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카페]저신용자 대출, 은행 높은 벽 그대로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소득보다 빚 많으면 대출거절

홍보-실상 달라 서민에 ‘대못’

요즘 시중은행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저신용자 대출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힘들었던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서민층에게 10%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동안 대부업체 등 고금리 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했던 서민들로선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대출을 받기 위해 실제 은행 창구를 찾은 고객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며칠 전 서울 관악구에 사는 주부 이희영 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씨는 “A은행의 저신용자 대출상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 지점을 찾았는데 대출을 받지 못했다”며 “은행의 상품 소개자료와 창구 직원의 설명이 다르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 은행은 저신용자 대출을 시작하면서 자격조건을 ‘총소득 2000만 원 이하, 총부채 3000만 원 이하인 고객’으로 제한했습니다. 이 씨는 소득 1800만 원에 부채가 2000만 원이어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창구 직원은 “소득보다 부채가 많으면 돈을 빌려줄 수 없다”며 퇴짜를 놓았습니다. 이 씨는 “버는 돈보다 빚이 많을 경우 대출이 안 된다면 자격조건을 총소득 2000만 원 이하, 총부채 3000만 원 이하로 정한 것이 잘못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상품 소개 자체가 빚이 소득보다 많아도 대출이 된다는 오해를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B은행을 찾은 또 다른 독자는 “창구 직원이 귀찮다는 듯이 서류를 훑어보며 대출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나는 소득 증빙자료도 있고 밀린 세금도, 연체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궁금하다”고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은행도 할 말은 많습니다. 저신용자 대출 신청고객은 소득이 적기 때문에 기존 대출이 조금만 있어도 신규 대출한도가 ‘0원’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저신용자 대출이 은행권의 새로운 시도인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은행 측의 논리에도 수긍할 대목이 있지만, 은행이 배포하는 대외 홍보자료와 일선 창구의 태도가 다르다면 은행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지연 경제부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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