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민주당, 정적을 벤치마킹해보길

  • 입력 2009년 5월 21일 02시 56분


민주당이 당의 진로와 정체성에 관한 ‘뉴 민주당 플랜’을 놓고 술렁거리고 있다. 이대로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크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선 내부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그중엔 눈길을 끄는 주장도 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17일 “우리가 입버릇처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말했는데 중산층은 한나라당과, 서민은 민노·진보신당과 겹친다”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정책적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당의 현주소에 대한 솔직한 진단이다.

4·29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이겨 민주당 복당을 추진 중인 정동영 씨는 18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민주당은 당 자체로 대한민국에서 비주류이지 않느냐. 특히 가장 아픈 대목은 국민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두 사람의 고언(苦言)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적지 않았음에도 민주당 지지율이 10%대에서 꿈쩍 않는 것과 무관치 않다. 민주당이 이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아무리 강도 높게 비판하고 반대해도 국민의 눈엔 아직은 민주당이 정권을 다시 맡길 만한 당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당으로선 자존심이 무척 상할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어떻게 했는지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나라당은 정권을 내줬다가 10년 만에 되찾은 한국의 첫 정당이기 때문이다.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과 ‘차떼기 당’이란 오명(汚名)으로 지지율이 8%까지 추락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대통령 집권 2년차였다.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을 새 대표로 뽑아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쇄신에 나섰다. 국민의 질타에 겸허히 몸을 낮추고 용서를 구했다. 천막당사는 그 시절의 상징이다. 그러면서 정부 여당에 대해선 원칙을 내세워 파상 공세를 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50%대까지 올랐고 재·보선 등에서 연전연승했다. 대선 경선에선 이 대통령이 이겼지만 당을 기사회생시켜 정권교체의 기반을 다진 데는 박 전 대표의 공이 컸다.

물론 한나라당의 반성이 일시적 쇼에 불과했다는 혹평도 있다. 특히 최근엔 ‘도로 웰빙당’이 돼 민성(民聲)에 귀를 막고 오만에 빠졌다는 질타가 세간엔 많다. 하지만 정치 상황이 다른 걸 감안해도 야당 시절 한나라당이 현재의 민주당보다 국민에게 희망을 더 주었음은 지지도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에 대한 견제에서도 박 전 대표의 한마디는 야당의 집단 성토보다 오히려 큰 위력을 발휘한다.

민주당 일각에선 선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소수의 진보성향 지지층을 놓고 민노당, 진보신당과 경쟁하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다수의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있는 중원(中原)에서 한나라당과 경쟁하는 게 당의 저변 확대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경쟁할 상대는 이 대통령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차기 주자 중 현재론 박 전 대표가 선두다. 민주당이 박 전 대표를 넘어서지 못하면 정권탈환은 헛된 꿈일 뿐이다. 당장은 왜 민주당이 야당 시절의 한나라당보다 못한지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부터 하는 게 먼저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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