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형준]노동절에 ‘정권심판’ 외치는 민주노총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5·1절? 노동자의 날? 아∼쥐 잡는 날!!” “5월 1일 꼭 청와대 진격투쟁만이 살길입니다. 지도부의 결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전태일 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 반동 이명박 타도!”

3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은 과격한 시위를 조장하는 글들로 도배돼 있었다.

민주노총은 노동절 행사 홍보를 위해 최근 홈페이지 초기 화면까지 바꿨다. 하지만 여기에는 ‘촛불로 살립시다’ ‘MB정권심판 범국민대회’라는 글자가 가장 컸고 ‘노동절’이라는 단어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500여 개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제119주년 세계노동절 기념 촛불정신 계승 민생살리기·민주주의살리기 MB정권 심판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를 결성하고 노동절 행사를 준비해 왔다.

노동절은 1886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노동절 행사 준비 과정에는 노동자는 없고 ‘정권심판’과 ‘촛불’만 있는 것 같았다. 지난해 노동절 집회는 평화롭고 축제처럼 진행됐지만 이번 노동절 집회는 노동절 다음 날인 2일 열리는 ‘촛불 1주년 기념집회’의 사전 행사로 전락한 모습이다.

경찰은 이 행사가 불법 폭력 시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평화시위구역인 여의도 문화광장에서의 집회만 허락했다. 집회 장소를 두고도 경찰과 민주노총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지만 결국 민주노총은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집회를 열기로 하고 ‘불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평화시위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본보 4월 30일자 A16면 참조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경한 조합원들과 누리꾼들은 “영등포경찰서와 MOU를 체결한 민주노총은 더는 노동단체가 아닙니다. 민주노총을 심판하자” “청와대 진격투쟁하자고 했더니 장소가 여의도입니까. 지금 제정신입니까” 등의 글을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반발을 고려해 일주일 가까이 집회 장소를 고민했다.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노동절 기념 국민과 함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마라톤 대회’를 열기로 했다. 노동절이 꼭 집회를 열어야 하는 날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도심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폭력 등 돌출행동이 있는 시위를 벌여야 꼭 선전 효과가 클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노동절과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1주년을 앞두고 민주노총의 발상 전환과 선진화된 집회 문화를 기대해 본다.

황형준 사회부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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