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평중]‘북한문제’에 王道 없다

  • 입력 2008년 12월 3일 02시 58분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고 있다”며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직격탄을 퍼부었다. 평생의 라이벌인 김영삼 전 대통령도 DJ에 대한 독설을 쏟아냈다. 이어 정당들 사이의 험악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처럼 ‘북한문제’는 경제위기와 함께 한국사회 최대의 과제다. 경제의 어려움이 바로 피부에 와 닿는 데 비해 북한문제는 큰 사건이 일어나거나 남북관계가 꼬일 때에야 비로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북한문제는 한반도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운명적 현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 등도 북한문제의 일부다. 따로따로 돌출하는 일들이 알고 보면 다 이어져 있다는 얘기다. 대북관계에서 일희일비하는 게 현명치 않은 이유다. 나무만 보다 숲 속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전체적 방향감각이 필수적인 것이다. 역으로 숲 전체의 지도가 있더라도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야만 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구상이나 지난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 모두 북한문제를 다루는 큰 그림에 해당된다. 아직 암중모색 중인 ‘비핵 개방 3000’에 비해 햇볕정책의 자취는 매우 선명하다. 역대 정부의 화해공존정책을 집대성해 한 단계 격상한 DJ의 시도는 중요한 성과를 낳았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교류가 활성화됐으며 상생공영을 실험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DJ의 공이다.

햇볕정책논리, 현실 앞에 무너져

그러나 탄탄했던 햇볕정책의 논리도 차가운 현실에 허물어져 가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으며 인민의 처참한 삶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개방을 허용할 수 없는 수령유일체제의 본질도 여전하다. 돈 주고 산 정상회담은 북에 구제불능에 가까운 갈취사회주의(?)의 행태를 학습하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희대의 경세가(經世家)인 DJ의 존재이유이자,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던 햇볕정책이 파산위기에 직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햇볕정책이 대북정책의 왕도를 자처한 데서 비롯된다. 정책이 교조화하면서 비판과 수정을 거부하는 신성불가침의 원리로 굳어진 것이다. 현실을 담아내야 할 정책이 독단화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사실 자체에 오히려 눈을 감게 된 것이다.

따라서 대북관계의 행로는 북한문제를 단칼에 풀 왕도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우리민족끼리’에 대한 진보의 장밋빛 감상과 통일론의 낭만, 그리고 실패한 국가인 북한에 대한 보수의 피해망상과 빨갱이 콤플렉스는 한반도의 현실과 역동적 사태 변화에 직면하지 않는 지적(知的)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북한문제에서도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존중이 제일 중요하다.

주체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에 상호접점이 없다는 것과, 아무리 햇볕을 쬐어도 변화하지 않던 수령유일체제가 자체 모순 때문에 종말의 시작을 맞고 있다는 것은 진보개혁 진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객관적 인식이다. 수령체제가 종언을 고하더라도 중국과 미국의 존재 때문에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며,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빌 클린턴 정부의 길을 따라 북한문제 일괄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한국 보수 진영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깨달음이다.

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작은 길도 보인다. 주관적 소망사고를 넘어 냉철하게 남북관계를 들여다보면 개성공단 사태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DJ의 발언은 본말전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아니라 실천방법론의 무능과 북한 내부사정이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이기 때문이다. DJ의 말은 북 핵무장을 DJ가 ‘의도적으로’ 도와주었다고 공격해 온 보수의 논리 비슷한 논법인 것이다.

‘일거에 해결’은 환상일 뿐

남북 공히 독립주권국가이므로 남북관계도 그에 맞추어 ‘정상화’돼야 한다. 만약 북이 ‘노다지’라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검증돼야 한다. 어쨌든 개성공단의 유지와 발전은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된다. 개성공단 폐쇄는 북에는 체제 재생의 길을 막는 자살적 자충수이며, 남에는 10년 적공(積功)의 산물인 북 영토 안의 산업전진기지를 포기하는 셈이다. 싸우다가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안에서는 타협하는 게 세상사의 지혜다. 고통스러운 교훈이지만 북한문제는 결코 일거에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관리’될 수 있을 뿐이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