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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2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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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인격권(10조 및 17조)과 무죄 추정 원칙(27조)을 근거로 흉악범 얼굴 공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흉악범이라도 공인이 아니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무죄로 추정해 인격을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범죄자의 얼굴이나 이름이 공개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의견에 공감하지 못한다. 과연 나와 생각이 같은 수많은 사람의 인권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범죄 피의자들의 얼굴을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주는 관행이 생긴 것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6월 21일 내린 결정이 계기가 됐다. 북한 인권만 제외하고 온 세상 인권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은 인권위는 “경찰관들이 피의자를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호송 차량 안에 수갑을 찬 채 그대로 노출되도록 방치한 것은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 것”이라며 범죄 피의자의 인권이 보호되도록 하라고 경찰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피의자 신분 노출 금지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흉악범의 인권을 공인과 피해자의 인권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납득할 수 없다. 범죄 용의자의 사진과 실명을 공개하는 경찰의 지명수배 제도와도 충돌한다.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흉악범의 얼굴 공개가 왜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엄격하게 통제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인권의식 수준이 선진국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자부심이라도 가져야 할 건가.
흉악범에 대한 과잉보호는 국민의 알권리를 포함한 언론의 자유에 대한 경시(輕視)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언론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미국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범죄자의 인격보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더 중요시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언론법 전문가인 박용상 변호사는 “헌법상의 무죄 추정 규정은 원래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수칙을 정한 것”이라며 언론과 일반인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고 해석한다. 그런데도 범인의 인권을 범죄 피해자의 인권이나 언론 자유보다 중요시한 인권위와 이를 따른 경찰의 결정이 왜곡된 언론관으로 비판언론을 핍박한 노무현 정부 때 나온 것이 과연 우연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모든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연쇄살인범, 어린이 유괴 살해범, 불특정 다수를 살상한 다중 살인범 같은 반사회적 반인륜적 흉악범이고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 경우 범인의 얼굴과 신원이 공개돼야 한다는 데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
언론이 범인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유죄를 전제로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실상 유죄를 전제하고 작성된 듯한 기사나,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과잉보도가 문제라는 언론의 자성도 필요하다.
범인 얼굴 공개는 언론이 법률과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를 교량(較量)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강호순의 경우, 경찰이 먼저 모자와 마스크를 벗겨야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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