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최적 가격 정할 땐 고객의 지불의향 파악하라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제품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느냐는 회사의 경영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신속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원가, 과거 가격 책정 경험, 경쟁사 가격 등에만 기초해 가격 의사결정을 내린다. 경쟁력이 취약한 기업이 관행적으로 가격을 잘못 책정하면 그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한다.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이라도 잠재 이익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은 고객이 느끼는 효용(utility)과 지불 의향(willingness-to-pay)에 기초해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마케팅 전문가인 안상훈 마케팅 인텔라이트 대표가 불황기 기업의 가격 최적화 전략을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연재한다. 기사 전문은 DBR 30호(4월 1일자)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특정 가격대에서 수요 급변

가격문턱 무시하면 큰 낭패

날짜-좌석따라 가격 차별화

항공사 티켓 전략도 참고를

많은 기업은 가격 의사결정 과정의 미세한 변화가 시장점유율 확대나 원가 절감을 위해 기울인 피나는 노력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점을 의외로 잘 모른다. 어떤 기업이 제품 가격을 5% 낮춘다면, 이때 발생하는 이익 손실분을 만회하기 위해 판매량을 12.5% 늘리거나 고정비를 16.7% 절감해야 한다. 그 대신 이 기업이 가격을 10% 인상한다면 이익은 2배로 증가할 수 있다. 안이한 방식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안 되는 이유다.(그림1 참조)

○ 적합 고객의 지불 의향 파악이 최적 가격 산정 지름길

종합 식품회사인 A사는 쌀을 활용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까다로운 고객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려다 보니 제품의 생산 원가가 매우 비쌌다. 하지만 A사는 관행대로 생산 원가에 요구 마진을 붙여 소비자 가격을 책정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고객들은 신제품의 장점에 호응하지 않았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인식만 가졌다. 매출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했다.

대형 건설사인 B사의 사례는 정반대다. B사는 한 신도시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으려 했으나 경쟁사들이 이미 주요 택지를 선점한 상황이었다. B사는 도심 외곽의 특수 택지를 골라 용적률상 추가 면적을 확보했다. B사는 택지의 취약점을 감안해 인근 경쟁 아파트보다 파격적으로 낮은 분양가를 책정했다. 결과는 대단했다.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전무후무한 청약률을 기록해 순식간에 분양이 마감됐다. 하지만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B사 내부에서는 분양가를 너무 싸게 책정하는 바람에 상당한 잠재 이익을 놓쳤다는 비판이 등장했다.

위의 사례처럼 가격 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 점유율 하락과 잠재 이익 훼손 우려를 모두 방지하려면 제품의 고유 가격이 아니라 ‘적합 고객(right customer)’이 해당 제품에 대해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가격이 얼마냐에 따라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적합 고객은 특정 제품의 차별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고객을 일컫는다. 이들이 구매 의사결정을 내릴 때 특정 제품이나 그 경쟁 제품의 가격이 얼마냐는 것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도요타의 코롤라와 제너럴모터스(GM)의 지오 프리즘은 기술적으로 동일한 차종이다. 원가 요소나 상품 경쟁력도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북미 시장에서 코롤라 가격이 지오 프리즘보다 18% 비쌌는데도 판매량은 2.5배 많았다. 즉 도요타의 적합 고객에게는 도요타 차량 값이 경쟁사보다 훨씬 비싸다는 사실이 구매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한 셈이다.

○ 특정 가격대에서 수요 급변하는 ‘가격 문턱’ 주의해야

적합 고객의 지불 의향을 파악했다고 가격 최적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해당 업종에서 오랜 경험을 보유한 마케터나 영업 직원들은 특정 제품의 적정 가격에 대해 예민한 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감에만 의존해 가격을 결정하면 매우 위험하다. 특히 특정 가격대에서 수요가 급변하는 가격 문턱이 존재하거나 혁신 제품이 등장했을 때는 담당자의 감과 고객의 실제 지불 의향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그림2 참조)

통신 사업자인 E사는 고객 조사를 통해 특정 상품의 요금 인하율이 30%를 넘을 때는 비록 할인이라는 유인책이 있어도 고객의 구매 의향 증가율이 급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세계적 반도체 회사인 F사는 특정 반도체의 가격을 2% 인하했을 때 수요가 58% 급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E사에는 30% 미만의 요금 인하만이 추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며, F사에는 단 2%의 가격 인하가 60%의 수요 증가를 불러오는 지름길이다. 이를 간과하고 E사가 무작정 가격을 인하하거나, F사가 현재 가격을 고집했다면 결코 실적을 개선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정 제품의 가격을 제품의 가치 속성에 따라 차별화하는 것도 가격최적화의 한 방법이다. 항공기 좌석처럼 구입 날짜, 출발 시간, 좌석 종류 등 여러 사양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면 단순 균일 가격을 취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2가지다. 첫째, 제공 사양에 대한 고객 가치와 소요 원가를 정확히 측정해 가격을 정교하게 차별화해야 한다. 둘째, 가격 차별화를 우회적 가격 인하 수단으로 활용하면 브랜드 가치가 위협받는다. 주요 기능을 없앤 동일 브랜드 제품을 저가로 내놓으면 원래 제품의 브랜드 가치가 심각하게 떨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안상훈 마케팅 인텔라이트 대표 shahn@m-intellight.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