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기오]학교별 수능성적도 공개를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국이 보유한 정보파일의 일부를 세미나 발표 형태로 공개했다. 재판까지 열리면서 큰 사회적 정치적 논란을 빚던 수능 성적 정보의 중요한 부분이 마침내 공개된 것이다. 언론과 인터넷사이트는 물론 전국에서 이를 놓고 더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차제에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짚어 본다.

먼저, 우리 사회가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찍 정보화시대의 한가운데로 진입했다. 정보화시대에 정말로 귀하고 중요한 요인은 주변에 넘치게 마련인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갖고 창출하는 지식이다. 이번에 일부 공개한 수능 성적 자료조차도 사실은 코끼리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를 두고 각자의 제한된 경험과 선입견에 따라 꿰어 맞추다 보면 눈 감고 코끼리 만진 사람처럼 성급한 판단을 하기 쉽다.

지역별 자료를 언뜻 보면 고교평준화에 대한 공격의 소재를 제공하는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유심히 보면 반대 해석도 가능하다. 서울지역 내의 학교 간 점수차는 19∼30점, 평준화 지역 내에서 학교 간의 점수차는 26∼42점, 비평준화지역을 포함할 때는 57∼73점(교육과정 평가원 세미나 자료 21쪽)의 점수차가 난다. 눈에 띄게 좋은 학업성취 결과를 보인 지방의 시군 지역이 특목고 등 특별한 고등학교 때문이라고 속단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2003년 이후 특목고 설립 없이도 학생의 수능 성적 향상이 두드러진 지역이 사실은 더 많다. 이를 무시한 판단은 편견이며 정말 교육의 향상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 이들 시군 지역의 교사와 학부모를 모욕하는 일이다.

깊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점은 지역단위를 넘어 학교단위까지 또는 그 이상으로 상세한 부분까지 공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비밀의 보호와 투명한 공개 사이에 놓인 긴장과 균형 위에서 발전했다. 전자는 사적 비밀, 종교의 비밀, 영업 비밀, 직무상 비밀의 헌법적 보장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투명하고 공개된 정부, 주식시장에 공개된 기업이 갖춰야 할 투명성 등 공개된 열린사회의 모습 또한 현대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이다. 공개의 깊이 여하는 바로 어느 지점에서 양자의 균형을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점진적으로 학교단위 성적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학생 성적 공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통상적으로 비밀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이 공개를 요구하고, 투명성을 더 강조해야 할 평등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 판도라의 상자 공개를 두려워하며 비밀보호를 외치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해 모두 고민해야 한다. 가장 관심이 많은 1등급 학생의 분포와 변화 추세는 왜 발표하지 않느냐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최우수 등급 학생을 둘러싼 논란이야말로 조심해 다루지 않으면 사회통합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이 문제는 한국이 자유와 평등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고 원만하게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지에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마디를 하고 싶다. 교육의 성과는 수능과 같은 시험성적만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처럼 학생의 자기주도성과 사회성, 더 나아가 정의적 발달 측면에 대해 평가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함께 공개했다면 교육성과의 공개 문제가 이토록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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