 암울한 1막과 2막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발길을 뗄 수 없으면' 같은 곡을 장조로 작곡한 엇박자의 효과라고 합니다. 한국 창작뮤지컬들이 대부분 장면 장면의 정서에 충실해 작품 전체의 음악적 통일성을 도외시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뮤지컬의 음악적 완성도는 격찬 받을만합니다.

단일 세트인 무대(박정희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이런 음악적 완성도를 뒷받침합니다. 돛단배를 닮은 목조 세트는 2층 구조입니다. 2층은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절벽의 산책로이고 계단으로 연결된 1층은 4개의 구멍이 뚫린 다리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다리구조는 문 또는 벽을 달아서 롯데의 아름다운 저택으로 바뀌었다가 그 문을 떼어내면 베르테르가 묶는 허름한 주막으로 변신하며 사랑의 승화를 멋들어지게 담아낸 미장센을 연출합니다. 무대 왼편의 작은 연못에 고인 물이 객석 천장에 물빛을 반사하면서 빚어내는 아늑한 분위기도 일품입니다.

세 번째로 아름다운 것은 사람입니다. 저는 송창의(베르테르), 최주리(롯데), 이상현(알베르트) 씨의 공연을 봤는데 외모와 의상 그리고 선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송창의 씨는 조각 같은 외모에 미성의 목소리까지 지녀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베르테르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습니다. 지난해 뮤지컬 '스페셜 레터'를 통해 추리닝 차림의 털털한 여자후배에서 한껏 물오른 여자친구로 깜짝 변신하며 현대적 매력을 보여줬던 최주리 씨는 가냘픈 이미지와 고운 음성으로 롯데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잘 소화해냈습니다. 이상현 씨는 안정된 바리톤의 음역과 당당한 외모로 '엄친아' 알베르트의 이미지를 창조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선 33곡의 음악이 모두 비감하기 이를 데 없다. 베르테르가 묵는 주막의 흥겨운 파티 장면에 흐르는 음악도 단조로 작곡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선 33곡의 음악이 모두 비감하기 이를 데 없다. 베르테르가 묵는 주막의 흥겨운 파티 장면에 흐르는 음악도 단조로 작곡됐다.

2000년 소극장 무대에서 초연한 뒤 골수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10년 세월의 묵힌 맛으로 1200석 대형극장 뮤지컬로 발효됐다는 이 작품의 저력이 느껴졌습니다. 이만한 완성도의 대형 창작뮤지컬은 '영웅' 정도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산파인 극단 갖가지의 심상태 대표는 "지난 10년을 청소년기라고 본다면 앞으로 10년은 청장년기이자 제2의 도약을 위한 첫걸음"이란 말로 이 작품의 세계화에 대한 의욕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보완되어야할 부분도 보입니다.

그것은 원작의 아우라나 음악적 완성도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극적 구조입니다. 이 작품의 음악은 스토리와 상관없이 그 자체의 완성도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스토리와 가사를 빼고 음악만 들어도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괴테의 원작(1774)이 지닌 아우라와 결합된 낭만주의 사조의 음악이 갖춘 치명적 매력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음악이 흐르는 이야기'로 가져갈 때는 이야기의 감동이 빠져있습니다.

베르테르가 쓴 82편의 편지로 재구성된 원작은 베르테르의 1인칭 시점에서 쓰였습니다. 1인칭 시점은 주인공의 시각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상매체가 아닌 무대예술로 펼쳐내는 데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그래서 이를 3인칭 시점으로 바꾼 것은 나름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1인칭 시점에 의존하지 않는 순간 베르테르의 슬픔과 그가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객관화해서 극화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금단의 사랑을 꿈꾸다 살인자가 된 카인즈의 처벌 문제를 놓고 대결하는 베르테르와 알베르트.
금단의 사랑을 꿈꾸다 살인자가 된 카인즈의 처벌 문제를 놓고 대결하는 베르테르와 알베르트.

그것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자살 한다'라는 일반적 통념과 무언가 다른 해석을 내놔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뮤지컬 역시 이 부분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원작에선 짧게 언급된 카인즈의 비극적 사랑을 베르테르의 사랑과 병치시킨 것이 대표적입니다. 과부가 된 여주인을 짝사랑하던 하인 카인즈는 베르테르의 격려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뒤 사랑의 결실을 맺습니다. 하지만 신분의 질서를 뛰어넘지 못해 결국 자신들의 사랑을 방해한 여주인의 오빠를 살해하고 처형당합니다.

뮤지컬은 베르테르가 카인즈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 연적인 알베르트를 죽여서라도 사랑을 쟁취하고 싶은 공격성을 자기 자신에게 향한 것으로 풀어냅니다. 베르테르가 알베르트와 롯데의 집에서 알베르트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가 다시 자기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는 장면이 이를 상징합니다. 원작에선 자기 자신의 관자놀이만 겨눕니다. 그리하여 좌절된 사랑에 대해 외향적인 카인즈가 가학적으로 대응한다면 내성적인 베르테르는 피학적으로 대응한다는 도식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뮤지컬을 보면서 다른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베르테르의 사랑 고백에 흔들리는 롯데를 발견하면서입니다. 중학생 때 이 책을 읽었을 때 베르테르는 참 못난 '외톨이'였습니다. 그래서 롯데와 알베르트 커플이 베르테르를 동정할지언정 베르테르 때문에 흔들리거나 질투하지 않는다는 점에 더 절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뮤지컬에서 롯데가 베르테르와 키스 하고난 뒤 크게 흔들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 기억이 의심스러워 원작을 찾아봤더니 오 맙소사, 베르테르의 편지글이 아니라 작가가 개입한 해설을 통해 베르테르의 애정공세에 비에 젖은 참새처럼 어쩔 줄 모르는 롯데가 숨어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베르테르의 슬픔의 근원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베르테르에게는 자신의 욕망 앞에 무너져가는 롯데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토록 고결하고 성스럽게 여기던 한 존재가 육체적 욕망 앞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베르테르가 느낀 고통의 무게를 생각해보세요. 베르테르가 살던 18세기 결혼의 서약은 신성불가침한 것이었습니다. 롯데는 그 성스러운 서약의 원호 안에서 가장 빛나는 천사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숭배해온 그녀를 유혹해 타락천사를 만든다고 느꼈을 때 베르테르를 엄습한 그 고통의 무게.

스스로 빚어낸 사랑의 신화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의 죄책감은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순결한 영혼이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 겁니다. 그토록 순결한 사랑을 찬미해왔던 자기 자신이 악마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바로 그 죄책감을 스스로 벌주기 위해 베르테르는 자결을 택한 것입니다. 자결할 때 굳이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린 것도 그 알베르트의 가정을 무너뜨릴 뻔 했던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롯데와 결혼한 알베르트의 집에서 발견한 권총에서 이상한 예감을 느끼는 베르테르.
사랑하는 롯데와 결혼한 알베르트의 집에서 발견한 권총에서 이상한 예감을 느끼는 베르테르.

베르테르는 사랑이 지닌 성(聖)과 속(俗)의 이중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희생된 속죄양입니다. 사랑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 총알은 다름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고 만다는 역설의 십자가에 못 박힌 순수한 영혼. 우리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의 원천도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하는 모습을 돛단배를 닮은 무대세트의 돛대에 해당하는 아름드리나무 아래 배치하고 롯데와 알베르트가 그 아래서 이를 올려다보도록 한 마지막 장면이 숨 막힐 정도로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런 극예술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작의 본질에 근접한 음악적 구조에 걸맞게 새롭게 쓰여 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뮤지컬의 극적 구조는 관객이 원작에 대해 갖고 있는 주관적 감성을 반사하는 거울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조각처럼 느껴지는 베르테르의 영혼에 짙은 음영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가 얘기했던 것처럼 미적 존재에서 윤리적 존재 그리고 종교적 존재로 발전해가는 영혼의 발전과정을 육화해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베르테르야말로 사랑의 역설이란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들의 모두의 청춘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베르테르야말로 사랑의 역설이란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들의 모두의 청춘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P.S. 이 뮤지컬을 보면서 괴테와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절 사랑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은 뒤 사랑의 무상함을 그린 걸작을 발표했듯이 괴테 역시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대중적 명성을 얻은 뒤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를 통해 사랑의 무상함을 노래했음을. 본디 아름다움이란 항시 무상한 법. 그래서 영원할 것만 같던 아름다움이 서서히 스러져가는 것을 묘사할 때 '아름답다'보다 '곱다'란 말이 어울린다는 말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4만~10만 원. 11월30일까지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02-501-7888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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