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47>

  • 입력 2009년 7월 29일 14시 20분


"다리로 글라슈트를 쓰러뜨린 후 목을 감싸 안는 무사시. 암바처럼 보이지만, 서로 마주보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예상하건데 '목돌리기' 기술에 들어가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목돌리기를 시도하려는 걸까요?"

정훈일 캐스터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격투 스테이지를 응시하며 목청을 높였다. 크로캅 위원도 따라 일어서서 양팔로 무엇인가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네, 저 자세는 목돌리기 자세 맞습니다. 저러면 안 되죠. 목돌리기는 반칙이거든요. 목을 완전히 돌려 180도 이상 꺾어도 반칙이고요. 머리를 뜯어내기라도 하면 청소년 유해 장면이 되어 저희가 방송으로 내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네, 하지만 목돌리기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글라슈트가 무사시의 목돌리기 기술에 충분히 대비한 것 같아요. 아! 지금 얼굴과 목, 가슴을 일직선으로 세워 힘을 주고 있는데, 무사시가 제대로 목을 틀지 못합니다."

크로캅 위원이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지금 글라슈트는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사시는 글라슈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힘을 쏟고 있는데요, 뭔가 여의치 않은 기색입니다."

"목돌리기를 버티느라 힘겨워 하는 글라슈트. 과연 이 고비를 넘긴 후 반격할 수 있을까요?"

정훈일 캐스터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사시가 두 다리를 들어 올려 글라슈트의 옆구리를 여섯 차례 빠르게 가격했다. 그리고 두 다리로 허리를 감아 죈 다음, 골반을 세 바퀴나 돌려 하체를 뜯어냈다. 두 손으론 글라슈트의 얼굴을 꼭 쥔 채로 말이다.

볼테르는 말을 못할 만큼 넋이 나가버렸고, 뚱보 보르헤스가 대신 분노를 터뜨렸다.

"저, 저, 저 미친 새끼! 우리가 저 새끼 언론 플레이에 당한 겁니다."

정훈일 캐스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목돌리기를 시도할 줄 알았던 무사시, 목돌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상체에 온 힘을 주고 있던 글라슈트의 허리를 양발로 감고 돌려 하체를 뜯어내 버렸습니다. 목돌리기를 견디려고 힘을 준 상체가 하체를 돌리는 구심점 역할을 한 셈이 됐네요."

"네, 그렇습니다. 무사시, 정말 잔인하네요. 목돌리기를 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상대방의 버티기 힘을 역이용해서 허리를 세 바퀴나 돌려 하체를 뜯어내 버렸군요."

멍하니 쳐다보던 볼테르가 혼잣말을 했다.

"하체를 뜯어내려고 머리를 잡고 있었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죄송합니다. 제가 더 높은 값을 입력했습니다. 상대가 얼굴을 잡고 목을 돌리기 위해 힘을 가하면, 반대방향으로 토크(torque)를 최대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꺽다리 세렝게티가 글라슈트의 처참한 상황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체를 뜯어내는 건, 반칙 아닌가요? 일종의 허리 돌리기인데요."

정훈일 캐스터가 크로캅 위원에게 물었다.

"네, 저건 반칙이 아닙니다. 2043년 개정된 현재 규정은 목을 돌려 얼굴을 뜯는 것만 반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사시, 정말 머리 좋네요."

"그런데 크로캅 씨! 다리와 허리 그리고 골반이 떨어져 나간 글라슈트. 공격은 사실상 더 이상 어렵지 않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한 동안 무사시가 글라슈트의 목과 얼굴을 꽉 잡아 고통스럽게 만들었는데, 동시에 다리와 허리를 뜯어냈기 때문에 이제 다리 없이 기어 다녀야 하거든요. 파워풀한 하체 공격은 불가능해졌다고 봐야죠."

"네, 너무 잔인합니다. 글라슈트의 하체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신경회로선들이 흉측스럽게 너덜거리는데요. 무사시, 뜯겨나간 부분을 주먹으로 집중 가격합니다. 데스 시그널을 만드는 영역까지 충격이 갈 것 같은데요."

"네, 말씀드리는 순간, 상체만 남은 글라슈트가 무사시의 어깨를 짚고 올라탔습니다. 두 로봇이 포옹하는 묘한 자세가 됐는데요. 글라슈트, 최후의 몸부림인가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