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 동화처럼 아름답지만 2% 부족한 ‘아리에티’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12:02수정 2010-09-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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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이 된 10cm 소인족 소녀 아리에티는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든다. 짐을 꾸리고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으면 준비 완료된다.

'우리 집 마루 아래에 소인들이 살고 있어요. 그들은 우리가 매일 먹고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들을 조금씩 빌려서 생활하고 있죠. 지금까지는 들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마주칠지도 몰라요.'

어린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소인들의 세계를 그려낸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하지 않았지만 제작과 각본을 맡았고,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라는 신인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메리 노턴이 쓴 영국 동화인 '마루 밑 바로우어즈'가 원작이다.

거장 미야자키 감독이 제작한 작품이지만,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모험', '천공의 섬 라퓨타' 같은 거대한 판타지 스타일보다는 한편의 수채화 같은 담담하고 아기자기한 만화다. 그러나 소인들의 세계를 실감 나게 그린 압도적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에 비해 빈약한 줄거리와 상상력, 개성이 부족한 캐릭터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병약한 도련님과 작은 소녀 아리에티의 만남

주요기사
심장병을 앓고 있는 쇼우는 큰 수술을 앞두고 요양을 위해 지방에 있는 별장으로 내려온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울창한 정원에서 문뜩 스쳐 가듯 본 듯한 손바닥만한 소인. 그것은 다름 아닌 온 가족이 이 집의 마루 밑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살고 있는 10cm 키의 소녀 '아리에티'였다.

숨어 살면서 인간의 일상용품들을 조금씩 '빌려' 사는 소인족인 아리에티 가족은 늘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미 많은 소인족이 인간에게 정체를 들켜서 멸종을 당했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생기가 넘치는 소녀 '아리에티'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서 필요한 설탕과 화장지를 빌리러 집안으로 모험을 떠난다. 거의 성공할 뻔 했던 '미션'은 쇼우에게 들키는 바람에 무산되고 아리에티는 힘들게 구한 각설탕을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소인의 존재를 눈치챈 쇼우는 각설탕과 쪽지를 아리에티에게 전달하려고 하지만, 아리에티는 늘 인간을 조심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의 성의를 무시한다. 이런 와중에 쇼우의 할머니는 쇼우에게 거실에 있는 정교하고 멋진 '인형의 집'이 사실 할아버지가 소인들을 만나면 전해주려고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쇼우에게 정체를 들킨 후 더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의논하던 아리에티 가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듯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들려온다.

아리에티는 작은 못을 계단 삼아 밟고, 밧줄을 이용해서 장애물들을 오르고, 테이프나 뾰족한 신발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서 벽을 오르며 인간 세상에 가서 음식을 구해온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소인들의 생활

'마루 밑 아리에티'는 다채로운 이야기보다는 소인들의 세계를 그린 디테일에 눈길이 간다.

다양한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쇼우의 별장은 소인들에겐 울창한 숲처럼 보인다. 여기 사는 아리에티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모험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비 오는 날 작은 잎사귀가 우산이 되고, 담쟁이넝쿨을 타고 2층 집으로 용감하게 올라가는 아리에티의 모습은 추억의 애니메이션 '개구리소년 왕눈이'나 '스머프'에 나오는 난쟁이들의 환상을 떠올리기 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아리에티 아버지가 매일 가족들을 위해서 벌어오는 일용품이나 양식을 얻는 과정이다. 아리에티가 작은 못을 계단 삼아 밟고, 밧줄을 이용해서 장애물들을 오르고, 테이프나 뾰족한 신발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서 벽을 오르는 모습이 아기자기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필자의 딸아이가 가지고 노는 바비 인형 집과 비슷한 미니어처 집에 들어가 경험하게 되는 에피소드에서는 어린 소녀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귀여움과 깜찍함이 돋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아리에티 가족들의 삶은 쇼우와 같은 거대한 인간들의 삶에 견주어볼 때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활용하면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유토피아적'인 삶을 그린 느낌이 풍긴다는 점이다. 이는 아리에티 아버지가 작은 도구나 전기기계들을 손수 만드는 장면이나 어머니가 자연에서 얻은 식 재료를 이용해서 허브차나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자연 친화적인 소인들이 인간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자연파괴 비판 의식과도 연결된다.

'너희 종족이 얼마나 되지? 몇 명? 인간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67억이야.' 쇼우는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리에티에게 소인들의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냉정하게 말한다. 물론 쇼우도 점차 아리에티의 노력에 감명을 받아 세상과 병약한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태도를 바꾸게 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소인족 소녀와 인간 소년의 우정을 수채화같이 섬세하고 세밀한 그림으로 담아냈다.


▶예쁘고 깜찍한, 그러나 개성은 부족한

그러나 캐릭터의 개성과 생동감은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풍경과 그림들에는 많이 못미치고 있어 아쉽다.

우선 주인공 '아리에티'는 빨래집게를 머리핀 삼아 머리를 질끈 묶은 귀엽고 깜찍한 모습으로 호기심에 가득 차고 생기발랄하면서도 당찬 만화 주인공 소녀 특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 그동안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여자 주인공 이상의 개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상대역인 쇼우도 진부하긴 마찬가지다. 심장병을 앓아서 호화로운 별장에서 요양하는, 나약하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부잣집 도련님 역할은 어디선가 많이 본 캐릭터다.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이로 인해 갖가지 에피소드가 벌어진 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뻔한 스토리일 수밖에 없다.

과묵하지만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아리에티의 아버지나 인자하고 다정해 보이는 쇼우의 할머니, 소인들을 잡으려고 소동을 벌이는 늙은 가정부 등도 별다른 개성이 없다. 다소 호들갑스러운 주부인 아리에티의 어머니만이 '언젠가 바다에 가고 싶어서' 바다의 그림을 버리지 않고 걸어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정도다.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원작 동화 '마루 밑 바로우어즈'가 다소 단순하더라도 세밀함을 가진 성인용 만화를 만들려했다면 더 치밀한 개성과 스토리를 부여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쇼우의 할머니는 쇼우에게 거실에 있는 정교하고 멋진 '인형의 집'이 사실 할아버지가 소인들을 만나면 전해주려고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뛰어난 디테일, 부족한 참신성

필자가 칼럼을 썼던 '맨발의 꿈'을 보고 난 다음 주에 아내와 같이 '섹스 앤 더 시티 2'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맨발의 꿈'이 전쟁 후 폐허가 된 동티모르에서 맨발의 소년들을 모아 만든 축구단이 국제대회에서 1등을 하는 휴먼드라마라면, '섹스 앤드 더 시티 2'는 중년 여성들의 로망인 명품과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 연애와 욕망이 난무하는 약간은 '된장스러운' 영화였다.

그러나 필자는 '섹스 앤 더 시티 2'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고 역시 저런 것이 영화라고 감탄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맨발의 꿈'에 비해서 무엇보다도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넘치는 개성과 생동감이 화면을 압도했다.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동의 호화 호텔에서 언뜻 만난 웨이터조차도 연인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가슴 큰 섹시한 보모가 남편과 바람날 걱정보다는 좋은 보모를 잃을까 봐 더 걱정되었다는 주인공의 솔직한 넋두리에 남자인 나도 짠한 공감이 갔다.

관객이 공감하는 것은 거창한 휴머니티가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현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이것을 위해서는 작은 등장인물조차도 자신의 개성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따뜻한 수채화 같은 디테일이 빛나는 '마루 밑 아리에티'가 어쩐지 허전하고 참신함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정규 칼럼니스트 ckha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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