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란 무기를 지닌 위대한 배우 '전도연'
●'하녀'로 또 한번 칸에 입성한 대한민국 여배우의 자존심
독한 성형수술이나 두꺼운 화장을 하지 않은 자연스런 민낯. 수수하고 평범해 보이는 외양이지만 그 안에는 본능적 감성과 비범한 끼가 숨어 있다.
그 존재감만으로도 아우라를 뿜어내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전.도.연.
굳이 '칸의 트로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매번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며 연속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필모그래피만으로도 그녀의 비범함은 쉽게 증명된다.
전도연은 화려한 젊음과 미모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와 넒은 연기 폭으로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무엇보다 '연기'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이다.
그리고 그녀는 머리가 아닌 철저하게 본능에 충실한,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이다. 때론 온몸을 이용해 마구 감정을 발산하기도 하지만, 때론 별다른 추임새 없이 사소한 눈짓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의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치 음악이 만국의 공용어로 소통이 되듯, 그녀의 가슴 연기도 대한민국을 넘고 국가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세계인을 들었다 놓았다.
이를 토대로 그녀는 2007년 자신의 10번째 영화 '밀양'을 통해 '칸의 여왕'이 되어 월드스타가 되었고, '버라이어티'지가 선정한 '2007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예술인 50'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0년 5월. 고(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하녀'에서 그녀는 색다른 팜 파탈을 선보이며 두 번째로 칸 트로피에 도전했다.
수상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그녀는 모 평론가의 말처럼, "현재까지 나온 우리나라 배우 중 가장 위대한 배우가 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재목"임에 틀림없다.
▶ '눈물의 여왕'에서 '칸의 여왕'까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전도연은 우연히 잡지모델에 발탁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1990년 '깨끗해요'라는 카피의 화장품 광고로 이름을 알린 후, 1992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7년 영화 '접속'의 '여인2'라는 너무나 특색 없는 배역으로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불식시키며 흥행에 성공함은 물론 각종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싹쓸이했다.
이후 그녀는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매 작품마다 한계라 여겨졌던 부분들을 뛰어넘어 조금씩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면서 최고 정상에 올랐다.
'접속'에 이은 '약속'(1998)으로 '멜로의 여왕' '눈물의 여왕'이라는 닉네임까지 얻더니, 이어진 '내 마음의 풍금'(1999)에서는 수줍은 짝사랑에 달뜬 늦깎이 초등학생인 17세 강원도 산골 소녀 역을 맡아 금방이라도 옷에서 땟국물이 번져 나올 듯 한 시골 소녀를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촬영 당시에는 반 아이들 틈에 섞여 있으면 제작진조차 그녀를 찾아내지 못할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더니 '전도연이 벗는다'는 헤드카피가 나붙었다. 대부분의 주연 여배우들이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그 문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영화 '해피엔드'(1999).
이 작품에서 배우 전도연은 스스로도 "내가 배우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라 정의할 정도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열정을 뿜어냈다.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노출신과 기대 이상의 비정한 바람난 유부녀를 파격적으로 표현해냈다.
'주연 여배우가 벗기 시작하면 그걸로 (배우인생) 끝'이라는 암묵적인 사회통념을 뒤엎으며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또 한 단계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전도연은 세간의 기대를 깨뜨리는 선택을 본격화했고, 그녀의 팔색조 같은 화려한 캐릭터 변신은 언제나 우려를 감탄으로 바꿔놓았다.
동시대 예술인에게 '위대하다'는 칭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 전도연.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 사진 더 보기
▶ 전도연의 도전정신으로 써내려간 한국영화사
'해피엔드' 이후 더 센 파격을 기대하던 관객들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에서 요구르트 뒷꼭지를 쪽쪽 빨아 먹으며 소박한 데이트를 즐기는 평범한 학원 강사의 일상으로 '한방' 먹이더니,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선 진정 '피눈물 나는 액션'을 선보였고, 첫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에서는 발끝까지 기품과 우아함을 담은 평생을 수절해 온 숙부인으로 변신했다.
'인어공주'(2004)에서는 고된 생활고를 감당해야 하는 엄마와 딸의 완벽한 1인2역을 해냈으며, '너는 내 운명'(2005)에서는 세련되고 쿨한 사랑이 미덕인 세상을 향해 대담하게도 '통속 멜로'를 표방하며 에이즈 걸린 여자의 순애보르 통해 '눈물의 여왕'으로 돌아왔다.
전도연은 어떤 작품에 출연하든 캐릭터 자체가 되는 배우다. 거쳐간 이름들은 모두 전도연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유일한 캐릭터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전도연이 "연기를 잘했다"는 건 전혀 놀랄 만한 소식이 아니었고 '전도연의 영화'라고 하면 관객들이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갖고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정도의 '국민 여배우'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캐릭터 자체도 적을뿐더러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전도연이 배우로서 뭘 더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그녀는 데뷔 후 처음으로 시나리오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로 이창동 감독의 작품 '밀양'을 선택했다. 정체된 것 같았던 스스로에게 선전포고를 던진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상황이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으며 남편을 잃고, 아이까지 유괴당한 한 여인의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고통을 온몸으로 연기해냈다. 이 전쟁에 승리하면서 배우로서도 한 단계 더 뛰어올라, '칸의 트로피'를 전리품으로 거머쥐었다.
▶ "칸 여우상만 기억하는 서운한 세상…아직 보여줄게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칸 트로피'를 칭송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전도연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으리라 우려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화려한 그녀의 트로피가, 오히려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거대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 악바리 배우 전도연은 정작 초연하게 '멋진 하루'(2008)의 까칠한 노처녀로 평범하게 내려앉더니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을 위한 잠시의 휴지기를 거쳐 인간 전도연으로 돌아가 호흡을 고르는 한편, 인간적인 성숙으로 무장하며 전열을 재정비한뒤 2010년 '하녀'로 전선의 최전방에 섰다.
이 작품에서 순수와 욕정을 동시에 지닌 '하녀'를 연기한 전도연은 유부녀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짐작되는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함으로서 자신이 여전히 보여줄 게 많은 배우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누군가 빛날광, 미칠광을 다 지닌 광녀라고 말하더군요"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버릴 줄 아는 백지 같은 여배우 전도연.
그녀는 "누군가가 저에게 빛날 광, 미칠 광을 다 가지고 있는 광녀라고 말하더라"고 밝힐 정도로 현장에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죽을 힘을 다하는 독종이다.
두 번째 칸의 트로피에 도전하는 그녀에게 앞으로 또 어떤 수식어가 붙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그녀가 스스로를 던져 헌신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한번 그녀에게 '한방' 먹기를 유쾌하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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