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야화] 요즘 대세인 ‘착한 예능’의 한계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6월 8일 17시 10분


● 취지만 좋은 '착한 예능', 뻔한 홍보만으론 시청자들의 외면
● 즐거움과 교양을 동시에 잡았던 '상상플러스' '1박2일'의 교훈

착한 예능을 표방했지만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KBS 야행성
착한 예능을 표방했지만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KBS 야행성

#장면1=군 입대를 앞둔 청춘들이 MC의 호출에 모여들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목욕탕에 둘러앉은 이들이 맞이한 깜짝 게스트는 '소녀시대'. 조금은 빠른 '위문공연'에 이들은 열광했고, 즉각 짝짓기 게임이 펼쳐진다. 오늘의 미션은 서울 독거노인들의 이불 빨래. 팀을 이룬 젊은이들은 게임을 하며 힘겨운 빨래 노동을 즐긴다. (6월6일 일요일 밤 '야행성')

#장면2=토크쇼 MC들이 산부인과 병실에 삼삼오오 둘러앉았다. 대부분 결혼과 출산 경험이 있는 연예인들이다. 이들은 출산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며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고 축하의 팡파르를 울린다. 화면을 가득 채운 신생아들의 맑은 모습에 보는 이들 모두 행복해진다. (6월7일 월요일 밤 '해피버스데이')

예능프로그램이 점차 '착해'지고 있다?

최근 방송계에서는 '착한 예능'이라는 알쏭달쏭한 표현이 대세를 이룬다. 몇 년 전까지 예능의 주류를 이뤘던 가학적, 선정적, 유치한 프로그램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프로그램에 '착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사례가 이른바 착한 예능인데, 최근 새롭게 시작한 심야 프로이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은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시청률이 6% 안팎이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KBS '1박2일'이나 '청춘불패' 신개념 토크쇼를 표방하고 나선 '승승장구' 혹은 MBC 간판 예능인 '일밤'의 '단비'라는 코너를 떠올리면 방송가를 장악한 착한 예능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KBS 2TV 해피버스데이
KBS 2TV 해피버스데이


▶ 착한 예능의 세 가지 조건, '실질' '비선정성' '공익'

착한예능의 첫 번째 조건은 MC들의 놀이가 소모적이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공영방송임을 내세운 KBS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된다. 주말시간 심야토크쇼를 표방한 '야행성'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 MC들의 목표는 선행이다. '아이돌촌(村)'이란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데 성공한 '청춘불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쁘장한 걸 그룹 멤버들이 몸빼 바지를 입고 등장해 손수 농사를 짓는 것은 물론 고추장을 만들어 이를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착한 예능의 또 다른 특징은 선정성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정성이란 '노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이다.

착한 토크쇼를 표방한 프로그램이 바로 배우 김승우가 MC로 나선 KBS의 '승승장구'다. 과거 폭로 전으로 치달았던 선정적 토크쇼를 지양하고 진솔하고 인간적인 대화로 게스트의 캐릭터를 충분하게 띄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충격적이거나 가십성 연예 소재를 이용해 '작문논란'에 휩싸이곤 하는 케이블TV나 경쟁사 토크쇼에 비해 시청률은 낮지만, 톱스타나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자는 전략을 택했다.

착한 예능의 마지막 특징으로는 풍자 보다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

MBC 예능의 대표주자인 '무한도전'이 20~30대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음과 동시에 논쟁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한도전만의 날카로운 풍자정신 때문이다. 반면 착한 예능은 세태에 냉소를 짓기 보다는 공익을 홍보하는데 무게를 둔다. KBS '야행성'이 다문화 사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가 야식을 제공한다거나, '해피버스데이'가 출산률 제고를 위해 직접 현장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공익적 방송을 지향하는 MBC의 단비
공익적 방송을 지향하는 MBC의 단비


▶ '상상플러스'가 될 것인가? '단비'가 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착한 예능이란 최근에 시작된 트렌드가 아니다. '1박2일' 역시 착한 예능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3년 전 '1박2일이'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강호동을 필두로 한 출연진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봉사활동부터 했다. 독도를 지키는 해양경찰 대원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배달하고, 낙도의 독거노인이나 청소년들과 놀아주는 것으로 그들만의 전국일주를 시작한 것이다. '1박2일'의 착한 예능 정신은 MBC의 '단비'나 SBS의 '패떴(패밀리가 떴다)' 같은 경쟁프로그램으로 고스란히 전파됐다.

예능 방송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착한 예능의 이상형은 5년 전 한국어 학습 열풍을 불러왔던 '상상플러스'와 한국 여행문화를 주도하는 '1박2일', 10년 전 MBC가 주도했던 '기적의 도서관' '러브하우스' 등이다. 이들 모두 오락과 교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영방송의 정신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능과 공익의 절묘한 조화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예능과 공익의 절묘한 조화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예능의 선행화 혹은 순수화는 공중파의 트렌드임이 확실해 보인다. 선정성으로 치닫는 케이블TV나 인터넷방송을 따라가지 않고 공중파의 독자적인 예능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착한 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의 성적은 좋지 않다. MBC의 해외봉사프로그램인 '단비'는 그 존폐 여부가 논의될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KBS의 '해피버스데이'나 '야행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공익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나섰지만, 공익을 내세운 순간 재미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착한 예능의 모델이었던 '상상플러스'의 사례를 보자. 처음엔 한국어 퀴즈 풀이를 놀이로 즐기면서 시청자들은 열광했지만 이름을 '상상더하기'로 바꾸고 한국어 학습을 목표로 하는 순간 시청률이 급전직하했다. 반대로 '1박2일'은 철저하게 즐거움을 택하는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착한 예능의 성공 여부를 시청률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볼만한 가치를 충분하게 전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공익이란 TV 프로그램의 최종 목적이라기보다는, 방송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미디어 본연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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