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 표절문제에 깐깐하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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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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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사라지고 과도한 이미지와 몸만이 남은 한국 대중음악계
● 공중파만이라도 표절 당사자 출연을 일정기간 금지해야

1990년대 후반 H.O.T.와 G.O.D의 등장 이후 한국 대중가요계는 급속하게 독창적 음악성 보다는 이미지 경연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동아일보 DB)
1990년대 후반 H.O.T.와 G.O.D의 등장 이후 한국 대중가요계는 급속하게 독창적 음악성 보다는 이미지 경연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동아일보 DB)
IMF 금융위기와 새로운 밀레니엄을 관통하면서 이 땅에서 대중음악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더 이상 음악은 창조되지 않는다. 창조되는 것은 이미지뿐이다. 아무도 음악의 표절과 복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복제되는 것은 오로지 얼굴과 몸매뿐이다.

지난 세기말 이후 셀 수 없이 명멸했던 아이돌 그룹들과 그 기획자들이 구현하려 했던 것은 그들의 잠재 구매자층(십대에서 이십대 초반에 이르는)이 머물고 있던 탈현실적이고도 비일상적인 판타지 영토에 불과했다.

그것은 재잘거리는 1980년대 순정만화가 아닌 인터넷의 공간을 유령처럼 떠도는 헨타이(변태) 포르노가 제시하는 욕망의 비주얼과 흡사하다. 뾰족한 턱, 커다란 눈매, 풍성한 머리칼, 비상식적으로 가는 허리와 쭉 뻗은 다리(여기에 본래 그랬건 수술로 부풀려졌건 풍만한 유방이 곁들어지면 '이보다 더 환상적일 수 없다'), 남자의 경우는 조각같이 다듬어진 근육질의 상체와 귀족적인 아우라가 추가된다.

■ 한국 대중음악의 타락 시점은 1995~1996년 사이


지금은 그저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H.O.T.와 G.O.D 그리고 신화 같은 보이 그룹, 그리고 핑클과 S.E.S.를 시작으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걸 그룹은 수많은 TV연예 프로그램을 점령해왔다. 이들이 가져온 이미지의 집단마취 효과는 서태지와 신해철, 그리고 김건모와 신승훈이 쌓았던 페르소나의 제단을 단박에 허물어뜨리고 만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마지막 앨범을 발표하던 1995년에서 H.O.T.가 데뷔하던 1996년으로 이행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바로 한국대중음악 역사가 매너리즘이란 깊은 늪으로 인도된 시점일 것이다. 홍대 앞의 남루한 클럽에서 봉화를 올린 인디들의 얼터너티브는 전혀 대안이 되지 못했다. 그 어떤 음악적인 몸부림도 이 강력한 욕망의 전시장에선 무력했다.

밀리언셀러의 금자탑을 세웠던 조관우나 김종환의 '아줌마' 감수성도, 대학가와 386세대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안치환의 지속적인 노력도, 전인권과 시나위를 위시한 베테랑 록밴드들의 아우성도, 한영애와 장필순, 이상은에 이르는 여성 스타일리스트들도, 패닉의 이적이나 이승환, 유희열 같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도 서서히 이 물결 속에 박제화됐다.

물론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예술사는 우리에게 그것이 지니는 창조성과 매너리즘의 사인과 코사인 곡선을 가르친다. 창조적인 에너지가 극점에 달하면 시대는 필연적으로 매너리즘을 야기하고 매너리즘의 골이 깊으면 역사는 창조적 천재들을 비로소 등장시키게 마련이다.

■ 매너리즘이 극에 달해야 비로소 천재들이 출연가능

대한민국의 문화는 스타가 지배하고 독점한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스타와 대자본에 대해 대중의 자발성이 견고하게 발휘되는 순간은 4년마다 한번 있는 월드컵 거리 응원이 유일한 정도다.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아티스트'란 이제 저주받은 존재가 되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일상적인 플랫폼에서 음악은 더 이상 창조적 고뇌의 공유가 아니라 일회성 소비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당대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효리가 발표한 네 번째 앨범의 수록곡 가운데 무려 여섯 곡이 표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미 당사자도 시인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나섰다. 제작사와 소속사는 문제의 작곡가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방침도 흘러나왔다.

인터넷 게시판은 잠깐 시끄러웠지만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이 문제는 그저 가십거리의 하나로 '소비'되었을 뿐이다. 이효리는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며 앨범 프로모션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발표 다음날에 있은 유재석이 진행한 예능프로 녹화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이미 2006년 'Get Ya'의 표절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이효리에게 이번 사태는 뮤지션으로서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명백한 사실은 이 추문으로 이효리의 스타덤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를 단 한명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울한 현실이다.

벌써 누리꾼 일부 혹은 이효리의 극성팬들은 톱스타가 표절 사실을 발뺌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고 솔직하게 시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온정적인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제작사는 신인 작곡가의 학력위조 사실까지 거론하며 그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아가기에 바쁘다. 결국 '우리의 이효리'도 어쩌면 희생자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4년 전 'Get Ya'때로 돌아가 보자. 앨범 발매에 앞서 인터넷을 통해 디지털 싱글이 먼저 발표되었을 때부터 누리꾼들은 표절의혹을 제기했지만 이효리 측은 앨범발매를 강행하고 나섰다. 이른바 성공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는 쿠데타의 논리였던 셈이다.

이번 사태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4집이 발표된 것은 4월13일이고 이효리가 표절을 시인한 것은 음반판매가 충분히 이뤄진 70여일 후였다. 물론 원곡작곡가와의 확인과 접촉에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는 해명이 있긴 했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도 캐나다 작곡가와 인터넷으로 신속하게 소통하는 판에 변명치고는 참으로 옹색하다.

정작 우리가 이효리의 일련의 표절 사태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대목은 따로 있다. 이 나라의 댄스뮤직을 대표하는 뮤지션의 양심의 문제 이전에 논란과정에서 드러난 한국대중음악 생산 담당자들의 표절이라는 예술적 범죄 행위에 대한 얄팍하고도 안이한 인식이며, 표절사태마저 마케팅에 교묘하게 활용하는 저열한 사고방식이다.

이효리 4집 컴백앨범 중 ‘그네’  뮤직비디오. 이효리 4집은 총체적 표절이라는 판단을 받았지만 큰 타격없이 음악생활을 지속하고 있다.(사진제공 m.net)
이효리 4집 컴백앨범 중 ‘그네’ 뮤직비디오. 이효리 4집은 총체적 표절이라는 판단을 받았지만 큰 타격없이 음악생활을 지속하고 있다.(사진제공 m.net)

■ "이효리가 표절했다고 인기 떨어질까?"

단적으로 말해 표절은 절도행위이며 범죄다. 다만 그것은 친고죄에 해당하므로 표절에 의한 저작권 침해 행위의 최종적인 판단은 원저작권자의 제소에 의해 법정에서 가려진다. 따라서 법적인 책임은 이해 당사자들의 몫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제 3자들'이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노래 자체가 사회적인 행위이자 시장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그간 우리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으며 응징하지 못했다. 이효리 소속사는 그동안 표절파문을 일으킨 다른 회사들처럼 원작곡자와 '합의'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모두에게 잊혀질 것이며 스타는 다른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효리 사건 직전에 일어났던 '씨엔블루'와 인디밴드 '와이낫' 간의 표절분쟁을 주목해야 한다. 이 사건은 국내스타급 작곡가와 힘없는 인디밴드 간의 싸움으로 현재법정으로 넘어가 시비를 다투는 중이다. 필자는 이 분쟁이 합의로 흐지부지 되지 않고 몇 년이 걸리던 명확한 판결이 내려졌으면 하고 기대한다.

장기간에 걸친 소송은 힘든 일이며 특히 약자에게는 더욱 그 어려움이 가중된다. 그러나 표절과 관련, 사안의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지고 저작권을 침해한 쪽이 가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경험을 우리는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당사자 간의 다툼이 끝나고 난 뒤에는 저작권 침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적 응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표절 사건에 엄격한 책임을 묻고 단죄해야!"

사회적 응징이란 침해자에게 구체적으로 도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을 말한다.

이효리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이, 심지어 주무 부처인 문화부 일각에서도 표절 심의기구의 필요성을 거론한다. 실제로 1997년에 MBC에서 표절심의위원회를 설치한 적이 있다. 이때만 해도 한국 음악계에서 표절은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급성장하고 있던 대형기획사의 위력 앞에 그 심의위원회는 유야무야 사라지고 만다. 스타가 미디어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표절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심의기구는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박정희 정권시대의 공연윤리위원회처럼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있다. 표절 행위에 대한 응징은 관치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각 방송사와 언론사의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대중음악계의 표절문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공영방송사라도 해당 가수에 대한 강력하나 출연 규제책을 시행하는 것이다(동아일보 DB)
한국대중음악계의 표절문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공영방송사라도 해당 가수에 대한 강력하나 출연 규제책을 시행하는 것이다(동아일보 DB)

우리나라의 모든 미디어는 자체 심의부서를 지니고 있다. 이번처럼 명백하게 표절이 드러난 경우 최소한 공중파 방송들만이라도 당사자의 출연을 일정기간 금지시키는 조치면 충분하다.

강헌-대중음악평론가
강헌-대중음악평론가
우리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출연을 금지시킨 수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표절은 마약이나 폭행보다도 공소시효가 훨씬 긴 치명적인 범죄다. 그러나 시청률 지상주의에 포박된 우리의 방송사들, 연예산업과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놓인 주류언론사들이 과연 스타를 응징할 수 있을까?

표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한국 대중음악사의 유서 깊은 추문이다. 이 종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한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비약은 영원히 불가능하기에, 다 아는 얘기를 다시 한번 짚으며 칼럼을 시작한다.

강헌 / 음악평론가 authodox@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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