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위원장 정진석 추기경의 강론대로, 김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고 우리 시대의 큰어른이었다. 그분의 생애와 업적을 돌아보면 “추기경을 우리 민족에게 보내준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한홍순 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의 고별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고인이 평생 온몸으로 보여준 ‘김수환 정신’을 실천하고 확산시켜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내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김수환 정신’의 맨 앞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신념이 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이듬해 레흐 바웬사는 최초의 반체제 자유노조를 탄생시키고 1980년대 동유럽에 민주주의를 일깨웠다. 요한 바오로 2세처럼 김 추기경의 존재는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굳건한 버팀목이었다. 1980년 1월 1일 인사차 찾아온 서슬 퍼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서부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했던 고인이었다. 그는 어려운 시대에 용기와 신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설계하고 인도했다.
추기경의 아호 ‘옹기’는 종교와 세속을 아우른다. 조선시대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은 김 추기경의 부친처럼 산속에서 옹기를 만들어 팔며 신앙을 이어갔다. 옹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도 담는 질박한 용기다. 고인은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 병약자 수인(囚人) 등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더 나누고 더 섬기는 ‘옹기의 사랑’을 보여줄 때다.
종교는 물론 이념과 정파, 지역과 계층을 초월했던 추기경의 관용과 배려야말로 ‘김수환 정신’의 고갱이다. 평생을 노하거나 동요하는 일 없이 묵묵히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김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