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스캔들 걸’ 혹은 ‘잇걸?’…열정적인 ‘프로’ 시에나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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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11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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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시에나 당신은 정말 스타일리쉬 하네요. 여느 배우들과 달리 평상 복장도 멋지군요."

내가 시에나 밀러라는 배우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시에나 밀러의 평상시의 스타일을 보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감탄사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시에나 밀러는 영화 속 화면이나 패션지의 지면이 아닌 평소의 모습에서도 자신 만의 패션 센스가 더해진 멋진 스타일이 정립된 아주 패셔너블한 배우였다.
‘지. 아이. 조(G.I. JOE, 2009)’ 미국 개봉 당시 레드카펫에 선 시에나 밀리. 사진제공 조벡
‘지. 아이. 조(G.I. JOE, 2009)’ 미국 개봉 당시 레드카펫에 선 시에나 밀리. 사진제공 조벡

어쩌면 아직 '시에나 밀러'를 '배우'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배우로서 보다는 영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인 '주드 로'와의 바람 잘 날 없는 연애담(만남과 결별을 반복하던 그들에게 최근 드디어 날짜 잡는 일만 남았다는 결혼임박 기사가 전해져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으로, 혹은 제2의 '케이트 모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모델출신의 패셔니스타로 더 유명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에나 밀러가 과장된 스캔들 기사와 패션모델 출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배우로서 얼마나 과소평가 받고 있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 주드 로와의 스캔들에 가려진 뛰어난 배우의 재능

시에나 밀러라는 이름이 배우로서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영화는 '나를 책임져, 알피(Alfie)'다. 이 영화에서 밀러는 신인임에도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파티 걸 역을 제대로 소화해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은 톱스타 주드 로와 그의 새로운 연인이 한 영화에서 함께 공연했다는 점에 더 주목했다.

이후 밀러는 20세기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팩토리 걸(Factory Girl)'에서 20세기 패션 아이콘이었던 '에디 세즈윅'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그녀 안에 감춰져 있던 내면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영화를 통해 모두 발산해 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기대만큼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시에나 밀러를 영국 출신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었다. '아차, 실수 했구나!' 싶어 머쓱해하자, 실은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며, 그건 아마도 '시에나 밀러'하면 자동으로 '주드 로'가 연상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체념하듯 어깨를 으쓱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녀가 그런 오해를 받는 이유는 비단 주드 로 때문만은 아니다. 태어난 곳이 뉴욕 주 일 뿐이지 대학을 다니기 위해 뉴욕으로 다시 오기 전까지 어린 시절 자란 곳은 바로 영국이다.

▶ '지. 아이. 조' 내한홍보 때 이병헌과 즉석 키스

시에나 밀러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첫 행보가 런던 소재의 유명 모델에이전시인 '셀렉트'와 계약이었다. 이후 그녀는 '보그'를 비롯한 각종 패션지는 물론 TV광고까지 차례로 섭렵하며 케이트 모스를 잇는 차세대 영국 대표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패션모델로서는 다소 많은 나이에도 그녀는 당시 최고로 핫한 스타일이었던, 다소 루즈해 보이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보헤미안' 풍의 일명 '보호-쉭(boho-chic)'을 멋지게 소화해 패션계의 '잇-걸(it-girl)'로 불리며 최고 모델의 자리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에나 밀러는 시대를 대표하는 '잇-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배우 루퍼트 에버렛과 공연한 저예산 독립영화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으로 영화 배우로서 데뷔식을 치른 그녀는 TV드라마 시리즈인 '킨 에디(Keen Eddie)'를 거쳐 2004년 '나를 책임져, 알피'와 007시리즈 제임스 본드역의 다니엘 크레이그와 공연한 '레이어 케이크(Layer Cake)'로 배우로서의 쉼 없는 정진을 한다.
2009년 7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G.I.Joe-The Rise of cobra)의 기자간담회에서 내한한 시에나 밀러와 이병헌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2009년 7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G.I.Joe-The Rise of cobra)의 기자간담회에서 내한한 시에나 밀러와 이병헌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한국에서 밀러는 이병헌의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유명한 '지. 아이. 조(G.I. JOE, 2009)'의 여주인공으로 더욱 유명한데, 개봉 당시 내한 기자회견 장소에서 이병헌과 키스를 나누는 등 친분을 과시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다.

▶ '토즈' 광고 촬영장에 들어선 밀러, 역시 패셔니스타

나는 2007년 뉴욕의 트라이베카(TriBeCa)에 위치한 고급 퓨전 일식 레스토랑인 메구(Megu)에서 시에나 밀러를 처음 만났다.

이탈리아 피혁 브랜드인 '토즈'가 가방과 구두를 비롯한 의상라인까지 확대 전개하기 위해 새로이 영입한 디자이너 데렉 램(Derek Lam)이 처음으로 광고 캠페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브랜드의 이미지를 일신코자 메인 모델을 유명인사로 기용하기로 했고, 그 첫 모델이 바로 시에나 밀러였다. 지난번 칼럼에서 언급한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가 '토즈'의 메인 모델을 맡게 된 것은 그다음해인 2008년 가을 겨울 시즌부터이다.
2007년 이탈리아 피혁 브랜드 토즈의 모델로 나선 시에나 밀러. 사진제공 조벡
2007년 이탈리아 피혁 브랜드 토즈의 모델로 나선 시에나 밀러. 사진제공 조벡

시에나 밀러가 촬영 세트로 변신한 레스토랑 안에 들어서자,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스태프들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수려한 외모와 할리우드 스타로서의 자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련된, 그러면서도 그 시즌의 트렌드를 반영한 패션 스타일 때문이었다.

보통의 할리우드 스타들의 경우 소위 '사복'이라 불리는 평상시의 옷차림은 대개 그저 그렇거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수준의 스타일을 구사할 때가 많지만, 시에나 밀러는 '역시 패셔니스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등장부터 스타일리쉬했다.

▶ 영화에서 받은 영감은 그녀의 패션 감각에도 영향 끼쳐

이번 광고의 사진은 전설적인 작가인 고(故)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의 어시스턴트를 거쳐 보그, 바자, W, 인터뷰를 비롯한 대표 패션지 사진은 물론 보스, 디스퀘어드, DKNY등 유명 패션 브랜드 사진을 도맡아 진행한 스웨덴 출신의 '미카엘 얀손(Mikael Jasson)'이 맡게 되었다.

미카엘 얀손은 이미 시에나 밀러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밀러가 메인 모델을 맡고 있었던 영국 대표 청바지 브랜드 '페페 진즈(Pepe Jeans)'와의 작업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기 때문. 촬영장의 분위기는 금방 즐거워졌다.
시에나 밀러가 언니인 ‘사반나 밀러’가 함께 디자인을 맡은 브랜드 ‘Twenty8 Twelve’. 사진제공 조벡
시에나 밀러가 언니인 ‘사반나 밀러’가 함께 디자인을 맡은 브랜드 ‘Twenty8 Twelve’. 사진제공 조벡

당시 시에나 밀러는 '페페 진즈'의 객원 디자이너로도 참여하고 있었고, '페페 진즈'가 출자해 그녀와 그녀의 언니인 '사반나 밀러'가 함께 디자인을 맡은 브랜드 'Twenty8 Twelve'를 구상 중이던 터라, 광고 촬영 전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토즈'의 디자이너를 맡고 있던 '데렉 램'과는 촬영 중간 패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데렉 램은 "정말 그녀는 못 말리는 패션광(fashion-maniac)이예요. 디자이너인 저보다 더 의상과 가방에 대해 생각이 많았거든요"라며 밀러를 기억했다.

그런 그녀의 패션 사랑은 미카엘 얀손도 인정했다.

"페페 진즈를 위한 첫 촬영 때 일이었어요. 브랜드의 담당자가 제가 어떻게 캠페인의 포토그래퍼로 선정되었는지 살짝 귀띔을 해 주었는데, 모델로 미리 선정된 시에나 밀러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어요. 사실 저는 그때까지 그녀와 일면식도 없었는데도 말이죠."

미카엘 얀손은 그녀와 친해진 다음 왜 자신을 추천했는지를 물었다. 밀러가 모델로 섭외되었을 때 그녀는 '팩토리 걸'을 촬영 중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먼저 브랜드 측에 이번 광고 콘셉트는 앤디 워홀 분위기로 이끌어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또한 그 같은 분위기의 사진작가는 미카엘 얀손이 적역이라고 덧붙였다.

시에나 밀러는 "모델을 하기 전에 프랑스판 보그 지에 자주 실렸던 당신의 사진을 좋아했었어요. 특히 흑백사진에 수채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화보가 있었는데, 너무 맘에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앤디 워홀 풍의 사진에 그런 당신의 감성이 딱 들어 맡는다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 배우로서도 열정적 재능 빛보길…

그렇게 시에나 밀러와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녀에게 왜 모델이나 배우보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패셔니스타'라는 칭호가 따라붙는 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보헤미안 쉬크 트렌드를 이끌던 시에나 밀러는 2006년 페페 진의 모델로 선정되었다. 사진제공 조벡
보헤미안 쉬크 트렌드를 이끌던 시에나 밀러는 2006년 페페 진의 모델로 선정되었다. 사진제공 조벡

배우 시에나 밀러는 몇 백 억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대작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적도 없고, 대박이 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물 여주인공으로도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평단의 호평에 힘입어 아카데미 시상식 경쟁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연기파 여배우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에게 이 시대를 대표하는 패셔니스타, 혹은 잇 걸이라는 칭호만 붙여주기에는 그녀의 자질이, 그녀의 재능이, 그녀의 열정이 아쉽다. 앞으로는 패셔니스타로서의 시에나 밀러, 혹은 주드 로의 연인으로서의 시에나 밀러보다 배우로서의 시에나 밀러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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