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평준화의 환상을 버리자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7분


평준화 주창자들의 끈질긴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시행한 학력평가시험이 성적 조작 의혹에 휘말린 것은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의혹에도 불구하고 평가시험은 긍정적 기능을 발휘했다. 수준에 못 미치는 교육을 하는 학교가 매우 많으며 고교 평준화 정책을 고집해 온 지 30년이 넘은 지금 학교 평준화는 환상이지 현실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냈다.

오늘처럼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문제가 별로 없다고 드러난 학교라도 평가시험에 반영된 성적의 어느 정도가 사교육 결과의 반영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교육의 효과에는 사제 간의 인간관계 등 시험 성적만으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결손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학교를 위해 시급히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책적 결론을 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학력평가의 주목적은 교육적 실익보다 허영심을 앞세우는 전교조 같은 집단이 두려워하듯 학교 서열화에 있지 않고, 현실을 바로 앎으로써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의 교육 실태가 바람직한 수준에 크게 미달한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미비점을 보완해 준다는 취지에서 나왔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공교육의 효과를 압도하며 학교 교육의 부실을 가속화시키는 힘으로까지 작용하고 있음도 알 사람은 다 안다. 평준화 30년간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사교육비의 부담이 가장 큰 나라, 다시 말하면 공교육의 힘이 상대적으로 가장 약하고 교육 기회의 실질적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되었다. 오죽하면 성공적인 사설 학원의 원장이 공개석상에서 공교육을 질타하고 부실의 원인을 분석하기에 이르렀을까.

학력평가, 교육현실 파악에 도움

공교육 사교육의 이중구조가 학부모의 비명과 평준화 신봉자의 끊임없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해소되기보다는 심화된 이유는 제도화된 교육이 가지는 성격의 양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통된 시민교육을 위해 핵심 교과를 부과하며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지만 시민의 선택권이라는 견지에서는 교육기관도 시장원리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세계화 시대에 공교육기관이 학생 개인별 수요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학교 선택권마저 제한할 때 학생과 부모가 국내에서 과외나 학원 교육을 받는 일은 고사하고 국경을 넘어가면서까지 자구책을 강구하는 현상을 막을 힘은 없다.

교육 원리로서 선의의 경쟁은 교육 기회의 공정한 배분과 상호보완적인데 이를 부정하려 했으므로 평준화의 틀에 얽매인 공교육은 허울만 남고 실질적인 기회 경쟁은 돈 많은 사람이나 참여할 수 있는 사교육을 통해서 벌어지는 역작용이 일었다. 사회주의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문화혁명 같은 광기의 분출 시기를 제외하고는 인재를 육성하고 발탁하는 교육에 우수 인재를 우대하는 경쟁원리를 적용해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다.

교육정책 당국이나 국민이 다 같이 유념할 것은 교육에서 국가나 정부는 만능일 수 없으며 복지정책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교육만을 통해 달성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교육정책을 통해 공공기관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지적 도덕적 능력의 하한선이 어떤지를 명시하고 목표의 달성을 돕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것이다. 무슨 방법으로 그러한 효과를 달성할지, 기본교육 이상의 교육은 어떻게 할지는 학교와 대학에 맡겨야 한다. 교육 당국이 만능인 양 자질구레한 행정 간섭을 하면 공교육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뿐이라는 점은 간섭을 받지 않는 학원이 번성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학교경쟁 통해 교육의 질 높여야

공교육과 사교육의 이중구조는 하루빨리 해소해서 사교육에 대한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환상임이 드러난 평준화의 틀을 과감히 깨고 학교 간 자율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일 가능성을 폭 넓게 열어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입시학원을 사립학교로 전환하여 공교육 체계로 유도할 수 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부모도 줄어들고 큰 인적, 물적 자원이 공교육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 공적 자원으로 운영하는 스웨덴의 자율학교제도 같은 모델도 자립형 사립학교 제도와 함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평준화의 환상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실질적으로 공정하게 보장할 길은 널리 열려 있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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