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순]‘논문 윤리’ 가이드라인부터 만들자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8분


얼마 전 의료계에서 일어난 ‘양심 바이러스 확산’ 보도(동아일보 1월 30일자 A1·5면)는 이중게재 논문을 자진 철회하는 자율적 정풍운동이 의료계 일각에서 시작되어 다른 학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지난해 어떤 강연장에서 필자가 연구윤리와 관련하여 받았던 질문을 생각나게 한다.

학술지협의회 만들어 윤리교육을

한 교수가 “수년 전에 일어난 자기표절 부정행위는 일괄적으로 덮어주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자기표절을 양심적으로 신고하게 하여 학계의 출판 부정행위와 관련된 과거사를 정화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기억에 나는 “과연 이미 출판된 논문을 취소하겠다는 학자가 얼마나 있겠는가?”라고 부정적으로 답변한 것 같다. 당시 회의적으로 봤던 연구자의 양심성찰이 현실화되어 스스로 양심선언을 하는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논문 중복투고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출판논문을 취소한 연구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 기사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연구윤리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은 듯이 사회에 보여질 우려가 있다. 보도된 사례는 몇 년 전 출판된 연구논문이다. 같은 논문을 국내외의 학술지에 두 번 출판하였기에 부정행위로 본다. 논문출판과 관련해 같은 내용을 두 번 출판할 수 있는 ‘2차출판’이란 적절한 행위가 있는데 이번 경우는 출판윤리규정을 지키지 않은 사례이다. 이중 또는 중복게재(출판)를 포함한 자기표절의 문제가 학계에 잘 알려진 상황에서 국내 연구자의 상당수가 출판윤리에 위배된 행위를 여전히 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구논문의 세계적 추세를 보면 한때는 양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질 중심의 출판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과학논문 발표 수 상위 12개국을 비교하였을 때 2006년 대비 2007년의 논문 수 증가율은 선진국에서 감소 또는 약간 증가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은 0∼0.9% 감소했지만 독일 영국 프랑스는 1.0∼3.5% 증가했다. 중국 한국 인도는 6.9∼14% 증가했다. 또 연구자의 연구업적평가에서도 피인용 횟수를 중요시해서 연구자의 논문의 양과 질을 동시에 하나의 수치로 표시하는 방법이 구미에서 점차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중, 중복출판으로 논문 수를 늘리는 부정행위는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 이후 연구윤리를 확립하기 위해 정부가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이제는 연구자가 능동적으로 관심을 갖고 유사학문을 중심으로 관련학술지협의회를 구축하여 학문윤리를 업그레이드할 시기라고 본다. 참고로 의학계는 ‘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를 구성하여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또 약 180개의 의학학술지 편집인을 대상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출판윤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다른 학문 분야에서 참고할 만하다.

중복 판정 결과에 이의제기 많아

학계에서는 요즘 이중출판으로 인한 부정행위보다는 중복출판을 더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많은 학계가 학문 특성에 따라 중복출판에 대한 규정을 갖고 있거나 현재 만들어 가는 중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은 자기표절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국가이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논문의 중복성은 일반적으로 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정도를 판정하므로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업적의 질을 관리하는 세계적인 추세, 전자저널 증가, 체계화된 논문검색엔진의 도입에 따라 국내 학계는 학문윤리 측면에서 논문의 중복출판 판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적절한 합일점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형순 인하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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