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68>

  • 입력 2009년 4월 9일 13시 28분


[분노를 다스려라]

"분노라는 병은 모든 악을 압도한다."

먼저 저희 '앵거 클리닉'을 아끼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9년 4월 10일, '앵거 클리닉'이 처음 개원한 이래, 올해로 벌써 30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저희 병원을 찾아주신 모든 환자분들과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던 보호자분들, 그리고 함께 환자를 보살펴 주신 의사, 간호사, 그리고 행정직원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애정 덕분에, 다양한 증세를 호소하며 저희 '앵거 클리닉'을 찾아주신 '매년 8천여 명의 환자분들'이 건강과 안정을 회복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또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평소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나 분노 표출에 서툰 분들이 저희 클리닉에 오셔서 많은 위안을 얻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생의 '가장 고귀한 사명'이라 믿으며, 지난 30년을 열심히 살아왔고 앵거 클리닉을 꾸려 왔습니다. 제가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30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5개월이 채 안 된 어린아이에게도 우리는 분노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아기의 팔을 확 잡아 당겨 보세요. 아마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하고, 우리를 향해 '원망의 울음'을 쏟아낼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좌절을 경험하면 이내 화를 내지요.

보스톤의 한 신경과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분노를 경험하지만 그 빈도수는 천차만별이라고 합니다. 평균 일주일에 1-2회 정도 분노를 경험한다고 하나, 하루에 10번 이상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주일 내내 한 번도 분노한 적이 없다고 답한 사람들도 15%나 된다고 합니다. 자제력을 잃고 화를 빈도는 남성과 여성이 큰 차이가 없지만, 분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를 확률은 남성이 무려 27배나 높습니다. 남성의 분노가 훨씬 공격적이라는 얘기지요. 우리가 살면서 한 번도 화를 안 낼 순 없겠지만, 노력하면 '현명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옛날보다 화를 더 많이 낸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분노는 대부분 스트레스로 인한 것인데, 예전에도 비슷한 스트레스가 존재했다는 얘기지요. 500년 전에는 '냇가에서 옷을 빨려는데 비가 와서 생긴 분노'나 '글씨를 너무 작게 써서 글을 읽을 수가 없다고 화를 낸 일화' 등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탁기나 프린터의 등장으로 그런 분노는 줄어들었지만, 대신 '교통 체증에 대한 분노'가 새로 생겨났지요. 그리고 요즘에는 교통체증에 대한 분노는 많이 줄었지만, '로봇들의 잦은 고장'으로 일을 망쳐버린 경우가 종종 있어 '기계 분노'란 단어도 『특별시연합공용어사전』에 실렸고요. 이처럼 분노의 양상만 계속 바뀔 뿐, 분노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제가 처음 '앵거 클리닉'을 열었을 때 환자들의 행동은 요즘 환자들처럼 과격하지 않았습니다. 2049년의 환자들은 훨씬 더 과격하고, 반응이 즉각적이며, 분노 표출 방식도 극단적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인간이 자연과 멀리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고 믿습니다.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고 정화하기 위해선 숲과 계곡, 산과 바다와 늘 함께 해야 하는데, 2049년 서울특별시는, 그리고 다른 도시들은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쉽게 위안을 얻지 못하는 삶'에 안주하고 있지요.

인간은 신체적인 고통이나 불편, 혹은 타인의 잘못으로 인한 행동의 제약, 의지의 좌절 등을 경험하면 분노를 느낍니다. 그 순간 여러분의 뇌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지요.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만화 주인공 '배트맨'을 보신 적 있나요? 만화 '배트맨'에는 자기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아미그달라'(Amygdala)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미그달라'는 우리 뇌 속에 있는 호두모양의 '편도체'를 말하는데, 인간의 분노를 표상하는 곳입니다. 분노의 순간, 이곳은 난리가 납니다. 신경세포들이 전기펄스를 뿜어대고, 이곳저곳에서 도파민을 마구 방출하도록 만들지요. 또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온몸에서 과다 분비됩니다.

분노를 느낄 때마다 과격하게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외적 분노표출 성향'의 분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시죠? 그 분들은 충동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의 수치가 매우 낮아 그렇게 공격적인 행동을 쉽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대개 폭식을 하거나 자기 억제를 못하는 경향이 있지요.

외적 분노 표출 성향의 사람들에겐 행동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제 기능을 못합니다. 이곳은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만드는 곳인데, 대개 전전두엽의 활동이 부족한 분들이 분노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충동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물론 분노가 언제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신체가 외적인 공격에 대비하도록 준비하게 만들고, 꼭 필요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사용하게도 합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로봇이나 게임기를 부모로부터 얻게끔 도와주는 도구로도 사용되지요.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동기가 되기도 하고요. 사회적 분노는 때론 현실적인 인간들이 옳은 일을 하도록 만드는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자연의 진화는 인간에게 분노라는 감정을 갖게 해 준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개 분노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자기 방어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인간관계를 파괴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폭력을 낳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어느 왕은 시리아를 점령한 후 사소한 일로 격노한 나머지, '시리아 전주민의 코를 베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시리아인들의 코를 베기도 했고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안타깝게도 시리아는 그 후 '코가 납작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불행한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분노는 '분별없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요인'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노라는 병은 모든 악을 압도한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루시우스 세네카가 자신의 책 『분노에 대하여』에서 썼던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믿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때리거나 죽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회복하기 힘든 불행을 낳습니다.

우리는 주로 누구에게 화를 낼까요? 낯선 사람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분노를 내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화는 모르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분노가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면, 그것은 가장 아끼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꼭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분노하게 되는 상황이 뭔지 아세요?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군가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분노를 강하게 표출한다면,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분노한 당사자보다 3배나 더 큰 분노를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고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이지요.

"분노와 어리석은 행동은 나란히 길을 걷는다. 그리고 후회가 그 둘의 발꿈치를 문다."

과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말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분노와 그로 인한 불행'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기계문명과 IT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성급하게 만드는 이 시대에, 저희 '앵거 클리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열심히 환자들을 돌볼 것을 약속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노윤상 (앵거 클리닉 원장)

'앵거 클리닉' 뉴스레터 (2049년 봄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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