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이상진] 빅모델? 빈모델! 스타들의 남모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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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1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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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난 평상시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갑자기 친구 한 명이 나와 말을 안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 나와는 말도 섞지 않으려 하니 원인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나는 그 고민을 접어버렸다. 내 가치관으로는 아무리 되짚어 봐도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고 친구가 그 아이 하나도 아니었고 그냥 내 가치관에 맞게 살아가면 그만이니까…. 친구 마음을 헤아리느라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류스타 박용하가 최근 자살을 택했다. 빅스타들의 삶은 사실 공허한 경우가 많고, 이들의 위태로운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 대중들일 수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한류스타 박용하가 최근 자살을 택했다. 빅스타들의 삶은 사실 공허한 경우가 많고, 이들의 위태로운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 대중들일 수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알고 보면 공허한 빅스타들의 사생활

같은 상황, 빅스타들이라면 어떨까? 내게 등 돌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라면? 그들 모두가 합심해 당신이 싫어졌다거나 실망했다는 댓글을 욕과 함께 남긴다면?

그렇다면 상황은 좀 달라질 것 같다. 내 경우처럼 '아니면 말고'라고 쿨하게 넘어가기에는 엄청난 숫자의 상대와 싸워야 하고 이미지를 먹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 대중의 반응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다보면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스스로의 잣대로 자신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최근 운명을 달리한 한류스타 박용하 씨의 자살 원인을 필자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가 트위터에 남긴 글을 보면 그가 가진 문제 역시 이와 비슷한 어느 언저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인생을 살아가는 빅스타들에게 '빅(big)'이란 단어는 과연 적합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인생을 남의 잣대에 맞춰 바라봐야 하는 이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소유할 수 없는 이들은 빈껍데기 같은 삶에 절망할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빅 모델'은 그래서 사실 '빈(empty) 모델'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들이 취하는 행동 중 하나는 신비주의 전략이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다작을 피한 채 작품 활동 이외에는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다. 공인이 그래도 되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최소한의 자기 방어 장치라고 생각한다.

때로 그들은 용감하게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김제동 씨는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정치색이 강한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또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낸 귀여운 연예인들은 4차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정도 평가가 자신의 소신을 드러낸 결과라면 해피엔딩에 든다고 할 수도 있다.

한 때 엄청난 CF 스타였던 남자 배우가 있다. 그러나 결혼 후 그는 더 이상 CF에서 보기 힘든 얼굴이 됐다. 그저 사랑하는 여성을 선택했을 뿐인데…. 광고라는 냉혹한 비즈니스는 그가 결혼해 얻게 될 새로운 이미지를 우려하며 캐스팅을 망설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라면 광고에 빅모델이 등장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라면 하나 팔아서 얼마나 남겠는가? 라면 수십만 개를 팔아야 빅모델의 모델료를 건질 수 있는데, 누가 눈에 보이는 리스크를 감당하려 하겠는가? 그 배우는 신인에서 빅스타로 올라갔던 그 과정처럼 다시 한번 자신의 인기와 이미지가 얼마나 견고한지 증명해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스타들의 자기 방어 전략 중 하나는 철저하게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 장동건도 대중적 이미지에 맞게 CF출연 건수와 브랜드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배우 중 하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스타들의 자기 방어 전략 중 하나는 철저하게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 장동건도 대중적 이미지에 맞게 CF출연 건수와 브랜드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배우 중 하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철저한 이미지 관리로 자기 방어

따라서 스타들은 스스로 철저히 이미지 관리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오픈 전략'보다 '폐쇄적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그 관리 전략 중 하나로 특정 기업이나 업종의 광고 모델 자리를 꺼리기도 한다. 장기적인 이미지 구축을 위해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유보하겠다는 뜻이다.

오래 전 소주 광고를 맡으면서 톱스타 장동건 씨를 섭외한 적이 있다. 그 때 장동건 씨 측에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의 뜻을 전했다. 먼저 이미 너무 많은 광고에 출연하고 있어 기준점으로 삼았던 총 광고 출연 편수를 넘어선다는 점, 두 번째는 소주가 장동건 씨의 건실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TV CF는 촬영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 저기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인상은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 소주 광고에 이미 이영애 씨 같은 빅모델이 출연하면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 이제 소주 광고는 이효리, 신민아, 하지원, 유이, 이민정 등 당대 최고의 여자 스타들이 앞 다투어 맡는 인기 광고 카테고리로 자리매김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빅모델들이 망설이는 또 다른 광고 카테고리는 대부업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보니 빚어진 현상이다. 일부 연예인들은 별 생각 없이 모델 제안에 응했다 낭패를 보기도 한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 씨도 저축은행 광고에 출연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사실 그가 출연한 것은 대부업이 아니라 제2금융권 광고일 뿐인데 애꿎은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그가 이 광고 모델 자리를 수락했을 때는 제도권 금융이니까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대부업이 아닌 저축은행 광고에 출연했을 뿐인데 비난을 받고 있는 가수 장윤정. 스타들에게 '역지사지'의 미덕을 베풀어주면 어떨까.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대부업이 아닌 저축은행 광고에 출연했을 뿐인데 비난을 받고 있는 가수 장윤정. 스타들에게 '역지사지'의 미덕을 베풀어주면 어떨까.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결론적으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스타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광고 하나 출연하면서도 이미지 구축, 안티 발생 가능성 등을 복합적으로 헤아려야 하는 스타들의 고충을 한 번쯤은 헤아려줬으면 좋겠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는 아량을 베풀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오해로 사실상 텅 빈 상태일 수 있는 이들의 위태로운 삶을 한 번 더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보니 연예인들의 사생활도 적지 않게 듣게 된다. 그 중에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데 항상 화려한 모습을 유지해야 하다보니 사채를 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또 어떤 스타들은 남들 눈을 의식해야 하는 국내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없다보니 굳이 외국에 나가 망가질 정도로 놀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들이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 없도록,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주면 어떨까? 때로는 망가질 자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스타만 아는 남모를 고통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아까운 그들의 명복을 빌면서….

이상진 광고회사 웰콤 기획국장 fresh.sj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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