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당의 정기국회 판깨기 ‘DJ 遺志’ 아니다

  • 입력 2009년 8월 27일 02시 54분


여야가 9월 1일 시작되는 정기국회 의사일정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기국회가 개회하는 다음 주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로 중단됐던 미디어 관계법 원천무효 투쟁을 재개하겠다고 어제 밝혔다. 이번 주까지 자체적으로 정한 추모기간을 채운 뒤 미디어법 철회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형식으로 장외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연초부터 되풀이된 임시국회 파행이 내년도 예산을 다루는 정기국회로 연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지난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비정규직법안과 정부의 세제개편안,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방지 대책을 비롯한 민생현안과 선거구제 및 행정구역 개편 등 시급한 국정현안을 다뤄야 한다. 내주 초 개각이 단행되면 인사청문회도 열어야 한다. 국회법상 정기국회 전에 끝내도록 돼 있는 결산심사조차 상임위가 열리지 않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철회해 야당에 등원(登院) 명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달 22일 통과된 미디어법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권한쟁의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해 심리가 진행 중에 있다. 헌재 결정을 기다리며 국회는 할 일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민주당의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인 ‘행동하는 양심’ 운운하며 장외투쟁이 고인의 유지(遺志)인양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회주의자였던 고인은 서거 두 달 전 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국회의원은 원내에서 싸우라고 국민이 뽑아준 것이다. 야당을 하면서 등원하지 않고 성공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달리 명분을 찾을 수 없다.

국정감사와 법안 예산 심의를 통해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고 견제하는 역할이야말로 야당 본연의 의무이자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헌법상 책무다. 이를 저버린 채 장외로 떠도는 것은 대의(代議)정치의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달리 모처럼 국민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당내에서 원로그룹과 일부 온건합리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등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민주당 지도부가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이 있어야 할 곳은 국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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