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민주당, 야당 제대로 해봐라

  • 입력 2009년 6월 8일 20시 25분


지금의 민주당은 12년 이전 ‘무관(無冠)의 야당’도, 22년 이전 투쟁에 목을 매야 했던 ‘길거리 야당’도 아니다. 무려 10년이나 집권 경험을 가진, 국정 운영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야당이다. 지난 시절 신나게 정부 여당을 압박도 해봤고, 집권 여당의 처지에서 야당의 공세를 신물이 나게 받아보기도 했다.

둘 다를 경험해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2선 이상 의원만도 전체 84명 중 61명(73%)이나 된다. 정세균 대표는 산업자원부 장관, 이강래 원내대표는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과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으로 실제 국정 참여 경험도 갖고 있다. 크고 작은 자리에서 국정운영에 직접 간여해본 다른 의원들도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야당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민주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나라야 어찌되건 야당의 유일한 목적은 차기 집권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어떻게 하는 것이 집권 가능성을 높일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처럼 국회를 외면하고, 정부의 핵심 정책을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하고, 툭하면 길거리 세력과 섞이는 것이 진정 집권에 득이 된다고 계산하는가.

민주당 정도의 경륜 있는 정당이라면 다른 야당들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 최소한 정당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론 ‘우리가 국정 책임자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자문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도 가져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과연 그런 야당의 길을 걷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정부 여당이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사람 사는 세상에는 늘 불만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야당은 그런 불만과 갈등의 증폭기가 아니라 감속기 구실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면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대안을 마련해 성난 주먹을 펴도록 다독이는 게 진정 야당이 할 일 아닌가. 야당이 강성 노조나 길거리 세력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구태여 제도권 정당으로서 존재할 이유가 뭔가.

민주당이 진정 ‘서민의 정당’임을 자임한다면 실질적으로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불만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안 찾기에 매진해 보라. 그것이 성과로 이어진다면 그 공(功)이 누구의 것으로 기록되겠는가. 그런 덕(德)을 하나둘씩 쌓아가는 것이 머리띠 두르고 길거리로 나서 목청을 돋우는 것보다 집권으로 다가가는 훨씬 빠른 길일 것이다.

민주당이 노선 변화를 위한 ‘뉴 민주당 플랜’을 발표한 것이 불과 20여 일 전인 5월 17일이다. 6일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애도 분위기가 고조되고 민주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지를 정도로 급상승하자 거기에 도취돼 망자(亡者)를 붙들고는 ‘도로 열린우리당’ 비슷하게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심해도 너무 심한 표변(豹變) 아닌가.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야당은 이런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에서 차이를 가질 뿐이다. 선거는 그 방법에서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는 국민의 선택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기본을 거역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먼저 나서서 국민에게 큰 절망감을 주고 있는, ‘물고 물리는’ 우리 정치의 악순환을 끊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나중에 집권했을 때 할 말이 있지 않겠는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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