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윤종]‘강호순 팬 카페’ 피해자 가족 생각해봤나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피의자 강호순(39) 씨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인터넷 팬카페가 등장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이 카페를 개설한 사람의 필명은 ‘Greatkiller’. 그는 “살인범의 인권도 피해자의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카페 게시판에는 사형제 폐지 및 살인자의 인권 옹호에 관한 글과 ‘강호순은 영웅이다’, ‘강호순을 존경한다’ 등과 같은 어이없는 내용의 글까지 올라와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카페의 회원은 5일 현재 1만8000여 명이다. 이 카페에 직접 들어가 보니 회원의 대부분은 카페 개설을 비판하기 위해 가입한 것이었다.

한 누리꾼은 게시판에 “카페에 등록해야 의견을 게재할 수 있어 가입한 것뿐”이라며 “도대체 제정신이냐. 카페를 폐지하라”고 항의했다.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 4000여 건 가운데 80% 이상이 카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카페 개설자는 5일 오후 공지사항을 통해 “범죄자의 인권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이토록 많은 돌팔매질을 불러올 줄 몰랐다”며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자에게는 인권이 없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설자는 카페 폐쇄에 대해서는 “범죄인들의 인권에 대해 고민해 보는 차원에서 카페는 존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인의 인권 운운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올리면서 피해를 본 유족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기자가 만난 유족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괴로워했다. 피해자 김모(당시 48세) 씨의 남편은 “집안 곳곳에 아내가 공들여 가꾼 흔적이 배어 있어 30년 만에 장만한 이 집에서 더 살지 못할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엄마, 딸, 누이가 실종된 뒤 수년간 지옥 같은 세월을 보냈다. 강 씨가 잡혔다고 그들의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다. 유족들은 “평생 마음의 상처를 지우지 못할 것”이라며 울었다.

팬카페를 만드는 것 자체는 개인의 자유다. 범죄자의 인권에 대해 토론의 장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강 씨의 인권을 거론하며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족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충격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따뜻한 위로의 말은커녕 사건을 희화화하는 일부 누리꾼의 경솔한 행동은 정말 실망스럽다.

김윤종 사회부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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