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호열]北직원억류 최우선 해결돼야

  • 입력 2009년 5월 28일 02시 59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이 채택되고 대북제재가 채 가동되기 전에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또다시 세계를 격앙시켰다. 즉각 소집된 유엔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북한의 행태를 규탄하고 새로운 제재결의안을 마련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장래와 관련해 최후통첩성 통지를 예고한 가운데 남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가입 발표 하루 만에 이를 정전협정 파기와 선전포고로 규정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나섬으로써 남북관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앞두고 경색과 긴장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두달째 인질로 잡고 협박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된 상황에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의 억류사태는 2개월째 답보 상태다. 유 씨가 3월 30일 북한 당국에 억류될 당시 북한이 발표한 혐의 내용이라면 지금쯤 벌써 결과가 나왔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듯 체제 비방이나 북쪽 근로자를 유인해 탈북책동을 벌였더라도 남북합의에 따라 벌금이든 추방이든 조치가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북한 중앙특구개발총국의 담당자들은 1차 통지를 4월 21일 전달하는 과정에서 소관이 아니라며 언급을 피했다. 5월 15일 위임에 의한 통지문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측이 유 씨 문제를 거론한 점을 반공화국 대결소동이라고 매도하면서 유 씨가 현대아산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북한 체제를 반대하는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았다고까지 주장하는 등 문제 해결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마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남사업부문 담당자를 대거 숙청하거나 교체했다. 개성공단을 총괄하던 특구지도총국장인 주동찬은 이미 작년 3월 교체됐고, 남북경협을 담당하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정운업 회장 역시 숙청되고 민경협 조직 자체가 내각에서 제외됐다. 현대아산의 협상 파트너였고 남북관계를 실무적으로 지도하던 최승철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역시 사라졌다.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한 전반적 문제나 억류된 유 씨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배경은 이런 인적 청산과 북한 지도부 내의 근본적인 변동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 당국은 이 사안을 정치문제화해 중대 위반사항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다. 현대아산 직원으로 위장한 불순 공작책이라는 혐의를 씌우려는데 관련 증거나 혐의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자 고립된 상태에서 장기간 고문 아닌 고문을 가하는 것이다. 남북합의 위반이자 인권유린 등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북한은 유 씨를 인질로 해 개성공단 문제를 유리한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나 개성공단 진출 기업이 북측의 일방적 요구에 호락호락 순응하지 않는 데 대한 보복성 압박 수단으로 내세우는 셈이다. 최악의 경우 공단 폐쇄를 각오한 정부와 기업에 인질을 앞세운 협박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국민보호의지 확고해야

유 씨는 현재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대아산을 비롯한 우리 측 인사와의 접견이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남북합의 위반이고 개성공단 문제 중 가장 본질적 문제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개성공단 문제와 유 씨 문제를 병행 처리하겠다는 통일부 장관의 국회 보고 역시 타당한 입장 표명이라고 본다. 개인의 억류문제를 넘어 우리 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얼마나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이다. 한반도 정세가 위중할수록, 개성공단의 장래가 불투명하면 할수록 정부는 자국민의 인권과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원칙을 흔들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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