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원명]용산공원, 복합건물 대신 텅빈 녹지로

  • 입력 2009년 8월 27일 02시 54분


오랫동안 고대하던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가 성큼 다가왔다. 이전을 앞둔 용산 미군기지의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고 알고 있다. 서울시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대공원을 조성하려는 생각도 하는 것 같고, 일부 기관이나 학자는 문화시설 집적단지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용산은 고려 말 몽고군의 병참기지로,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왜군의 보급기지였다. 청일전쟁 이후에는 청군과 일본군이 주둔했고 러일전쟁과 함께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주둔하면서 무력에 의한 일본의 조선지배 근거지가 됐다. 광복 과정에서 용산 기지에 미군이 주둔하는 등 오랜 기간 외국군이 머문 역사를 갖고 있다. 용산공원은 이처럼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므로 국보급 문화유산지역으로 보전할 특별한 성격과 가치를 지닌다.

용산공원이 대한민국 아픔의 역사가 스민 곳이므로 필자는 집적단지보다는 ‘여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의 도시공간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빈틈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공간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꾸 무엇으로 채워 넣으려 한다. 도시의 공간이라는 여백은 건물로 모두 채워 넣고 그것도 모자라 하늘로, 하늘로 신에게 도전하는 바벨탑인 양 올라간다. 건물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은 건물 대신 차가 차지한다.

이제 우리도 여백의 중요성을 생각하자. 서울대 조경진 교수(환경조경학과)는 2007년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용산공원의 대표 이미지로서 공간은 너무 많은 시설과 프로그램을 담기보다는 여백처럼 비워두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기능을 한 공간에서 담아낼 수 있도록 텅 빈(void) 녹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만들어지는 상징물이나 박물관, 미술관이 늘어선 시설 위주의 콤플렉스가 용산공원을 떠올리는 대표 이미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어 있는 녹색 공간이 새로운 공원의 중심적인 이미지와 기본적인 특성으로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공간에 비움이 있다면 이는 무한한 상상력이며 가능성이자 공존이며 미소이다. 공간은 허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공의 미학이 있다. 9층 목탑이 있는 황룡사지를 언덕에서 쳐다보면 주변 사방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웅장한 스케일이 더 감격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그리고 동해안 가까이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을 눈 내린 겨울에 보면 동서 3층 석탑이 주변 지세와 어울리는 여유와 무한한 평화로움을 느끼지 않는가.

공간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과 여유로움을 이제 우리도 한강이 내다보이는, 역사의 한이 서린 서울 용산에서 찾아보고 싶다. 일부에서는 용산공원에 문화시설이니, 체육시설이니, 상업시설이니 하면서 자꾸 뭘 채우려고 한다. 용산에는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 같은 문화시설이 있고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일부 관료나 건축학자들은 공간이 있으니 무엇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다.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호수 하나만으로 단출하다. 거기에는 미술관도 없고 체육관이나 박물관도 없다. 오직 나무와 호수만 있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국토해양부가 용산공원 조성을 추진하기에 앞서 국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다. 이 지역을 국보급 국가사적지로 먼저 지정하고 공원 조성 및 활용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용산공원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국민의 공간, 세계적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나 영원히 존속하기를 바란다.

이원명 서울여대 교수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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